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골학교는 절반이 다문화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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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복흥초 51명 중 25명 다문화학생
저출산 풍조와 국제결혼 증가, 주 요인
교실 내 차별 여전, 교과서 왜곡표현도
"시혜적 지원보단 인권 교육 더 중요"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이 다문화가족 자녀들을 가리켜 잡종강세·튀기 등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 시장은 사죄와 함께 인권교육을 받았고, 익산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다문화가족 정책 발굴에 나섰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선거 입후보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등 자성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우리는 정 시장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무형적 차별의식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CBS노컷뉴스가 한국사회와, 그 속에서 함께 사는 다문화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여전한 편견…다문화가족, 고난 뒤에 꽃피울까
②시골학교는 절반이 다문화학생입니다
(계속)


순창 복흥초는 전교생 51명 중 절반인 25명은 다문화학생이다. (사진=순창 복흥초)

 

"2학년 한 반이 6명인데 5명은 다문화학생입니다. 과거에는 전교에서 1~2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역전됐어요."

전북 순창군 복흥초등학교 2학년 담임 안소현씨는 "어느 때보다 다문화학생이 가장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흥초는 전교생 51명인 작은 시골 학교다. 이중 절반인 25명은 다문화학생이다. 국제결혼으로 맺어진 가정에서 태어난 학생이 많다.

1925년 개교한 복흥초 풍경은 94년 만에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다문화학생 비율이 높아야 10%를 넘기지 않았지만 1990년 말과 2000년 초를 기점으로 국제결혼이 활발해 지면서 50%까지 치솟았다.

인근 학교 상황도 비슷하다. 다문화학생은 순창 팔덕초가 절반(전교생 34명 중 17명)에 이르고, 순창 동계초는 17명(전교생 57명)이다. 순창초에는 47명의 다문화학생이 다닌다.

2016~2018년 전체 학생과 다문화학생 변화 추이. (자료=교육부)

 

저출산 풍조와 국제결혼 증가가 맞물리면서 학교 현장은 변화를 맞고 있다.

지난 2016년 1.68%인 전국 다문화학생 비율은 지난해 12만여 명으로 2%대에 진입했다.

반면 전체 학생 수는 2016년 589만 명에서 2019년 559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도시와 농촌의 다문화학생의 비중은 극명하다.

CBS노컷뉴스가 전북지역 초중고를 샘플 조사한 결과 농촌은 평균 10명 중 1명꼴로 다문화학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안군 14.91%, 장수군 14.32%, 임실군 13.47%, 순창군 12.66% 등의 다문화학생 비율을 보였다.

도시는 다문화학생 비중은 작지만 학생 수는 농촌보다 많다.

전주시는 다문화학생 비율이 2.15%에 머물렀지만, 학생 수는 1,279명으로 전북 14개 시군 중에 가장 많다. 익산시 1,136명과 군산시 779명 등이었다.

다문화가족들이 6월 28일 전북 익산시청 앞에서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남승현 기자)

 

학교 현장은 이제 다문화학생이 익숙한 존재가 됐지만 차별은 여전하다.

순창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 '너희 엄마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게 되고 그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선 순창군다문화가정지원센터장은 "아이들이 기분이 나쁘거나 말이 안 통하면 예전에는 욕을 했는데 지금은 '야 다문화 거기 서'라는 식으로 발언한다"며 "누구 엄마가 베트남이나 필리핀 사람으로 파악되면 함께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다문화학생 비중이 높은 순창군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소득 격차 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도시가 크다. 면보다는 읍, 읍보다는 시 단위의 학부모로 갈수록 무의식적인 차별이 많다.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교과서 내 교실 삽화에는 동일한 얼굴색의 학생들의 모습만 보인다. (자료= 교육부)

 

학생들이 보고 배우는 교과서도 다문화 차별 세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초등학교 도덕책을 살펴보면 교실 내부 상황 만화 묘사 시 상당수가 '살구색'을 띈 동양인으로 표현됐다.

다문화현상을 반영한 삽화는 이를 다룬 특정 단원에서만 나온다. 사진도 대부분 한국인 학생이 등장한다.

교과서 편찬위원회에는 다문화가족 등 사회적 소수자 의무 배치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다문화학생의 차별을 줄이려면 학생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전북교육청의 '다꿈(다 같이 꿈꾸는) 학교'로 지정된 복흥초는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체험 학습을 진행한다.

6월 28일 전북 익산시청 앞에서 다문화가족들이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남승현 기자)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간 대화 기회 향상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학교 현장에서 시혜적인 지원보다 보편적 인권 강화 교육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순창교육지원청 최용아 장학사는 "다문화 교육으로 초점을 맞추면 그 아이들에게만 시선이 간다"며 "같이 사는 세계 시민교육, 인권교육을 지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전북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최순삼 장학관은 "세계 보편적 담론인 인권의 감수성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면서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을 위해 언어의 벽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치원부터 언어발달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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