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틀라스'와 쪽잠 간이침대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구성수 칼럼]

지난 설 연휴 기간에 근무하던 중 순직한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사용했던 사무실. (사진=국립중앙의료원 제공)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의 사무실 사진이 13일 공개됐다.

윤 센터장이 지난 설 연휴에 평소 업무를 보던 책상 앞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됐던 사무실이다.

사무실은 4평 남짓한 크기로, 고인이 생전에 쓰던 책상과 책장, 회의테이블 등 각종 집기로 꽉차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쪽 벽면으로 절반 쯤 젖혀진 커튼 뒤에 놓여진 1인용 간이침대다.

이 간이침대는 고인이 격무 속에서 하루 2~3시간씩 쪽잠을 자던 곳이다.

고인은 생전에 밤낮 가리지 않고 업무에 전념하느라 퇴근은 일주일에 하루, 저녁 몇 시간이 전부였다고 한다.

설 연휴 전에도 일주일간 집에 들르지 못했는데, 이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업무에 몰두했으리라.

아픔과 슬픔이 깊이 묻어나는 자리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SNS에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추모의 글을 올렸다.

침대 옆 금색보자기로 싸여진 상자는 설에 가족에게 가져다줄 선물이었다고 한다.

이 선물은 결국 전달되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서랍장 위에는 '닥터 헬기(응급의료 헬기)' 모형이 놓여 있었다.

닥터 헬기를 도입하고 응급 의료 서비스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일은 고인의 평생 꿈이었다.

닥터 헬기 모형을 침대에 누웠을 때 시선이 닿을 수 있는 끝 부분에 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부검 결과 사인은 고도의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 심장사로 확인됐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다.

대형 교통사고로 환자가 한 곳에 몰려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전국의 응급실 532 곳과 권역외상센터 13곳을 관리한다.

고인은 설 명절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퇴근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 재난응급의료 상황을 점검하다 과로사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국내 응급의료계에서 열악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개선해 오늘을 있게 한 든든한 산증인, 버팀목, 영웅으로 꼽힌다.

닥터 헬기와 권역외상센터 도입 등 국내 응급의료계에 일어난 굵직한 변화의 중심에는 대부분 윤 센터장이 있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고인의 영결식 추도사에서 윤 센터장을 인간에게 불을 가져단 준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인 아틀라스(Atlas)에 비유했다.

아틀라스가 지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면서 본인에겐 형벌과도 같은 상황을 견디고 있는 덕분에 우리가 하늘 아래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윤 센터장이 국내 응급의료를 떠받쳐왔다는 것이다.

그런 아틀라스를 떠나보낸 것이었으니 이국종 교수가 다른 누구보다 애통해 하며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비통한 심정"이라고 절규했을 것이다.

이 교수는 아주대병원에서 도입하는 닥터 헬기 표면에 "선생님의 존함과 함께 'Atlas'를 크게 박아 넣을 것"이라며 윤 센터장을 기렸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국내 응급의료를 떠받쳐온 아틀라스, 윤 센터장은 그런 기림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 기림이 일회성이나 기림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은 윤 센터장 자신도 결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 응급의료계는 그동안 많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업무과중에 인력부족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윤 센터장의 과로사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숨가쁜 의료현장에서는 퇴근없이 환자를 돌보던 40대 교수가 뇌출혈로 8개월째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는 등 제2, 제3의 윤한덕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한다.

윤 센터장의 희생을 계기로 응급실의 인력확충 등 아직도 열악한 응급의료체계가 개선되도록 끝까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