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흥행..당신이 기억하는 1997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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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 300만 돌파 흥행
왜곡 논란도 있지만 '사회영화' 의미 있어
기억하기 싫은 '집단적 트라우마' 건드려
대한민국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 탐색
90년대, 이미 중병 걸렸던 한국 경제구조
후유증 있지만 금융 투명성 긍정 효과도
IMF가 만든 '거부'들? 도시 전설처럼 전해져
국민적 금모으기 운동, 2018년도 가능할까?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8년 12월 14일 (금)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경희대 이택광 교수, 소설가 장강명

 

◇ 정관용>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들 잡학하고 박식하게 수다 떨어보는 시간입니다. 리앤장의 금요살롱 오늘도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 소설가 장강명 씨 나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 장강명> 안녕하세요. 장강명입니다.

◇ 정관용> 얼마 전에 우리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가지고 영화 이야기를 쭉 한 바 있는데 오늘도 일단 영화 얘기로 시작을 합니다만 오늘은 영화 얘기가 본질은 아니에요. IMF를 다룬 영화죠. ‘국가부도의 날’. 이거 보셨어요, 혹시?

◆ 이택광> 저는 봤습니다.

◆ 장강명> 저는 또 못 봤습니다.

◇ 정관용> 장강명 작가는 영화를 잘 안 봐요?

◆ 장강명> 영화를 잘 안 보고요. 보헤미안 랩소디 이제 봤어요?

◆ 장강명> 그것도 아직 안 봤습니다.

◆ 이택광> 국민 700만 가운데 아직 안 들어간 거예요? (웃음)

◆ 장강명> 책을 읽어야죠, 소설가가. (웃음)

◇ 정관용> 그런데 국가부도의 날 영화 나오고 나서 사실왜곡 논란이 있는 건 알고 있죠?

◆ 장강명> 그건 기사를 좀 봤습니다.

◇ 정관용> 좀 요약해 주세요, 어떤 논란인지.

◆ 장강명> 이게 사실 그렇게 오래된 얘기가 아니잖아요.

◇ 정관용> 딱 20년 전이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장강명> ‘안시성’ 다룰 때나 ‘보헤미안 랩소디’ 할 때와는 좀 다른데 지금 한국사회의 결과이기도 하고 이게 뭐 고증이 잘 됐다고 하시는 분은 일단 없는 것 같아요. 당시 IMF의 역할이라든가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 경제 관료들이 뭘 했느냐 하는 한국은행이 정말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그랬느냐. 이거에 대해서 고증이 잘 됐다고 하시는 분은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사실 이걸 2시간짜리 영화로 극영화로 만들려면 어느 정도 축약도 하고 약간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조금.

◇ 정관용>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만들어야 되니까.

◆ 장강명> 그렇죠.

◇ 정관용> 그래서 일종의 경제관료들을 악으로 만들고 한국은행의 직원을 선으로 만들고.

◆ 장강명> 주인공이 필요하니까요.

◇ 정관용> 그리고 약간 미국의 음모설 비슷한 것도 바탕에 깔고.

◆ 장강명>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 정관용> 사실은 그건 아니죠.

◆ 이택광> 그렇죠. 사실은 아니고요. 일단 하지만 그 영화가 지금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 영화에서 보면 사회 영화로 불리는 그런 장르예요.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고 하는 건데 물론 정확한 용어는 아닙니다. 그런데 일단 한국에서는 그렇게 사회 영화로 부르는 경향이 있고요. 그런데 제가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문제는 많지만 금방 지적하셨듯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죠.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첫 번째가 굉장히 한국 문화에서 언급하기 싫어하는 것이 뭐냐 하면 1997년 우리 금융위기 사태입니다, 이른바.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저는 차라리 1997년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1998년하고 참 괜찮은 영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텐데 어쨌든 국가부도의 날은 제목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그 당시는 집단적 트라우마죠, 우리나라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그 날을 기억하기 싫은 그런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걸 건드렸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이 영화가 어쨌든 불완전하지만 사회 불평등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래도 탐색을 했다는 거예요. 김혜수 씨가 주연했던 여주인공이 상당히 선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숨겨져 있는 여러 가지 비밀들을 파헤쳐서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그러고 이런 노력들을 하는데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불평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헤치려고 했다, 두 가지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봐줄 수 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디테일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IMF가 주범이냐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는 상당히 물음표가 쳐지는 것이고요. 또 한 가지가.

