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원래 그래" 비상식과 범죄 난무하는 드라마 현장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드라마 제작 현실 담은 <가장 보통의 드라마>
故이한빛 PD 죽음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
비상식적 상황에 질문 던지면 "여긴 원래 그래"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폭력적인 문화 만연
드라마 소재가 된 성폭력, 현실에서도 일어나
제작비 적게 쓰려면 한국 가라? 가혹한 착취
분위기 바뀌는 중이지만.. 아직 제도개선 미흡
노동자들의 꿈은 위로가 되는 드라마 만드는 것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6월 18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 정관용> 지난 2016년 드라마 혼술남녀. 그 조연출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PD, 여러분 기억하시죠? 그 사건 이후에 방송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다양한 요구, 또 대책들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게만 보입니다. 바로 이런 방송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 현실을 담아낸 책이 한 권 나왔는데. 제목이 가장 보통의 드라마예요. 이 책을 쓰신 분은 바로 그 고 이한빛 PD의 동생인 한빛미디어 노동인권센터 이사, 이한솔 이사입니다.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어요. 어서 오십시오.

◆ 이한솔>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형이 그렇게.. 그때 어딨었어요?

◆ 이한솔> 저는 당시 군복무 중이어서 군대에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 정관용> 처음 소식 듣고 어땠어요?

◆ 이한솔> 사실 그때 훈련 중이어서 그냥 그때 기억은 아무런 생각이 그때 기억 자체가 잘 안 나는 편이긴 하고. 그리고 이유를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제 밖에 나와서 원인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약간 분노도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들로 가득 찼던 것 같아요.

◇ 정관용> 혹시 군대 가기 전에 이한솔 이사도 이쪽 관련 일을 한 경험이 있습니까?

◆ 이한솔> 아니요. 저는 드라마는 좋아했고 형이랑 토론은 많이 했는데 (형이) 드라마 준비할 때. 그런데 제가 이쪽을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한 번도 경험은 없고.

◆ 이한솔> 네.

◇ 정관용> 그런데 이제 형의 사고 이후에 이 책을 쓰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겁니까?

◆ 이한솔> 일단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 저는 밖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드라마 현장에 없는 사람인데.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상식들이 여기서는 전혀 상식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질문을 던져도 여기는 원래 그렇다는 말로만.. 제대로 답변을 안 하고 이러다 보니까 제가 그냥 하나 하나 알아가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관련된 스태프들이나 연출 팀이나 다양한 분들 만나면서 이 공간이 정말 잘못된 공간이구나를 느꼈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형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소위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냥 원래 그래 이래요?

◆ 이한솔> 네. 처음에는 특히 많이 그랬어요.

◇ 정관용> 지금도? 3년이 흘렀는데도?

◆ 이한솔> 그래도 지금은 문제의식들은 느끼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이제 한빛센터도 드라마판에 많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좀 이거는 문제가 있다라는 의식들은 올라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정관용> 한빛미디어 노동인권센터. 형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인데. 지금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까?

◆ 이한솔> 저희는 드라마 세이프 캠페인이라고 해서 미디어 신문고를 통해서 현장에서 문제가 있는 데를 제보를 받아서 대신 혹은 같이 싸워주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스태프 노조나 현장 조직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또 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상암동에 DMC에 관련 종사자들 오셔서 쉴 수 있는 쉼터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이 책에서 하드보일드 범죄 드라마다.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드라마 제작 현장이. 그 정도로 온갖 범죄가 다 망라되어 있습니까?

◆ 이한솔> 일단 가장 기초적인 그냥 시간 자체가 주당 80시간, 100시간, 말도 안 되는 노동 강도와 더불어서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단순한 노동의 조건을 넘어서 문화적으로도 폭력이나 아니면 도제식 이런 문화 때문에 고통 받는 종사자 분들이 정말 많은 걸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장시간 노동에 임금도 적고 문화는 폭력에, 성희롱도 난무한다고요?

