"90세 넘은 이산가족 1만2천...스마트폰 상봉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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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끌려간 형님..68년만에 상봉
"너무 설레 밥 안먹어도 배불러"
18년동안 겨우 4000명 상봉해
스마트폰 시대..서신교환이라도 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수남 할아버지(상봉 예정), 심구섭(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

 


오늘 첫 인터뷰는 정치나 사건 사고 얘기 말고요. 이 시각 가장 가슴을 졸이고 설레고 있을 분들의 얘기를 좀 담아보려고 합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이죠. 21번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집니다. 남측이 93명, 북측의 88명 가족이 만나는데요. 생각해 보세요. 이게 스물한 번째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얘기는 이분들은 스무 번의 행사가 진행되도록 기회를 못 잡다가 스물한 번째 만에 이산가족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입니다. 이분들이 주말에 다 같이 모여서 금강산으로 출발하신다는데요. 출발을 코앞에 둔 한 분 오늘 첫 순서로 직접 연결을 해 보죠. 헤어진 큰형님을 68년 만에 만나는 분입니다. 이수남 할아버님 연결이 돼 있습니다. 할아버님, 안녕하세요?

◆ 이수남>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올해로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 이수남> 77살이고 만으로 76입니다.

◇ 김현정> 그러면 북에 계신 형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이수남> 형님은 저보다 10살 위이셔서 87인데 이제 만으로 86이 되는 거죠.

◇ 김현정> 그렇게 되시는군요. 10살 차이. 그러면 따져보면 우리 이수남 할아버님이 9살 때 두 분이 헤어지신 거예요?

◆ 이수남> 9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고 그 해 여름에 헤어지게 됐습니다.

◇ 김현정> 얼마나 설레고 얼마나 떨리실까 싶어요, 제가 지금 상상을 해 보니까.

◆ 이수남> 아주 상상치도 못했던 그야말로 꿈인가... 뭐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아버님, 어머님 생전에 계셨을 때 이런 소식을 들었으면 얼마나 더 기쁠까. 첫 번째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 김현정> 사실은 형제애도 중요하고 진하지만 부모님이 그 아들을 그렸을 심정은 상상도 못 하는 거잖아요, 진짜.

(자료사진)

 


◆ 이수남> 우리 어머니도 장독대에다 이렇게 정화수를 떠놓고 새벽에 기도를 하시더라고요. 형님의 안녕을 무사히 기대하고 이제 돌아오기를 비는 거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봤는데.

◇ 김현정> 그런데 다른 가족들은 다 남으로 왔는데 어떻게 형님 혼자만 북에 남게 되신 거예요?

◆ 이수남> 우리는 어떤 케이스냐면요. 남쪽에 여기 그냥 살고 있었고 형님 혼자만 젊은 청년이니까 (의용군으로) 북한으로 데려갔으니까 그렇게 된 거죠.

◇ 김현정> 의용군으로 끌려간 거예요, 19살이니까. 그랬다 못 내려오신 거예요?

◆ 이수남> 그렇죠. 생사도 몰랐죠.

◇ 김현정> 그러니 어머님이 19살에 끌려가서 생사조차 확인이 안 되는 아들을 놓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 이수남> 그럼요. 또 우리 삼형제 중에 장남이에요, 지금 만나러 가는 형님이. 그러니 얼마나 한스러우셨겠요.

◇ 김현정> 선생님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시작하신 지는 오래되셨다면서요?

◆ 이수남> 한 20년 됐습니다.

◇ 김현정> 20년 됐는데 여태 기회가 안 오다가 20년 만에 잡으신 거예요?

◆ 이수남> 포기했었죠, 저는. 왜냐하면 (형님이) 연세가 있으시니까. 이제는 전쟁통 안에 돌아가시지 않았어도 생존해 있으시리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 김현정> 이제 월요일이면 형님 만납니다. 진짜 얼굴 보십니다. 68년 만에 그때 19살이던 형님 만납니다. 무슨 얘기 제일 먼저 하실래요?

◆ 이수남> 정말 지금까지 살아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정말 고맙더라고요. 전화 받는 순간 생각하면 너무 고맙구나, 생존해 계셔서.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까 희망줄을 완전히 놨다가... 그 말을 제일 먼저 해 드리고 싶습니다.

◇ 김현정> 또 형님한테 만나면 묻고 싶은 것도 있으실까요?

◆ 이수남> 많죠. 그간에 참 우리는 형님 한 분, 부모님 두분 다 각자였는데 우리 형님은 가슴에 평생 부모, 형제, 친척, 친구, 고향 땅. 이런 모든 걸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사셨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한평생이었어요. 또 가족이 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처음 뵙는 형수님, 조카도 있고. 많이 묻고 싶습니다. 건강도 또 어떠신지 모르겠고, 연세가 있으시니.

◇ 김현정> 밤을 새우실 것 같은데요, 두 분? 그동안 쌓인 얘기 나누시느라고.

◆ 이수남> 진짜 밥맛도 없어요, 설레고. 안 먹어도 별로 배가 안 고픈 정도로. 정말.

◇ 김현정> 왜 안 그러시겠어요.

◆ 이수남> 나머지 이산가족분들도 좀 이런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하는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제는. 만나면 또 이거 기약 없이 헤어져야 될 걸 생각하면 착잡한 생각이 나네요. 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가슴 아프고 그럴 것 같아서.

