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곤 감독이 '좋은 결과'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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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 ②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데뷔가 2000년 영화 '너무 많이 본 사나이'다. 그러니 올해는 딱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다.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이층의 악당'(2010)이라는 개성 있는 코미디를 선보인 그는, 경력과 비교해 개봉한 영화가 적은 것을 두고 "(이 속도라면) 죽기 전까지 한두 편 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농담을 할 줄 아는 인물이다.

준비하던 작품이 중단되는 일이 겹치다 보니, 전작과 신작 개봉 간격이 10년이나 된 상황. 그래서인지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되는 순간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 시사회 때 "이 시간도 아주아주 중요한 시간, 소중한 시간으로 간직하도록 하겠다"라고 한 걸 보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재곤 감독에게 창작자로서의 욕구와 현실적인 제반 조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손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라면서도, 질문자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의미 있는 답을 들려줬다. 인터뷰를 끝까지 보면 그 답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일문일답 이어서.

▶ 동물원을 소재로 한 만큼 동물권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영화에 반영된 것 같다.

동물원 소재를 다루면, 동심을 불러일으키고 추억을 쌓아가고 야생동물과 교감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묘사하기는 힘든 시대인 것 같다, 이제는. 서구권에서는 진보적이고, 우리가 봤을 땐 굉장히 과격해 보이는 논의가 이뤄지고 관련 법 제정도 했다고 하니까. 동물원과 관련해서도 굉장히 진보적인 전망이 있고 한국도 점차 그런 쪽으로 가지 않을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저도 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어서 조사하긴 했지만,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서 짧은 시간에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동물원의 미래는 이래야 한다고 전망하는 게 경솔하다고 느꼈다. 아직은 제가 아는 게 한정적이니, 특수한 사례를 만들어서 인간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야생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교감이 실제로도 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그걸 이상화하거나 인간이 큰 기대를 가지는 건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걸(야생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너무 이상화하면 안 된다는 태도가 영화의 B 스토리와 결말에 담겼다.

▶ 코미디 영화라서 감독의 디렉션이 더 중요했을 것 같은데, 배우들에게 어떤 주문을 했나.

저는 배우들한테 코미디 연기를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코미디 연기라는 게 있지 않나. 말투와 표정을 재미있게 해서 즉각 효과가 있을 수 있고, 현장에서 배우가 대본 이상의 것을 해낼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그런 주문('코미디 연기를 해 달라')을 했을 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더라. 배우들 연기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튀고, 캐릭터 일관성이 무너지고 코미디를 하려는 시도만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본을 짜고 의도적인 대사를 만들고 편집점을 두며 코미디를 예측하지만, 그것도 100% 다 맞지는 않는다. 저는 적어도 배우가 대본 외의 것을 가지고 아주 더 웃겨보려고 뭘 하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이건 제 경험이라서 그런 스타일을 선호한 거지, 어느 방법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 직원들이 각자 동물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면서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코미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북극곰, 나무늘보, 고릴라, 사자, 기린. 각각 안재홍, 전여빈, 김성오, 강소라, 박영규가 연기했다. (사진=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 평소 웃음이나 반응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하는데, 만족스러운 연기가 나오면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쓰는 용어로는 OK냐, 아니냐인데 바로 뚜렷하게 피드백을 준다. '연기가 좋았다'라고. 왜 다시 하는가에 대해도 설명해주고, 가능한 한 정확한 디렉션을 주려고 매 테이크 집중한다. 코미디 영화를 만들 때 박장대소하는 감독도 있는데 그것도 장점이자 능력이라고 본다. 근데 저는 그렇게 하면 연기한 게 티 나지 않을까. (웃음) 대신 분명하게 피드백을 준다. (웃음)

▶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장면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다.

연기와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김기천 선배님(고 대표 역)이 나왔던 장면. 다른 캐릭터와 다르게 한 씬 나오시지만 유독 김기천 선배님한테는 어떤 주문을 주지 않았다. 저도 그 씬, 그 캐릭터에 어떻게 연기 디렉션을 줘야 할지 전체 리허설하기 전까지 답을 못 찾고 있었다. 촬영 순간까지는 어떡하든 답을 찾아서 줘야지, 했는데 전체 리허설 때 본인이 준비한 걸 보여주셨을 때 '아, 다행이다!' 싶었다. 유일하게 그 씬만 디렉션 없이 연기자가 만들어 온 거다.