◇ 정관용> IMF 그다음 일부 관료. 그들이 다 알면서도 이렇게 했느냐 그건 아니냐. IMF가 오게 된 과정과 배경의 책임은 정말 어디에 있느냐 이건 제대로 분석한 것은 아니에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택광> 그것은 아니죠. 한국경제 구조의 문제점에서 사실 시작된 것인데 그런 부분이 언급이 되지만 사실 그런 부분들이 선악 구도 속에 다 풀어헤쳐져서 보시는 분들이 정확하게 그 원인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어떤 특정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지정해서 악인에 대한 그런 분노 이런 것을 좀 부추기는 측면들이 있죠.

◇ 정관용> 그래서 약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든 영화 아니냐는 식의 논란도 일어나는 것 같아요. 이게 김영삼 정부 때의 경제관료를 악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지금의.

◆ 이택광> 사실 누구인지는 뻔하죠.

◇ 정관용> 보수정당 쪽의 경제관료들. 보수정당을 겨냥한 거 아니냐, 이런 식의 논란도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이택광> 사실 논란이라기보다 보시면 정확하게 그렇게 지목이 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신문기사를 뒤져보시면 그분이 누구신지 알죠. 한 가지 그 영화에서 분명하게 인정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명백하게 그분도 실제의 그분도 인정했던 부분이에요. 뭐냐 하면 우리가 IMF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한 거죠. 그러니까 이 영화가 100%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IMF가 왜 국민들에게 경제위기의 주범처럼 각인되도록 했는가에 상당한 책임은 있다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이택광 교수가 지적한 그래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꼭 건드려야 할 집단 트라우마를 건드렸다는 점 그다음에 우리 사회불평등의 기원이었다고 하는 점. 이걸 바로 제가 이어받아서 IMF가 오게 된 과정은 우리 경제 전체가 완벽한 거품에 빠져 있었던 상태거든요. 완벽한 거품에 빠진 그 경제 구조를 체질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정말 필요했는데 IMF라고 하는 수단을 동원해서 개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IMF가 제시한 방향이 개혁을 위해 필요한 건 맞지만 반드시 IMF가 제시한 방향으로 개혁했어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라고 하는 얘기는 그 후에 수없이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IMF가 제시한 방향으로 개혁하다 보니까 양극화가 극심화된 그런 거 아닌가요?

◆ 이택광> 그게 앞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IMF를 핑계로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다 이런 하나의 의견들이 있죠, 그러니까. 그리고 실질적으로 IMF가 요구했던 것은 노동구조의 유연화였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멋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건.

◇ 정관용> 정리해고 가능하게 만들었죠.

◆ 이택광> 정리해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 정관용> 그리고 초고금리에 초고환율을 해서 수출지역과 돈 많이 가진 자산가들에게 유리한 시스템. 그걸 만든 거 아닙니까?

◆ 이택광>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영업자 문제라든가 금방 말씀하셨던 것처럼 수출이 막히면 우리 경제가 이렇게 곤두박칠 치는 문제라든가 주식시장의 등락 문제라든가 또 유연한 해고라는 핑계를 가지고 마음대로 해고하고 이런 어떤 고용 노동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불러온 것은 사실이죠.

◇ 정관용> 그렇죠.

◆ 장강명> 그게 어디까지 IMF의 조치 때문이냐 하는 것은 좀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고 사실 저희가 경제전문가가 아닌 상황에서 평가하기가 조금 정확치 않은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저희가 지금 큰 사고를 당했다. 또는 몸에서 종양이 있는 게 발견이 됐다.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당장 수술을 받아야 된다라고 하고 우리는 어떤 병에 대한 지식이 잘 없는 상태고 이 수술을 안 받으면 지금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면 수술을 받죠. 받고 나서 수술 후유증이 생겼고 그 후유증에 대해서 의사의 당시의 처방, 이 수술 진단에 대해서 아니, 그때 그렇게 수술 안 받았어도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하는 게 그런 말은 할 수 있지만 그래서 그때 우리가 수술을 안 받았으면 아예 안 받고 약을 먹으면서 천천히 개선이 될 상황이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한국사회가 이제 90년대 중반, 중후반 되면서 한국 경제구조가 분명히 중병이 난 환자였고 구조적으로도 그랬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 어떤 외환관리를 완전히 실패를 해서 97년 말 즈음에는 우리가 지금 그리스라든가 베네수엘라라든가 당시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전부 다 어떤 외환위기에 빠져들었었고 그때 뭔가 좀 약 먹는 걸로 개선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수술로 지금 어쨌든 그 위기를 이겨낸 다음에 이거 꼭 팔, 다리를 절단했어야 했느냐. 내지는 이런 강한 요법을 받았어야 됐느냐라고 하는 게 저는 약간 글쎄요, 이게 어쨌든 살아났으니까 이렇게 파산은 안 됐고 어쨌든 막았으니까 넘어간 상황에서는 그렇게 탓은 할 수 있겠지만 조금 어떻게 보면 당시에 협상을 졸속으로 했다, 이런 비판은.