◆ 이한솔> 네. 이게 아무래도 도제식이나 군대식 문화가 있다 보면 특히 갑을관계가 너무 명확해서 드라마, 아이러니하지만 드라마에서도 그런 얘기들이 나오잖아요. 작가 분이 메인 PD한테 성폭력이 사건이 발생하는 그런 소재로 드라마가 한번 나오기도 했었고 그게 사실 현실의 이야기가 다를 바가 없는 거죠.

◇ 정관용> 이 책을 1장 풀샷, 2장 클로즈업, 3장 컷. 드라마 현장성이 담긴 용어들로 부제를 붙였더라고요. 이렇게 붙인 이유가 있나요?

◆ 이한솔> 일단 사실 전반적으로 새로운 시선으로 드라마 현장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어요. 아까 말했듯이 방송국과 제작사에서는 어쩔 수 없다. 방송은 내보내야 되지 않느냐 원래 그렇다 이런 경우로 변명을 하는데 그러려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큰 틀에서 드라마 산업과 관련된 부분을 바라볼 필요가 있고 조금 집중해서 아까 말했던 임금, 노동 시간, 폭력, 문화, 아니면 기술팀, 미술팀, 작가, 아동 청소년 연기자, 이런 어떤 세부적인 부분까지를 같이 망라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2부는 디테일한 문제들을 바라봤고 그리고 어쨌든 조금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해야 될 거라고 보아서 컷하는 마무리는 대안적인 이야기들을 채우려고 글을 써봤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첫 번째는 풀샷, 이른바 숲을 보자. 드라마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보자. 구조 문제의 핵심이 뭡니까? 요즘 편당 10억, 20억씩 쓰는 드라마도 있다잖아요. 그 돈 다 어디다 쓰는 거예요?

◆ 이한솔> 구조 문제 핵심은은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게 핵심이라고 보고 있고요. 또 한국에서는 예술 노동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높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정관용> 소위 열정페이.

◆ 이한솔> 네, 그렇죠. 그리고 예술 하는 사람들한테 어떤 노동에 대한 시간이나 이런 개념을 적용하지 않는 거죠. 그렇지만 드라마는 하나의 산업구조인 거고 여기에 종사하는 분들 모두 노동자인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근본 원인은 애초 노동자로 인정받지 않으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노동 시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거죠.

◇ 정관용> 네.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한솔> 최근에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근로 시간을 잘 지키고 근로 계약을 맺었다고 화제가 됐잖아요.

◇ 정관용> 화제가 됐잖아요.

◆ 이한솔> 사실 그게 기쁜 일이기는 한데.

◇ 정관용> 화제가 되면 안 되죠?

◆ 이한솔> 네, 다른 식으로 보면 그분이 2배로 잘해줬다 아니면 정말 너무 편히 쉬게 해줬다. 이런 거로 이슈가 된 게 아니라.

◇ 정관용> 그게 아니라는 거죠.

◆ 이한솔> 그냥 근기법을 잘 지켰다라고 이슈가 된 상황을 봤을 때 사실 영화 산업은 조금 낫기는 하지만 영화, 드라마, 이런 방송 미디어를 포괄하는 영역의 분들에게 노동자성 자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게 고착되어서 계속 누적되고 누적됐는데 한류로 막 시장만 커지고 착취 구조는 더 공고화된 상황이라고 보고 있어요.

◇ 정관용> 넷플릭스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잖아요. 가장 적은 제작비로 품질 좋은 작품 만들고 싶으면 한국을 찾아 가라. 이랬다면서요? 이건 다른 나라들은 이렇게 못한다는 거 아닙니까?

◆ 이한솔> 네, 그렇죠. 이거는 책에도 나오겠지만 하다못해 바로 이웃나라 중국, 일본만 가더라도 10시간, 12시간 지나면 스태프들이 철수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유럽에 가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이게 너무 아이러니한 건 한국 스태프 촬영 문화가 너무 공고화되고 알려지니까 외국에 나가서 같이 컨소시엄으로 촬영을 하면 외국 노동자 분들은 중간에 집에 가서 교대를 하고 한국 사람들은 원래 24시간 촬영하는 게 당연하니까 거기에 또 한국 사람들은 그대로 촬영하고 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좀 벌어지고 있는 게 이 바닥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렇게 가혹한 노동, 일종의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안 하고 있는 게 문제 아닌가요?

