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시선 넘어 '나' '여성' 시각으로 미술 보기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2019 연속특강_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
3강.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여성주의 현대미술가 이충열('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저자)

제트로의 논문 속 오리-토끼 그림. (사진=제트로 논문)

 

지난 2017~2018년 힙합, 게임, 연예산업, 걸그룹, 광고, 웹툰 등 미디어 산업 속 깊은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했던 한국여성민우회가 이번엔 조금 더 깊이 있게 '이미지'를 짚어보기로 했다.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는 사진, 디자인, 미술, 문학 각 영역의 여성 창작자와 비평가가 총 4회에 걸쳐 사회 곳곳에 있는 '이미지'에 대한 시선을 짚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의 '렌즈'로 대상화되고 소비되는 여성의 '몸'
② '페미니즘 디자인'보다 중요한 여성 디자이너의 '생존'
③ 남성의 시선 넘어 '나/여성'의 시각으로 미술 보기
<계속>

여성주의 현대미술가이자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저자 이충열 미술가가 지난 13일 서울 을지로1가 서울특별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에서 열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주최한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의 세 번째 강의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오리토끼(duckrabbit)' 그림(사진은 제트로의 논문 속 오리-토끼 그림)에서 당신을 무엇을 보았는가. 아마존 부족 조에족의 인물과 우리나라 연예인 중 우리는 어떤 사람을 더 '아름답다'라고 말할까. '본다'는 것은 '시각'을 의미하고, 시각은 사회문화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큰 감각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보는 법까지 강요된 교육 속에서 남성의 시선으로 재현된 미술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주최한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의 세 번째 강의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가 지난 13일 서울 을지로1가 서울특별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에서 열렸다. 여성주의 현대미술가이자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저자 이충열 미술가는 '본다'는 것의 의미와 미술 속에 담긴 지배적인 권력의 시선이 아닌 주체적인 '나'의 시선,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강연했다.

프랑스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사진=루브르 박물관 소장)

 

◇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리토끼'는 사람에 따라 토끼로 보일 수도 있고, 오리로 보일 수도 있다. 즉, 관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면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의 대표라 불리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현대의 인간인 우리는 어떤 '이상한' 점 혹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충열 미술가는 "프랑스 시민 혁명을 다룬 그림인데 가슴을 드러낸 여성이 등장한다. 나는 그게 너무 이상하게 다가왔다. 제목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인데, 여성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여신'인 것"이라며 "다른 사람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남자인데, 왜 이 여성만 여신으로 그렸을까. 미술사에서 수많은 여성이 여신 아니면 귀족여성으로 등장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보통 미술작품을 볼 때 형식적인 이야기 즉, 시대적 상황과 의도를 이야기하지 그림 하나하나를 보지는 않는다"라며 "예술이란 작품을 만나면 제목을 맞춰야 할 거 같고 틀리면 안 될 거 같고, 연도랑 작가랑 기억해야 한다. 미술 시간에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걸 모르면 그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배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미술가는 "간단한 선 드로잉만 되더라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교육은 더 많은 요소, 역사, 맥락이 들어가는 예술작품을 비판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라며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각자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고 저마다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아름답다'는 건 절대적인 게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톤 반 다이크의 유디트(사진 왼쪽)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 남성이 재현한 여성, 여성이 재현한 여성

전통적인 예술은 지배자가 정한 '진리'와 '기준'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소수의 지배자가 정한 '위대'하고 '숭고'하고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한다. 이때 예술가는 백인, 남성, 귀족 혹은 자본가, 지식인, 비장애인 등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을 표현한다.

이충열 미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의 인체는 당연히 백인, 남성, 비장애인, 권력자, 지식인 등"이라며 "뒤러의 '여성의 비율'을 봐도 작가는 신처럼 인간, 여성의 미를 규정하려고 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보티첼리가 비너스를 그릴 때 어떤 모델을 두고 그린 게 아니라, 상상해서 그린 완벽한 미를 표현한 것이다. 미의 기준을 넣어서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시민사회 미술이 나타나며 주체성을 가진 개인이 자율적인 의지로 자신의 감정, 생각, 사상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됐고, 현대미술로 와서는 시대에 대한 통찰,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등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게 됐다.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해석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성 유디트(Judith)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며 아시리아로부터 조국 베툴리아를 구원한 영웅이다. 그러나 남성이 재현한 여성 유디트와 여성이 재현한 여성 유디트는 다르게 묘사된다.

안톤 반 다이크의 그림 속 유디트는 구도의 중앙에 가장 밝게 '가슴'을 배치한다. 목이 잘린 장군 홀로페르네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충열 미술가는 "멋진 여성을 그냥 '몸덩어리'로 그린다"라며 "수많은 남성 화가가 이런 식으로 그렸다. 목을 베는 건 안 그렸다. 여성이 남성의 목을 베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서는 장군의 목을 베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유디트의 모습이 보인다. 이 미술가는 "반 다이크의 그림에서 하녀는 구경꾼에 불과했다면, 아르테미시아의 그림 속 하녀는 거사의 동참하며 여성의 연대를 보여준다. 성경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남성 화가 누구도 이렇게 그리지 않았다. 여성이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걸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시나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산나와 두 노인'을 다룬 남성과 여성 화가의 시선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수산나는 구약성경 일부인 다니엘서 제13장에 등장하는 인물로, 두 명의 늙은 유대인 재판관이 수산나를 범하려다 실패로 돌아가자 수산나에게 간통죄를 덮어씌우려 한다. 그러나 다니엘에 의해 누명이 벗겨지고 두 재판관은 사형에 처해진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수산나는 명확하게 두 노인을 거절하는 게 보이지만,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그림 속에서는 '거절'이 보이지 않는다.

이충열 미술가는 "아르테미시아는 여성의 입장에서 상황을 표현했고, 남성은 자신이 상상한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만 그렸다"라며 "문제는 이처럼 과거 여성을 보는 시선이 지금까지도 전달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 여성·소수자의 눈으로 본 세상에 관해 발언하고 표현하기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970년대 미국 여성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면서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됐다.

페미니즘 미술 혹은 여성주의 미술 시대가 오며 미술에도 변화가 생긴다. 흔히 '누드(Nude)'라 불리는 여성의 벗은 몸도 기존 미술에서는 남성이 원하는 여성, 다시 말해 '성적대상화' 된 존재로 여성의 누드가 그려졌다면, 'naked'라는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몸을 그려낼 수 있게 됐다. 옷을 입지 않은 인체를 그려내는 것에도 페미니즘이 반영된 결과다. 즉, 여성이 남성의 보조자나 대상으로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성 스스로 인간 혹은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이충열 미술가는 페미니즘에서는 '차이'라는 게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며, 페미니즘 미술을 △1세대 : 남성과 같은 인간이고 싶어라 △2세대 : 남성과 다른 여성이고 싶어라 △3세대 : 차별을 만드는 차이, 경계가 문제야 등 3세대로 나눠 설명했다.

이 미술가는 "서양 현대미술에서 여성 작가가 하는 작업인 경우에 가부장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있으면 페미니즘 미술로 분류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은 재창조되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어떤 이미지를 보면 우리는 곧이곧대로 믿게 된다"라며 "교육 과정이 제시된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우도록 한다. 주어진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암기하도록 교육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미술가는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된다"라며 "X는 백인, 남성, 지식인, 비장애인 등"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정상'이라 불리는 것들, '지배 이데올로기'를 구현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그려내는 미술과 미술 교육으로 인해 생기는 고정된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충열 미술가는 "불평등과 억압, 폭력의 역사를 정확히 인식하고 여성, 소수자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떤지 발언하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