소설가 장강명(좌),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우). (사진=시사자키팀)

 

◆ 이택광> 그러니까 무조건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대표적인 게 금융을 투명하게 만든 건 있죠.

◇ 정관용> 우리가 얘기를 하다 보니까 3명의 비경제전문가가 경제 개혁의 방향에 대한 진보, 보수 논쟁을 지금 약간 벌인 측면이 있는데요. 리앤장의 금요살롱 코너가 그런 코너는 아니니까. 그나저나 IMF 터질 때 두 분은 몇 살이었고 뭐하고 있었어요?

◆ 이택광> 저는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있었고요. 그래서 유학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IMF가 터졌어요.

◇ 정관용> 그럼 유학을 포기했군요?

◆ 이택광> 포기하고 있다가.

◇ 정관용> 환율이 갑자기 급락.

◆ 이택광> 재미있는 건 그때 유학 포기하고 안 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미국이나 영국에서 특히 영국에서 장학금을 많이 줬습니다. 아시아 학생들한테. 그래서 제가 그걸 받고 갔어요. 그러니까 저는 IMF 덕분에 장학금을 받은 거죠.

◆ 장강명> IMF로 잃으신 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 이택광> 그때 IMF 때 힘들었어요, 저도.

◇ 정관용>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에서 IMF를 겪은 한국 유학생 장학금을 늘려준 거예요?

◆ 이택광> 그러니까 미국은 기존에 있던 아시아권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장학금을 굉장히 많이 줬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재학생한테 준 것이고요. 영국은 흥미롭게도 새로 올 사람들에게 줬어요, 신입생들에게. 그래서 제가 신입생으로 받고 간 거죠.

◇ 정관용> 그때 이미 유학을 하고 있던 분들 중에 포기하고 돌아오시는 분들 많아요.

◆ 이택광> 초창기에 많이 돌아오셨어요. 그때 버티셨던 분들은 학교 따라 다른데 어떤 학교들은 받았죠. 예를 들어서 지금 한창 JTBC에 계시는 손석희 사장님도 사실은 받았잖아요.

◇ 정관용> 그 시기에 있었습니까?

◆ 이택광> 그때 미네소타에 있었잖아요.

◇ 정관용> 장강명 작가는 뭐했어요?

◆ 장강명> 저는 그때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이었고 아마 상병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때 이렇게 저희 내무실에서 그래서 제대를 안 하고 하사관 지원하는 친구도 있었고 군인 월급이 깎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 정관용> 제대하고 나가봐야 직장 없다 이러면서.

(사진=MBC뉴스 갈무리)

 

◆ 장강명> 그런 케이스가 드물지 않았고 그때 많은 또 후배들이 입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할 일도 없는데 군대나 가자.

◆ 장강명> 군대를 많이 갔고 군대에서는 월급이 조금 깎였고 우유가 그때 나오는 횟수가 줄었든가. 고통분담 차원이라면서.

◇ 정관용> 군대 월급이 깎였어요?

◆ 장강명> 깎였었습니다. 상병 월급 1만 원쯤 했던 것 같은데 몇천 원 깎였던 기억이 납니다. 나와 보니까 세상이 바껴 있더라고요. 저는 노숙자도 그때 처음 봤고 홈리스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 노숙자가 생겨났을 때는.

◆ 이택광> 사실 노숙자들을 위해서 금모으기 운동도 많이 했잖아요. 금모으기 운동도 많이 했고.