◆ 이한솔> 그런데 피라미드 구조라고 하죠. 이게 예전에 박혁권 배우님이 저랑 같이 토론회 나가서 했던 말인데. 정규직이 5%밖에 없어요. 전체 현장 100여 분의 스태프 분들이 있으면.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 이한솔> 나머지는 도급 계약을 맺어서 층층이 나뉘어져 있다 보니까 밑에 계신 분들이 사실 이슈를 제기했다, 그럼 그냥 이 바닥을 너는 떠나야 되고 협박까지 하고 있다 보니까 다 소문도 나고 이런 상황에서 사실 노동자 분들이 직접 문제제기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그게 지금까지 어쨌든 계속 이어져온 거죠. 저희 형이 좌절했던 부분도 내부에서는 정말 바꾸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인 걸 계속 느끼고 있고. 저희도 제보하신 분들의 신원을 보장하는 게 어쨌든 저희한테 되게 중요한 일인 만큼. 소문이 나면 안 되는 것 때문에 어려운 지점이 큽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2016년부터 지금부터 몇 년 흐르는 사이에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무슨 표준 근로계약서니 뭐니 막 나오기는 나왔잖아요. 현장의 변화는 없어요?

◆ 이한솔> 사실 아예 없지는 않고 다행히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일단 그 문제의식은 다 가지고 있어요. 오래 찍으면 일단 이게 잘못됐다 하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저희한테 제보도 주시고 저희가 대응하면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긴장을 하죠. 예를 들면 이번에 아스달 연대기 되게 큰 대작이었는데 이제 이슈가 될 때 촬영 시간을 말도 안 되게 찍은 게 이슈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작품성을 논하면서 촬영 시간까지 이슈가 된 걸 보면 3년 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는 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제도 개선이 수반되지 못한 거죠. 표준 근로 계약서를 의무화한다든지 이런 제도 개선이 수반돼야 전반적인 산업구조가 나아질 텐데 현재로서는 그냥 선한 봉준호 감독이나 안판석 PD님 같이 선한 분들, 뛰어난 분들만 그걸 지키고 있지 산업구조 전반이 아직까지는 제도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게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 제도 개선. 즉 표준 근로계약서 의무화까지는 못 갔다는 거잖아요.

◆ 이한솔> 그런데 방송국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 정관용> 언제쯤 그게 될까요?

◆ 이한솔> 그러게요. 빨리 됐으면 좋겠고. 이게 그냥 예전에 CJ랑 저희랑 재발방지 대책 CJ가 사과하면서 맺었을 때도 정규직 중심으로는 됐어요. 그런데 점점 도급계약을 맺은 전반의 종사자들한테 퍼지지 못했던 게 한계였듯이 어쨌든 방송국에서 하나하나 맺겠다고 하는데. 더디게 가는 것보다는 기술팀, 미술팀, 후반 작업 팀, 작가 분들 이렇게 쭉쭉쭉쭉 좀 빠르게 확장돼서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을 필요가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단 지켜봐야 될 것 같고 좀 더디다 싶으면 시민 분들이랑 저희가 같이 싸워서 좀 더 빨리 개선을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런 하도급 자제를 못하게 하는 이거는 좀 어려운가요?

◆ 이한솔> 그런데 제가 막 산업구조 전체를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이제 본인이 노동자로 어쨌든 인식하고 있고. 사실 한 현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으신 분들은 그리고 PD나 제작진한테 엄밀히 업무지시를 받고 있는 지시, 관리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맺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기도 하죠. 물론 이제 가끔 특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이런 부분에서 좀 다양한 계약 형태가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저희가 상식적으로 계약을 맺어도 되는 지점들은 명확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시사자키 방송 출연중인 이한솔 이사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유튜브 캡쳐)

 


◇ 정관용> 조금 구체적으로 한번 소개해 봐주세요. 한편 당 예를 들어서 10억, 20억 쓴다. 그돈 어디로 갑니까? 그다음에 메인PD나 이런 사람들도 밤 새워서 합니까? 주연 배우들도 밤새서 하나요?

