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밤의 문이 열린다', 내일이 없는 유령의 기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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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죽음'의 이야기는 어김없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사진=영화사 리듬앤블루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일이 없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왔던 길을 반대로 걷는다. 잠들어 있던 모든 어제의 밤을 지켜본 후에야 걸음을 멈춘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고 해서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감독 유은정)의 주인공 혜정(한해인 분)을 보면 사람이 저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유령 같을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혜정은 어린 시절 가족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과 헤어지길 바랐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 가장 좋았던 일로 꼽은 것이 '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건 가족이든, 직장 동료든, 모르는 사람이든, 본인에게 호감을 털어놓는 상대든 마찬가지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민성(이승찬 분)이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혜정은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듯한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저는 연애나 결혼에 관심 없어요. 제가 그런 걸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주목받고 싶어 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강렬히 욕망하지도 않고, 누군가와 더 관계 맺는 것에 아무 흥미가 없는 사람. '밤의 문이 열린다'는 얼핏 특이해 보이지만 동시대인들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 혜정이 유령이 된 이야기를 다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죽기 직전까지 벌어진 일을 하나하나 따라간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처음엔 약간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뒤로 갈수록 발견하는 실마리를 바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유령이 나온다는 공포+판타지 성격에 미스터리도 더했다.

영화에서 유령은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저주해서 퇴치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밤의 문이 열린다'의 유령은 살아있는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다. 산 사람과 '위치'만 다를 뿐, 괴기스러운 외적 특성이 강조되거나 '유령이라는 이유로' 덧대어지는 설정이 없다.

덕분에 관객들은 '유령'인 주인공 혜정에게도 어렵지 않게 이입해, 거꾸로 도는 시곗바늘을 좇는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에 속을 터놓는 것을 꺼리고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도 맘을 닫기만 했던 혜정은, 아무도 자기를 못 볼 때에서야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맨 위는 혜정 역을 맡은 한해인, 맨 아래는 효연 역을 맡은 전소니 (사진=영화사 리듬앤블루스 제공)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혜정의 시간은 하루씩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혜정은 유령이 되고 난 후 훨씬 동적으로 변한다. 눈앞에 나타난 찰나의 힌트를 놓치지 않고 혜정은 달린다. 자기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아이 수양(감소현 분)과 힘을 모아 못 보고 지나쳐 온 진실의 뒤를 밟는다.

수양의 처지부터 자신을 이렇게 만든 효연(전소니 분)의 정체도 알게 된다. 아무런 생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 혜정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 효연이다. 효연은 누구보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은데 '상황'이 본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스스로를 불쌍해한다. 하지만 자기 앞에 닥친 시련을 피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헤쳐나간다.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가장 동적인 장면도 효연에게서 나온다. 효연은 사채업자 광식(이근후 분)을 찾아가 칼로 찌른다. 체구와 본래 가진 힘부터 차이가 날 것 같은 보통의 성인 남자를, 앙심을 품은 여자가 잔인하게 해치는 장면은 낯설면서도 강렬하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과 맺음은 혜정 몫이다. 영화는 낙 없이, 희망 없이, 그저 지루한 시간을 버텨내던 혜정이 죽고 나서야 '연결'과 '소통'이 삶에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깨닫는 것으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혜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그 존재만으로 '내 삶이 초라하고 헛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영화는 그 사실을 꼭꼭 숨기다 마지막에야 내보인다.

주인공이 죽고 나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으스스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온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기묘한 점이다. '죽음' 이야기는 결국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일까.

15일 개봉, 상영시간 89분 50초,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판타지/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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