◆ 장강명> 저는 복학을 하니까 고시가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있는 걸 처음 봤습니다. 그때는 뭔가 시험을 준비를 한다고 하면 다 고시를 준비했는데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를 하고 또 이것도 어떻게 보면 그때 사회 분위기하고 연결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IMF 이전에 군대 가기 전에 학교가 절대평가였어요, 학점이. 그냥 교수님 마음대로 A를 막.

◇ 정관용> 그 후에 상대평가로 바뀐 거예요?

◆ 장강명> 네. 뭔가 경쟁사회하고 조금 맥이 닿아 있는 걸까요?

◇ 정관용> 그런데 그 IMF 직후 그 혼란의 와중에 또 한몫씩 챙기신 분들 주변에도 좀 있죠?

◆ 장강명> 그렇죠.

◇ 정관용> 그때 주가가 완전히 폭락했는데 아무도 주식 안 사고 있을 때 그때 주식 사는 사람들.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는데 그때 부동산 산 분들. 그리고 그때 수출기업에 몸담았던 분들 이런 분들 떼돈 벌었어요.

◆ 이택광> 그러니까 이제 그게 지금 우리에게 경험치가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집값 떨어지기를 바라시는 분들이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 정관용> 그때 사야지, 이런.

◆ 이택광> 그때 경험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 정말 1억 정도 하던 아파트가 4000~5000만 원으로 떨어지니까 그래서 사신 분들은 지금 10배, 20배 정도의 효과를 누리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봤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또 그럴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도 좀 있다고 봅니다.

◆ 장강명> 이게 제 주변에서 사실 이득을 본 분은 안 계시거든요. 안 계시는데 다들 그 얘기는 알아요. 도시 전설처럼 IMF 때 어디 주식을 사서 거부가 됐다. 어디 아파트를 사서 거부가 됐다. 저는 이게 외환위기 이후에 한국정서에, 사회정서에 바뀐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제일 큰 건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 그 생각을 우리가 다 하게 됐고 또 하나는 저도 군인이었는데도 배신감이 참 컸습니다. 외환위기 가기 직전까지 며칠 전까지 펀드멘탈이 튼튼하다는 얘기를 정부가 엄청 많이 했거든요. 펀드멘탈은 강하다고 했는데 그때 우리가 이 나라의 정부를 믿으면 안 된다. 다른 정보를 늘 귀를 열어두고 있어야 된다. 그리고 큰 위기가 오면 그게 돈벌이의 기회다. 이것도 그때 많이들 깨달았죠.

◇ 정관용> 또 한 가지 꼭 빼놓을 수 없는 건 아까 언급했습니다만 금모으기 운동 같은 열풍 이건 정말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 이택광> 그게 IMF도 깜짝 놀란.

◇ 정관용> 애국적 행동이에요.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은 진짜 거기서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자료사진, 위 사진은 내용과 관련없음

 

◆ 장강명> 저도 돌반지를 금모으기 운동에.

◆ 이택광> 우리 선배님도 돌반지를 전부 다 갖다 바쳤다고 그러더라고요.

◆ 장강명> 요즘 돌반지를 하기는 하나요?

◇ 정관용> 이 방송 들으신 분들도 오해할 수 있어요. 금을 그냥 갖다 준 걸로 아는데 아니에요.

◆ 이택광> 돈을 받았죠.

◇ 정관용> 금값을 제대로 받은 거예요.

◆ 이택광> 금을 모아야 된다고 해서. 왜 금을 모아야 되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금이 사실 환율의 기본이었기 때문에 금을 많이 보유하면 환율 방어가 쉽다 이렇게 생각해서 금모으기 운동을 한 거죠.

◇ 정관용> 그리고 그때 또 국제시세, 금시세가 올라가는 추세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또 금을 각자 집에 갖고 있으면 나중에 내가 좀 더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우리 지금 값으로 갖다 모읍시다, 이렇게 한 그런 운동이었는데.

◆ 이택광> 그런 부분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죠.

◇ 정관용> 이건 있을 수 없는 가정법이지만 다시 우리나라에 그런 위기가 온다면 또 한 번의 금모으기 가능할까요?

◆ 이택광> 이제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 장강명> 저는 가능하기는 할 텐데 열기의 정도는 20년 전이랑은 다르기는 하겠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오늘 무슨 수다를 떨었는지 제가 정리가 안 되는데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 소설가 장강명 씨, 수고하셨어요.

◆ 장강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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