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모습. 이날 대한지질학회는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7년 11월에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과 관련해 자연지진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열발전을 위해 주입한 고압의 물이 단층대를 활성화해 지진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결과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것이다.
정부가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을 구성해 1년에 걸쳐 정밀조사한 결과다.
일각에서 연구단의 조사결과가 아직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열발전을 지진 촉발 이유로 든 것은 설득력이 있다.
발전소의 물 주입 시점과 지진발생이 상당부분 일치하고 지진의 진앙이 물 주입지점 근처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진원의 깊이가 일반적 자연지진보다 얕고 물 주입 깊이와 일치한다는 점도 들었다.
지열발전은 지하 4km 이상 깊이에 구멍 두 개를 뚫은 뒤 한쪽에 물을 주입해 섭씨 170도에 이르는 뜨거운 지열로 데우고 발생한 수증기를 다른 구멍으로 빼내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하에서 높은 수압이 발생해 물 주입점 근처의 활성단층을 미끄러지게 해 지진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연구단이 유발이 아닌 촉발이란 용어를 쓴 것은 지열발전이 직접적으로 지진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던 단층지역에 방아쇠를 당겨 지진이 일어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결과는 포항지진이 인재 (人災)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전 지질조사로 활성단층을 확인해 지열발전에 적합한 부지를 선정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항 지열발전소는 한국에서 지열발전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2010년 정부 지원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다.
포항이 대상지역이 된 것은 비화산지대지만 뜨거운 지열이 있는 곳이어서 지열발전소로는 최적 요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지하 5km 깊이 지하수 온도가 최대 180도에 이른다고 한다.
지열발전소는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들어섰고 2012년 9월 기공식을 가졌다.
지열발전소는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2016년부터 지열발전정 2개를 시추한 뒤 주기적으로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시운전을 해왔다.
이런 작업이 활성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촉발했다는 것이 조사단의 판단이다.
지열발전소의 터를 잡았을 때, 그 때를 놓쳤다면 시운전을 할 때라도 지하의 활성단층 등에 대한 지질조사를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낳은 포항지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2017년 11월 문제의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도 지열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있었다고 한다.
시추한 지열발전정에 물을 주입한 직후에 포항 북구 북쪽 8~9km지역에서 규모 2~3의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열발전소측은 이런 경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지열발전소 가동을 계속했다.
지열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것은 2017년 11월 대형지진이 발생한 이후이다.
정부가 20일 지역발전 사업추진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엄정하게 조사하겠다며 지열발전소 완전 폐쇄와 함께 감사원 감사, 정부 조사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유이다.
하지만 이 사업을 추진한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사업이 정부와 민간이 공동 투자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을 촉발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엄청난 손해배상의 후폭퐁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포항본부에 따르면 포항지진 피해액은 3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정부와 지열발전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참가하고 있는 소송인단은 1천300명이지만 앞으로 포항시민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이유로 대거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소송금액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이것을 정부와 지열발전소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번 지진원인 규명은 포항시민들이 지진발생 직후부터 각종 의문점을 제기하며 계속 지열발전과의 연관성을 물고 늘어진 결과이다.
지진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포항시민들에게 위로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