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한일전①] 도쿄 대첩과 산책 세리머니 그리고 올림픽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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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도쿄 대첩에서 결승골을 넣은 이민성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축구에서 한일전은 전쟁이었다.

초창기에는 한국이 늘 우위였다. 지면 이상한 경기가 바로 한일전이었다. 그런 한일전이 라이벌전으로 바뀐 것은 일본이 J리그를 출범(1993년)하고, 라모스 루이를 귀화시킨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이 기점이었다.

총 78번의 맞대결(A매치 기준). 그리고 41승23무14패로 앞서고 있는 한일전. 74번째 광복절을 맞아 한일전 명승부를 살펴봤다.

2017년 동아시안컵 결승에서 재현된 산책 세리머니.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도쿄 대첩, 그리고 사이타마 산책

1997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일본은 라모스에 이어 와그너 로페즈를 귀화시켰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의 심장부에서 활짝 웃었다. 후반 20분 야마구치 모토히로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38분 서정원이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후반 41분 이민성의 시원한 중거리슛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당시 중계 캐스터는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0년 5월 남아공 월드컵 개막 직전. 국내 출정식을 마친 한국이 일본 사이타마로 건너갔다. 일본은 월드컵 장도에 오르기 전 출정식 상대로 한국을 골랐다.

이번에도 승자는 한국이었다. 전반 6분 만에 박지성이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추가시간에는 박주영이 페널티킥으로 쐐기를 박았다. 일본의 출정식에 제대로 찬물을 뿌렸다. 특히 선제골 후 일본 관중 앞을 유유히 걸었던 박지성의 세리머니는 '산책 세리머니'라는 이름과 함께 한일전 단골 세리머니가 됐다.

2017년 12월 동아시안컵에서는 대승이 나왔다. 일본 홈에서 4대1로 이겼다. 한국도, 일본도 유럽파 없이 치른 경기였지만, 1979년 한일 정기전 이후 처음으로 한일전에서 4골을 터뜨렸다. 염기훈의 '산책 세리머니' 재현은 보너스.

박종우. (사진=연합뉴스)

 

◇올림픽 동메달, 그리고 이승우의 자신감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한일전은 치열했다. 아직 어린 선수들도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면서 전력을 다해 부딪혔다. 23세 이하, 20세 이하, 17세 이하 모두 한국이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 한일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 3~4위전이다.

동메달이 걸려있는 중요한 경기가 한일전으로 펼쳐졌으니 국민들의 관심 역시 최고조였다.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논란이 있었던 박주영이 전반 37분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11분 구자철이 추가골로 일본을 울렸다. 한국 축구의 올림픽 첫 메달이었다.

박종우는 동메달이 확정된 뒤 '독도는 우리땅'이 적힌 작은 종이를 들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정치와 분리를 추구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시상식 불참을 요구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됐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뻥 뚫렸다.

2014년 일본을 울렸던 이승우의 모습. (사진=AFC 제공)

 

2014년 태국에서 열린 16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8강. 이승우는 경기를 앞두고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승우는 일본을 상대로 2골을 몰아쳐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승우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 한일전에서도 선제골을 터뜨렸다.

가장 최근 한일전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펼쳐졌다. 오세훈의 결승골로 일본을 격파했고,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강인은 골든볼까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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