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마추어' 국감 촌극? 어쩌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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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의 선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발 과정의 논란으로 대표팀 선동열 감독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최고 투수가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현역 시절 '국보급 투수'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던 선동열 야구 대표팀 감독(55)이다.

선 감독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섰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정부가 행정을 잘 하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 자리다.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했다는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뜻일 터.

나라의 보물이라던 선 감독에게 국정감사는 전혀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었다. 위원회 위원들인 국회의원들은 "현직 국가대표 감독이 이 자리에 서는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면서 "선수 시절 빼어난 활약을 펼친 선 감독이 나온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의원들이 선 감독을 증인으로 부른 것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특히 오지환(LG), 박해민(삼성) 등 28살 군 입대를 앞둔 선수들을 배려하거나 청탁을 받고 선발하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선 감독의 출석은 영광스럽지도 못했던 데다 국정감사는 불편함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일부 의원들은 수준 이하의 질문을 쏟아냈고, 증인이 답변을 위해 말문을 열면 예의 호통에 가까운 말로써 입을 막기 일쑤였다.

'뜨거운 관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발 과정의 논란으로 대표팀 선동열 감독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100명 가까운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

 

첫 질문자로 나선 김수민 의원(바른미래당)은 선 감독이 뽑은 오지환과 다른 유격수를 비교하고자 기록을 들이밀었다. 이름은 가리고 수치만 제시한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였는데 기록은 지난해 것이었다. 비교 대상이 된 선수는 김선빈(KIA)으로 지난해 타격왕(3할7푼)으로 생애 최고 시즌을 보냈다. 다만 올해는 주춤한데 특히 최종 명단 확정 당시인 6월 타율이 2할2푼2리였다.

선 감독은 "기록은 B 선수(김선빈)가 좋지만 통산 기록이 좋다고 뽑지 않는다"면서 "선발 당시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우선"이라고 답했다. 김 의원의 질문이 이어지자 선 감독은 "어떤 감독에게라도 물어보라"면서 "현재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뽑는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가장 선 감독의 증인 출석에 열을 올렸던 손혜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질문이 역설적에게도 가장 압권이었다. 손 의원은 "선 감독이 최종 명단 관련 코칭스태프 회의를 3시간씩이나 한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목적은 오지환, 박해민을 이미 염두에 뒀는데 왜 그리 많은 시간을 썼느냐는 것일 터.

하지만 손 의원은 그동안 선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당시 회의에서 엉성한 자료를 참고하고 회의록도 없이 진행했다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런 가운데 '왜 회의를 그렇게 오래 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은 자가당착이었다. 이에 어이가 없어진 선 감독은 "그럼 선수를 뽑는데 대충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밖에도 손 의원은 "(아시안게임) 우승이 뭐 그렇게 어려운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금메달을 이룬 대표팀의 성과를 가볍게 보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선 감독과는 무관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행정과 관련된 질문을 늘어놓을 때는 "대한야구베이스볼협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히 실수로 볼 수도 있지만 야구를 잘 알고 있다면 절대 나오지 않을 말이었다.

2012년 당시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왼쪽),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국회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경청하며 곤혼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DB)

 

국회에서 의원들이 스포츠와 관련해 어이 없는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뒤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다.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따낸 축구 대표팀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정치적 활동 금지 규정을 어겼다며 큰 논란이 됐던 당시다.

당시 문체위 위원들은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을 불렀다. 그때도 국회의원들은 예의 호통을 지르면서 두 회장을 윽박질렀다. 모 의원은 "IOC가 뭔데 메달을 안 주느냐"며 사자후를 토하며 무식을 스스로 드러냈다.

또 다른 의원은 "세리머니가 무슨 뜻인 줄 아느냐"며 "국어 공부 좀 하라"고 훈계했다. 뒤풀이라는 우리 말을 쓰라는 것. 물론 국어 사랑 차원에서는 반길 일이나 세리머니는 전 세계 스포츠에서 두루 쓰이는 용어. 먼저 스포츠부터 공부하고 나왔어야 했다.

이번에도 코미디와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관심이 쏠리고 분명히 문제는 있는 사안인 만큼 국회로 가져와 국민들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좋은 의도다.

하지만 인기에 영합해 급조된 질문, 그래서 수준이 떨어지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스포츠는 아무리 문체위원들이라 해도 낯선 분야다. 협회나 단체의 행정이면 모를까 선수 선발과 같은 부분은 특히 의원들로서는 난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질문과 발언이 그 모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작 제도 개선보다는 행정과는 무관한 선동열 물어뜯기가 주가 됐다.

'웃지 못한 오지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3연패를 달성한 야구대표팀 오지환이 3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사진=황진환 기자)

 

그렇다고 선 감독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선 감독은 논란이 될 만한 선수를 뽑아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 물론 선수 선발은 당시 규정상 감독의 전권이고 대회 결과로 책임을 진다고는 하지만 오지환, 박해민의 선발은 논란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둘을 뽑은 것은 섶을 쥐고 불 속에 뛰어든 격이었다. 그 결과는 성난 여론이었고, 결국 선 감독 본인의 명예롭지 못한 국감 출석이었다.

이날 선 감독의 답변도 어쩌면 국회의원들의 질문 못지 않게 서툴렀다. 물론 선 감독은 "(특혜에 민감해진) 시대 흐름과 국민들의 정서,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실력껏 뽑았고, (오지환 등을) 선발하는 건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감독으로서 소신을 지킨 발언일 수 있다. 이날 선 감독은 "지금까지 유니폼을 입고 운동만 해왔다"며 스포츠인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은 보다 더 분명하게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이 나왔어야 했다. "실력으로, 컨디션을 보고 선수를 뽑았지만 논란이 될 선수를 뽑아 문제를 키운 것은 잘못이었고 이에 대해 죄송하다"는 사과다. 노련한 정치인들과 달리 국감이 처음이고, 스타 출신으로 자긍심이 대단한 선 감독으로서는 거기까지는 못 미쳤을 수 있다.

선 감독은 이날 "시대의 흐름을 이해 못 하고 나만 경기에서 이기려고 생각했던 것 죄송하다"면서 "행정과 사회적인 것을 진짜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선 감독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정복하고 2005년부터 프로 사령탑을 맡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 번이나 이룬 경력이 있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선 감독이 국민 정서를 몰랐다면 '아마추어'나 다름 없다. 더군다나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 야구 대표팀 사령탑이라면 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왜 아마추어 선수를 1명도 뽑지 않았느냐"는 손 의원의 질문에 선 감독은 "프로와 실력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날 국감도 마찬가지였다. 선 감독은 프로 최고 스타였지만 국감 증인으로서는 아마추어였다. 국감의 프로 국회의원들도 잘 모르는 스포츠 분야에선 아마추어였다. 그래서 이번 국감은 서로에게 불편하고 힘들고 당혹스러웠고, 보는 국민들도 그랬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분야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아마추어'다. 정치, 사회, 경제 등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사안들에 의원들이 프로처럼 달려들어야 할 그동안의 국감이었다. 물론 스포츠가 국회까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 삶의 한 부분이 됐다는 방증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국회 국정감사장의 스포츠는 낯설다. 서로가 아마추어가 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 국감의 촌극은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러지 않도록 해당 단체와 기관들이 노력해야 한다.

선 감독은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에도 국민들이 못 했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했고, 너무 죄송하게 앞으로는 선수 선발에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국감장을 빠져나온 뒤에야 선 감독은 취재진에게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 못한 거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과연 어쩌면 비극이었던 스포츠 국감이 향후 재연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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