▶ 나무늘보 탈을 보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동물 같다고 한 대사가 있는데, 그게 실제로 탈을 받아보고 전여빈이 한 말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현장에서 바꾼 대사들이 있나.

여빈 씨뿐 아니라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다 그런 반응을 보였다. (웃음) 제가 제일 먼저 수트를 봐서 그렇게 (크기가) 크게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걱정됐다. 혹시라도 저 나무늘보가 관람객을 속일 만큼 그럴듯하게 안 느껴지면 어떡하지 하고. (그 대사는) 관객들에게 미리 '만드는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하면서 언급하고 넘어가는 거라고 보면 된다.

▶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수정하는 편인가. 아니면 그대로 가져가는 편인가.

내용과 관련해서는 거의 그대로 가져간다. 내용을 임의대로 바꾸기 시작하면, 그와 관련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바꿔야 한다. 정말 바꿔야 할 상황이 있긴 있는데, 그런 부분이 많지는 않다.

▶ 동산파크가 잘 운영되고 있나 감시하러 온 오 비서(서현우 분)에게 동물을 소개할 때 이름이 대부분 '~롱이'인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애드리브인가.

애드리브는 아니다. 원래 있던 대본이고 배우들한테 주문한 연기다. 대신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는 그날 그 촬영 테이크마다 어느 정도 배우들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 애드리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있긴 있지만.

▶ 언론 시사회 때, 코미디 작품을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고 했는데 앞으로도 웃음을 주는 작품을 만들 계획인지.

구상하는 스토리 중에서 코미디가 없는 작품도 있고 어느 정도 코미디가 있는 작품도 있다. 어떤 작품의 제작 단계가 가시화된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해치지않아' 촬영 현장에서 손재곤 감독의 모습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 '이층의 악당' 이후 10년 만에 영화를 내놓는데, 그동안 제작 환경의 변화를 실감한 게 있다면.

규모가 더 커졌고 제작 시스템이 더 전문화되고 체계화되고 더 합리적으로 변한 것 같다. 그만큼 각 파트에 요구하는 전문성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건 확실히 알게 됐다.

▶ 비슷한 맥락의 질문인데,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보다 20년이 흐른 지금, 본인이 더 나아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음… 제일 나아진 부분은 배우와의 소통! 그 부분은 그래도 확실히 경험치가 쌓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제 방법도 생기고, 좀 더 유연해진 것 같다. 그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건, 아주 신인이 아닌 이상 그 배우의 연기 스타일과 경력을 (통째로) 캐스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제가 머릿속에 그리던 그림과 다르게 연기하면 '아…' 하면서 자꾸 다른 것을 주문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배우는 자기가 준비한 캐릭터 분석과 (제 요구가) 잘 안 맞는 경우를 경험하는 거다. 전보다는 배우와 소통하는 제 방법이 생겼고, 체계화되었다. 배우의 연기를 좀 더 유연하게 수용할 수도 있고.

▶ 감독은 적게는 수십, 많게는 백 명이 넘는 팀을 끌고 가야 한다. 창작자로서 그리는 상을 얼마나 잘 펼치는지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반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그때 균형을 어떻게 잡으려고 하는지.

거기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닌데… 작은 부분이지만 말해 보겠다. 좀 더 어릴 때는 작품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운 희생이나 갈등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아니다. 우리 영화 촬영하는 건 몇 개월에서 일 년 정도고, 결과물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은 한두 달 정도다. 좋은 결과물이 나와 그 후로 도움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다섯 달 후에도 매일 '해치지않아' 결과를 생각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준비하고 촬영하는 기간에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게, 결과물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저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힘든 점이 있을 거다. 일하면서 받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힘듦 말고, 필요 이상의 인간적인 모멸감은 덜 느끼게 해서, 촬영 기간에 최대한 좋은 기분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 마지막 질문이다. '해치지않아'를 기다리는 관객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제 생각엔, 저도 많은 영화를 봐 왔지만 이 특수한 설정은 잘 없다고 본다. 만약에 이 아이디어가 제 머릿속에 떠올랐으면 저는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버렸을 것 같다. 웹툰 통해서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저희는 실사로 잘 캐치한 것 같다. (웃음) 접해보지 않은, 아주 새로운 코미디 작품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끝>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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