◇ 김현정> 기쁘면서도 슬픈 날이네요. 이수남 할아버님,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

◆ 이수남> 네, 고맙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월요일에 68년 만에 헤어진 형님을 만나는 분이십니다. 이수남 할아버님 먼저 만나봤습니다. 이렇게 이산가족들 나이가 상당히 고령이 됐습니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에 상봉 신청을 한 13만여 명 중에 57%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살아계신 분들 중에서도 63%는 80세가 넘습니다. 남아 있는 분들의 현황. 이분 통해서 알아보죠. 남북이산가족협의회의 심구섭 대표 만나보겠습니다. 심 대표님, 나와 계세요?

◆ 심구섭> 네,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지금 63%가 80세 이상. 그러면 90세 이상은 몇 분이나 되세요?

◆ 이수남> (80대보다) 90세 이상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90세 이상이 1만 2200명 정도입니다. 21% 정도 돼요.

 


◇ 김현정> 90세 이상이 1만 명이 넘으세요, 아직까지 못 만난 분들이?

◆ 심구섭> 그렇죠. 1만 2000여 명.

◇ 김현정> 그렇죠. 그러면 지금 청취자 세밀 님 외 여러 분들이 질문 주시는데 도대체 아직까지도 못 만나고 계시는 분들이 총 몇 명이나 됩니까?

◆ 심구섭> 지금 신청한 사람이 약 13만 2000명이거든요. 그런데 상봉을 못 한 사람이 5만 6000명이에요. 그중 90세 이상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1만 2000여 명 정도 됩니다. 21%가 90세 이상인데 이분들 아마 오늘도 한 분, 두 분 돌아가실지 몰라요. 안 그렇습니까?

◇ 김현정> 말씀 나누고 있는 지금도. 맞아요. 그런데 그래서 빨리빨리 좀 많이 만나게 해 드렸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도 보니까 남한 93명, 북한 88명. 생각보다 적다 하고 봤더니 대상자로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안 좋아서 포기하는 분들도 꽤 되신다면서요?

◆ 심구섭> 이게 이번뿐만 아니고 이전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에도 100명에 해당돼가지고 막상 날짜가 되니까... 그게 한 닷새 걸리거든요. 속초 가서 하루 교육받고 그다음에 금강산에 들어가서 만나고 오자면 3-4일 내지 5일 걸리는데 나이 많은 분들은 혼자 못 가지 않습니까? 보호자가 같이 간다고요. 휠체어 타고 가는 분도 있는데 그동안의 건강을 보장 못 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가지는 참 누구 말마따나 로또 복권이 당첨된 건데 그사이에 돌아가신 분도 있어요. 이번에는 아직 그런 경우는 안 나왔지만 가는 분들 건강 때문에 이번도 아마 일곱 분인가 빠졌죠.

◇ 김현정> 그러면 한 번에 건강 괜찮으실 때 조금 더 상봉 인원을 늘리면 200명이 아니라 좀 더 늘리면 안 돼요?

◆ 심구섭> 지금 이게 18년 됐거든요. 당국 간에 상봉이 2000년도 시작해서 지금 열린 지 18년 됐는데 그동안에 4000명 정도 만났습니다. 그러면 이게 18년 동안 4000명 만나가지고 이 많은 사람들 언제 만나겠습니까?

◇ 김현정> 그러니까요.

◆ 심구섭> 이게 지금 당국 간 차원 아닙니까? 또 민간 차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1750명 정도 돼요. 그리고 민간 차원에서 생사 확인한 사람들이 한 약 4000명 됩니다. 그러니까 정부 차원에서 이번 만나는 거하고 민간 차원에서 한 거하고 거의 비슷한 인원수가 되는데 지금같이 이렇게 1년에 200명 만나는 거. 이런 방법은 앞으로 지양하고 좀 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기를 저희가 바라고 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빨리빨리 많이 못 만나는 이유는 우리 마음 같아서는 더 만나고 싶지만 북도 그거를 오케이를 해 줘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 심구섭> 그런 이유가 있죠. 우선 첫째 말이죠. 남북한의 인구 비율이 남과 북이 2:1 정도 된다고요. 또 전쟁 때 북쪽에서 남쪽으로 나온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남쪽에서 북에 들어간 사람하고. 북에서 남쪽 나온 사람들 이산가족, 형제, 가족 다 있지만 문제는 북한에서 이 이산가족 상봉 만나는 걸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오냐 그게 문제예요.

◇ 김현정> 그렇죠.

◆ 심구섭> 지금 이번에 아마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농구단이 평양에 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까? 여기서 평양 가는데 우리 같으면 도로로 가면 한 2시간이면 갑니다. 그러나 이 농구단이 굳이 군용기를 타고 평양에 간 이유는 거기의 도로 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 김현정>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

◆ 심구섭> 그렇죠. 그러니까 함경도, 저 황해도에서 이 이산가족을 선정해가지고 평양에 오는데 한 사람만 옵니까? 두 사람 오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대표님, 어떤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하여튼 정례화를 지금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남북 정상이 만나는 지금 상황 아닙니까? 이런 상황인데 하루빨리 정례화되고 하다못해 서신 교환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저도 기원하겠고요. 이 민간 차원에서도.

◆ 심구섭>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릴 텐데 지금 얼마나 좋은 시대입니까? 스마트폰으로 전부 영상도 다 볼 수 있지 않습니까?

◇ 김현정> 영상 통화.

◆ 심구섭> 그러면 북한에도 스마트폰 다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금강산에서 만나기 어려우면 스마트폰으로 상봉을 하든지 또 엽서를 주고받게 하든지 이런 방법을 해야지 지금 이런 방법으로 해서는 이산가족한테 아무런 큰 의미가 없어요. 당국에서 좀 강구해 주기를 바랍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심구섭> 네, 수고하세요.

◇ 김현정> 남북이산가족협의회의 심구섭 대표까지 만나봤습니다. (속기= 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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