◆ 이한솔> 그런데 이제 어쨌든 10억, 20억 제작 비용이 올라가고 있는데. 실제로 아까 말했듯이 근로계약 안 맺어도 되고 이러니까 이쪽은 버려두고 스타 감독, 스타 작가, 스타 배우로만 금액을 올려왔던 거죠. 나머지는 어차피 도급 관계였으니까 10년 전하고 똑같이 가격은 동결시키고.

◇ 정관용> 비슷하게 하고.

◆ 이한솔> 그러다 보니까 지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어떤 노동 시간과 노동 임금을 주게 된 상황이기는 하고. 그랬을 때 제작비가 오르면 사실 같이 올랐어야 되는데.

◇ 정관용> 알겠어요.

◆ 이한솔> 제도개선이 안 받쳐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 정관용> 제작비가 올라갔지만 올라간 건 대부분 스타PD, 스타 배우, 스타 작가한테 간다, 스타PD, 스타 배우, 스타 작가들은 밤새서 촬영해요. 안 해요.

◆ 이한솔> 그분들은 영역이 좀 다르긴 하고 감독, 스타 감독 같은 경우에는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같이 찍기도 하고 아닌 경우도 있고 경우마다 다른 것 같다고 생각은 하는데 문제는 사실 시청률이 오르고 드라마가 성공했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누가 받냐는 게 핵심이죠. 그럼 대부분 감독, 작가, 배우한테 가기 때문에 그분들은 자기가 그냥 더 하고 싶으면 마음껏 더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게 같이 좀 잘 살아갈 수 있는, 같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문화가 있어야 되는데 사실 스태프 분들은 그냥 감독이 시키는 대로 24시간 새가면서 찍어야 되는 거고 또 감독이 콜타임이라고 하죠. 몇 시까지 모여 이러면 다 모여야 되는데 감독이 피곤해서 늦는다. 그러면 사실 무작정 기다리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고. 이런 피라미드형 구조에서 사실 똑같이 오래 찍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여기서 누가 피해자인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이게 지금 구조의 부분이고 현장에 밀착해 들어가면 언어폭력, 갑질, 성희롱,이런 문제가 여전하다. 이른바 미투 운동 이후에도 그래요?

◆ 이한솔> 네. 엄밀히 따지면 사실 방송 미디어 업계에서 미투가 제대로 고발된 사례들이 사실상 없었죠.

◇ 정관용> 없나요?

◆ 이한솔> 들어보신 게 거의 없잖아요. 특히 스태프나 여기 작가, 이런 어떤 을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게 거의 없죠.

◇ 정관용> 그러네요.

◆ 이한솔> 그런데 저희한테 제보는 들어오고 있고 심지어 전에.

◇ 정관용> 제보는 들어오는데 그게 왜 공개 안 되는 겁니까?

◆ 이한솔> 살아남아야 되는 상황.

◇ 정관용> 그 바닥에서 못 살아남기 때문에?

◆ 이한솔> 그렇죠. 제보 들어온 것 중에 그런 예를 들면 성폭력 사건을 한번 고발된 어떤 PD가 있었는데 그분이 방송국에서 6개월 정도 정지를 먹었어요.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드라마라는 게 찍고 나면 쉬는 기간이 어차피 있거든요.

◇ 정관용> 한 편하고 나면 몇 개월 쉬죠.

◆ 이한솔> 쉬고 나서 하니까 이분한테는 타격이 없었는데 그걸 제보한 사람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모욕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사실 그 방송국과의 제작을 더 이상 못하게 된 상황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명확하게 여기서는 문제제기한 사람이 어쨌든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그래서 저희도 사실 열심히 돕고 있는데 저희가 도왔을 때 이분한테 도움이 돼야 되는데 이게 이분이 여기를 떠나야 되면 이게 쉽지 않은 문제라서. 오히려 저희도 제도개선은 조금 더 힘을 받아서 하고는 있어요. 문화개선은 아직 솔직히 한빛센터도 큰 역할을 못하고 있지 않나라는 반성을 합니다.

