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지배하는 세상上] 응급실 실려오고도 "소주 한 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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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사진=류연정 기자)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의 밤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술 냄새가 가득 공간을 메운다.

21일 저녁 8시.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는 이른 저녁부터 첫 손님이 찾아왔다.

만취한 채 누워있는 50대 남성은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한다.

담배를 피우게 해달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취한 몸을 가누지 못해 고꾸라지기도 한다.

그가 누워있는 침상은 이미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다. 술에 취해 실수를 한 탓이다.

1시간 뒤에서야 그는 자신이 알코올중독 치료차 다른 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라고 고백한다.

치료를 받던 중 무단으로 병원에서 이탈해 또 다시 술병에 손을 댔다가 험한 꼴을 당한 거다.

혼자 힘으로 걷기도 힘들어 하던 그는 지구대의 도움으로 입원해있던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주취 환자는 계속 이어졌다.

오후 9시 35분에도 50대 남성 한 명이 정신을 잃은 채 실려왔다.

수액을 맞던 그는 1시간 뒤쯤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폭력을 쓰진 않을까 이곳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뛰어왔다.

발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만큼 술에 취해 있는 상태였지만 "소주 한 병 더 먹고 싶다"며 링거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당직 의사는 간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타일렀지만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그의 바지에서도 이미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다.
이날 밤사이 이곳에 실려온 주취자는 모두 5명.

대부분이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어 하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의료진이 "또 오셨네요 이 분"이라고 말할 만큼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 여러번 이곳으로 실려오는 주취자도 있다고 한다.

아침부터 얼큰하게 취해 수액을 맞고 돌아갔다가 점심, 저녁을 먹으면서 또 음주를 자제하지 못한 탓이다.

이날 당직 근무를 섰던 의사는 "하루 3번 오는 사람도 있다. 아침부터 왔다가 낮에 또 오고 다시 저녁에 오고. 건강 챙기셔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21일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난동을 부리는 모습. (사진=류연정 기자)

 

전문가들은 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증상이 '질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동부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배옥란 복지사는 "알코올이 중독성 물질이고 뇌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질병을 초래한다.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되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센터에서는 알코올중독에 관한 상담과 해독치료 권고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곳을 찾는 환자 대부분이 중독증을 극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배 복지사는 "완쾌 개념이 아니고 회복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기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독의 특징 중 공격성, 폭력성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며 "한국 사회가 술에 관대하다.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술 마시는 장면을 자극적으로 노출하는데 술을 허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 복지사는 특히 금연을 권고하는 공익 광고는 많은 반면 음주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은 부족한 것을 문제로 꼽았다.

한편 앞서 묘사한 대구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관리하고 있는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런 응급센터가 분명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임시 조치만 해줄 수 있을 뿐이다. 반복되는 알코올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우려면 사회에 술을 경계하는 문화를 정작시키고 이미 중독된 환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下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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