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랏말싸미' 신선하고 슴슴한 한글 창제기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노컷 리뷰]

오늘(24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 (사진=㈜영화사 두둥)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 임기 말 8년을 그려낸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신선한 설정을 갖고 간다. 승려들의 부패가 고려의 패망 주범으로 꼽히면서 불교를 배척하고 억제하는 정책을 펴고, 대신 유교를 국시로 한 조선이 배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파격적이다.

세종(송강호 분)은 소수 계층의 지식 독점 체계를 깨고, '망하지 않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를 개발하려고 한다. 하지만 유학을 공부하고, 당시 명나라를 숭상한 대신들은 세종의 이런 생각이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혼자 골머리를 앓던 세종이 우연한 계기로 신미 스님(박해일 분)을 만나 한글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다.

한글을 정식으로 창제하기 전에도, 백성들이 더 쉽게 익히는 글자를 만들고자 했던 세종의 노력은 영화 군데군데 흔적을 남긴다. 정종 시절 약속을 지키라며 팔만대장경을 내놓으라는 일본 승려들이 세종 앞에 나타나면서, 신미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일본 승려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본 신하들은 어차피 조선은 유교의 나라이고, 팔만대장경쯤이야 줘 버리면 그만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은 부정적이다. 불심이 깊은 소헌왕후(전미선 분)는 더더욱 그렇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급파된 신미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조선은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일본 승려들에게 "밥은 빌어먹을 수 있어도 진리는 빌어먹을 수 없다"라고 일갈한다. 팔만대장경은 마음을 모아 백성들이 완성시켰기에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 것이다.

신미가 각종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을 알아챈 세종은 "너 나 좀 도와라"라며 협업을 요청한다. 왕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말도 가리지 않는 신미의 성품 덕에 때로 언쟁하는 두 사람을 연결하는 인물은 바로 소헌왕후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허락 아래 내관으로 분장한 승려들은 중궁전 안에서 새로운 소리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대군인 안평과 수양도 동참한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에 불교계의 도움이 있었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출발하는 영화다. 세종대왕 역은 배우 송강호가, 신미 스님 역은 박해일이 각각 맡았다. (사진=㈜영화사 두둥)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신미 스님이라는 승려가 있었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시행착오 끝에 한 걸음씩 발자국을 뗄 때 관객들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캐릭터도 살아있다. 신하들의 견제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새 글자를 만들겠다는 뚝심을 잃지 않는, 열정적인 왕 세종을 송강호는 완벽히 소화했다. 세종과 대거리하는 신미 역의 박해일은 밀리지 않고, 전미선은 품위와 강단을 갖춘 소헌왕후 역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극중 한글 창제 과정에서 큰 힘을 보탠 승려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암송하는 장면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어린 승려를 연기한 탕준상의 활약이 빛난다.

조철현 감독과 송강호가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세종 말년의 쓸쓸한 모습과 고뇌를 다룬 점도 인상적이다. 왕이지만 자신을 '백성들이 지어준 밥을 빌어먹고 산다'고 표현할 만큼 진보된 가치관을 지녔고, 시종일관 백성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 몰두한 세종에게서 성군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글 창제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신미를 부각하는 연출 탓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랏말싸미'는 개봉 전부터 역사 왜곡을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이야기의 속도가 빠르지 않고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09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기자는 세 번쯤 시계를 봤다.

24일 개봉, 상영시간 109분, 전체 관람가, 사극.
'나랏말싸미'는 '살인의 추억' 주역이 다시 모인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왼쪽부터 박해일, 송강호, 전미선 (사진=㈜영화사 두둥)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