◇ 정관용>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연극계에서는 미투가 좀 있었잖아요. 그런데 드라마나 이런 데서는 미투가 안 나오느냐. 차이를 설명하면서 연극계는 어차피 먹을 게 없으니까 거기 계속 붙어 있어도 먹을 게 없고 떠나도 뭐 손해 볼 거 별로 없다. 이런데 드라마계는 그 바닥을 떠나면 정말 굶어 죽고 그 바닥에 있으면 그나마 그래도 대접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구조 때문에 누구도 미투를 못한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맞습니까?

◆ 이한솔> 네. 일정 부분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고. 어쨌든 조금 더 이렇게 단발성이기도 하고 특성들이 있는 것 같아요. 3개월 응축적으로 촬영하고 흩어지고 이러면서 그리고 자기의 어떤, 그 미투를 해야 되는 대상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이건 뭐 성폭력 문제뿐만 아니라 고발을 하는데 있어서도 주체가 불분명한 거죠. 다른 현장으로 가면 다른 감독과 제작진들을 만나게 되고 이게 계속 바뀌는 가운데 어디에 어떻게 하소연하고 누구를 공격해야 되고 누구를 비판해야 되는지도 애매해지는 상황인 거죠.

드라마 제작의 슬픈 보고서 <가장 보통의="" 드라마=""> 이한솔 저 (사진=필로소픽 제공)

 


◇ 정관용> 이러면서도,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드라마라는 꿈을 가지고 버티는 분들. 그분들의 꿈은 뭐예요?

◆ 이한솔> 저희 형인 한빛 PD도 마찬가지였는데 드라마라는 게 저도 많이 보기 때문에 사랑이라면 사랑, 분노라면 분노, 슬픔이라면 슬픔. 이런 어떤 사람의 가장, 드라마라고 하죠. 인간의 어떤 삶의 감정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콘텐츠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그분들이 마지막에 크레딧 올라갈 때.

◇ 정관용> 자기 이름.

◆ 이한솔> 그게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내가 누군가의 삶을 위로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여기서 현장에서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신 분들을 너무 응원, 정말 응원하고 지지하는데 그런데 그 사실 본인이 찍는 드라마의 내용과 그 바로 그걸 찍고 있는 본인의 상황이 역설적이게 괴리감 있는 게 너무 안타까운 부분이죠.

◇ 정관용> 네. 제작 현장에 일하시는 분들 본인들 스스로가 위로 받을 수 있어야 그래야 정말 시청자도 위로 받아야 되는데 지금 그게 일치되지 않는 상황이로군요.

◆ 이한솔> 네.

◇ 정관용> 그래서 책 말미에 이 스태프들이 정말 행복하면 좋겠다. 이 사람들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이렇게 쓰셨어요. 방법은 있잖아요.

◆ 이한솔> 네, 방법은 있죠.

◇ 정관용> 그런데 안 되는 거죠?

◆ 이한솔> 네.

◇ 정관용> 어때요? 이 책을 형이 하늘나라에서 보면 뭐라고 할까요?

◆ 이한솔> 사실 형이 어쨌든 되게.. 인간은 다층적이기도 하고 형도 되게 다양한 모습들을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어쨌든 정말 저는 보통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뭐 종사자 분들한테는 되게 특별한 어쨌든 드라마 판을 바꿨던, 방송 판을 바꾼 계기가 된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는 하는데 저로서는 정말 평범하고도 보통의 사람이었던 사람이 드라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 책이 그래도 나온 덕분에 형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또 형을 지지했던 많은 종사자 분들의 이야기도 같이 꺼낼 수 있어서 그래도 한 2년 전보다는 좀 더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형 앞에서도.

◇ 정관용>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들고 오신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한솔 이사를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한솔> 감사합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