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시는 원청, 책임은 하청"…태안화력 용역계약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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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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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업무 등 과업지시는 원청이 내리지만
설비훼손·업무지연·가동중단 모두 하청책임
동료들 "책임 떠넘기기 계약..은폐 이면"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브리핑’ 에 참석한 고 김용균 씨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최근 20대 청년이 홀로 일하다 숨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는 일을 원청이 지시하지만 사고 책임은 하청이 떠맡는 전형적인 갑을계약이 맺어져 있었다.

숨진 청년의 동료들은 반복되는 사고은폐 이면엔 이런 '책임 떠넘기기식 계약'이란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14일 발전소 운영업체 '한국서부발전'의 용역계약서를 보면, 이 회사가 숨진 김용균(24)씨가 소속됐던 운전정비업체 '한국발전기술' 직원들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엿볼 수 있다.

먼저 서부발전 측은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직원들에게 계약서에 명시된 일반적인 과업지시 외에도 추가업무나 특별업무를 지시하는 등 과업내용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정해진 기한 내에 과업이 완성되지 않으면 원청은 그 기간에 비례하는 지연 보상금을 하청에게 현금으로 받는다. 물론 원청의 책임이 명확하거나 천재지변일 경우는 예외다.

반면 하청은 원청이 지시한 과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비용을 계약금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직접 물게 된다.

(사진=용역계약서 캡처)

 

"계약상대자(하청)는 발주자(원청)의 손실이 명백히 예상될 경우 발주자는 별도의 조치를 강구할 수 있으며,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용역대가에서 공제할 수 있다"라는 조항 때문이다.

더구나 계약서에는 세세한 규정을 통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할 주체를 상당 부분 하청업체로 못 박아 놨다.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교육도, 위험요소 제거와 설비안전을 위한 조처도, 안전관리인을 선임하는 일까지 모두 하청업체 책임에 맡겨져 있다.

원청의 설비나 자료 일부의 관리 책임이 하청에 맡겨진 탓에 해당 시설이 훼손됐을 때 하청이 자체비용으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아울러 하청업체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위탁운영비 일수로 계산해 계약금에서 깎이고, 환경 관련법상 배출부과금 같은 벌금 또한, 하청이 책임지도록 하는 조항들도 포함됐다.

하루라도 시설을 멈추면 하청업체가 가동중단 시간에 따라 보상금을 물어야 하고 용수·전기·연료 등 복구 과정에 드는 유지비용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은 앞서 CBS노컷뉴스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계약서는 다만 이처럼 하청이 사고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에 대해 대부분 '하청의 귀책일 경우'라고 한정하는 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김씨 동료들은 이 조항이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 사실상 사고은폐의 족쇄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같은 발전소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이태성씨는 "사고가 발생해 조사가 나오면 징계 과태료를 누가 내겠냐. 모두 하청이 지불하게 된다"며 "용역회사들이 산재가 반복적으로 나도 계속 은폐를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이런 갑질계약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사장(좌측)과 황창하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가운데)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건과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인근 열수송관 누수 사건과 관련한 현안보고를 위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에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은 "우리가 계약서만 봐도 하청업체가 얼마나 원청에 종속돼 있고 그 직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알 수 있다"며 "김용균군은 이런 배경 속에서 혼자 근무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서부발전 측은 "하청업체의 의무와 주의사항에 대해 구분이 필요하고 이를 알리려 조항을 넣었을 뿐, 악의적인 독소조항을 넣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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