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 "당신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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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장민경 감독 (세월: 라이프 고즈 온)
   
◇ 채선아>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이를 참사로 잃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눈을 뜨면 내일은 오고 삶은 계속된다면, 게다가 사회적 참사가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런 고민을 꾹꾹 눌러 담은 영화입니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장민경 감독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장민경> 안녕하세요.

◇ 채선아> 세월호 10주기가 되는 날인데, 2014년 4월 16일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 장민경> 당시 제가 대학생이었어요. 첫 단편 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하고 나서 그 상영기간에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을 거예요. 휴대폰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배가 한국 근방에서 침몰했다, 가라앉고 있다는 얘기를 본 거죠. 사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대형 참사가 될 줄은 몰랐었고 구조를 하러 가겠거니 싶은 생각과 동시에 또 그때 생각으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나 싶고, 그래도 당연히 구하겠거니 하고 더 들여다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304명이 희생됐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뭐라고 얘기를 해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납득이 안 갔어요.
   
나중에는 제가 훼손당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피해자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그 당시 기준으로 몇 년 전에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이런 참사가 너무 반복되다 보니까 이 나라는 내가 저기 있어도, 혹은 다른 누가 저기 있어도, 생명을 구하러 오지 않을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력감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 채선아> 아마 참사에 대한 아픔을 견뎌내는 각자만의 방법도 있을 텐데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영화로 기록을 남기셨어요.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을 기록한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예고편 초반에 이런 문구가 나와요. "당신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나요?" 이 문구가 어떤 의미인가요?


◆ 장민경>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이를 먼저 떠나보낸 유경근 님이 팟캐스트 진행을 맡으시면서 다른 참사의 유족들과 서로 묻고 답하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찾아가는 내용이예요.
 
◇ 채선아> 유족이 유족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팟캐스트죠.  

◆ 장민경> 그 팟캐스트에 출연하시는 분들은 세월호 참사 유족 외에 대구 지하철 참사, 그리고 씨랜드 참사로 딸을 잃은 분도 나오시고, 국가폭력으로 아들을 먼저 보내셨던 배은심 님도 나오십니다. 그분들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서로 나누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모습들을 담은 영화입니다.

 
◇ 채선아> 그런 모습을 직접 보시면서 영화로 제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 장민경> 저는 2017년부터 미디어위원회라는 곳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활동을 기록하면서 공공 아카이브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2018년에 유경근 님이 팟캐스트를 하신다고 해서 처음에는 기록 차원으로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도 그때 한국 사회에 그렇게 많은 참사들이 있었는지를 처음 알았고, 다른 참사 유족들을 직접 뵌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분들이 나누시는 이야기를 제가 그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매일 보고 듣다 보니까 그 이야기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기록물로만 남겨두기보다는 좀 더 많은 분들과 나눠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서 영화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 채선아> 제가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새긴 흉터를 하나하나 다 드러내는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흉터가 너무 쓰라리고 마냥 아프다기보다는 '다음번에는 안 그래야지'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주는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 장민경>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슬픔이 있는데 절망스럽지 않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픔이 떠오르니까 힘드실 수 있지만 동시에 이 영화를 통해 세월호 다큐나 영화를 마주할 힘이 생긴 것 같다는 반응이 있는데, 그게 저한테도 되게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 채선아> 이 영화에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은 분들이 나오시거든요. 세월호 참사, 씨랜드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이런 참사의 유족들이 서로 공감대를 이루는 모습이 그려져요.


◆ 장민경> 사실 제가 놀랐던 점 중에 하나가. 대구 지하철 참사 이야기를 하는데 그 안에 세월호 참사가 보이고, 씨랜드 참사 이야기를 하는데 그 안에 대구 지하철 참사가 보이는, 어떤 기시감들이었어요. 그 반복되는 참사의 문제가 결국에는 유족들이 참사 이후에 겪어야 했던 문제들로 연결됐거든요.
   
그 유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가장 문제적이었던 것은,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상실의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다시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애도라는 것은 사실 망자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 긴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출발은 어떻게 해야 되냐, 죽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시신을 수습하고, 망자가 왜 죽었는지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사회적 참사는 어떤 참사이든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과정부터가 힘에 부치고 어려운 난항을 겪게 되는 거예요.

◇ 채선아>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부터가 어려우니까요.

◆ 장민경> 그 죽음을 일단 납득하기가 어려우니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도 힘든 것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애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러면 유족들이 그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이것들을 좀 보고 싶었습니다.

◇ 채선아> 유족들이 참사 이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 삶을 담으신 건데, 그 내용 중에 감독님이 기억에 남는 장면을 간단히 소개해주실까요?  


◆ 장민경> 일단 떠오르는 것은, 유족들 각자가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오셨지만 그중에 특히 저한테도 뭉클하게 다가왔던 것이, 곁을 내어주는 모습이었는데요. 특히 유경근 님이 세월호 가족분들이 광주에 내려갔었던 때를 기억하면서 인터뷰를 해주셨던 적이 있어요. 5월 어머니들을 광주에서 만났을 때였는데, 그분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되게 많이 걱정을 하셨어요. 주변에서 '세월호랑 광주랑 무슨 관련이 있냐, 왜 거기를 내려갔느냐'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여러 걱정을 안고 있었는데, 정작 만나자마자 5월 어머니들은 그냥 포근하게 안아주시면서 '내가 다 안다' 이렇게 얘기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하실 때 유경근 님도 그렇고,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눈에서 뭉클함이 느껴지는 그 감정들, 눈물도 나고 그 뭉클했던 감정을 표현하셨던 게 저한테도 전해져서 그게 너무 기억에 남아요.

◇ 채선아> 같은 유족으로서 가족을 잃은 경험, 그 과정을 먼저 겪어보셨기 때문에 '네가 지금 어떤 걸로 힘든지 내가 다 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신 거네요.  

◆ 장민경> 네. 그리고 또 유경근 님이랑 씨랜드 참사 유가족 고석 님이 서로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두 분이 서로에게 미안함을 표현해요. 유경근 님은 고석 님에게 '씨랜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내가 그걸 잘 모르고 그 옆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고석 님도 참사 이후에 다른 활동들을 이어오시긴 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곳에 같이 가서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거든요. 그 장면이 되게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 채선아> 정말 유족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보통 힘든 일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를 건넬 때 우리가 '시간이 약이다, 세월이 약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 장민경> 실제로 출연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했어요. 진짜 시간이 약이냐고, 세월이 약이냐고. 그런데 배은심 님이 '아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약을 찾지 말아야 되는 거냐'고 유경근 님이 물어보시니까 '안고 사는 게 약'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안고 산다는 게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물을 건 묻고, 요구할 건 요구하고, 그렇게 같이 호흡하면서 사는 거라고, 그게 안고 사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여러 참사의 이야기들을 연결짓는 일이, 저에게 안고 사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채선아>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이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광고판을 보시면서 이런 생각을 하신대요. '광고물이 예전보다 많아졌네. 저 광고물은 불에 탈까, 안 탈까. 기관사가 요즘은 지하철에 없기도 하다는데, 없으면 나중에 불이 났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을 하신다고 하고, 씨랜드 참사로 아이를 잃은 아버님은 소방 쪽에서 석박사를 하셨다고 해요. 이런 게 다 하나의 안고 사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족들이 바라는 건 사실 안전 사회,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일 텐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 장민경> 내 소중한 사람, 내 아이를 지키려면 나의 힘만으로는 그 아이를 지킬 수가 없고, 사회가 안전해야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날이 오면,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채선아> 내 아이 뿐만 아니라 아이의 친구의 안전까지 괜찮을 수 있는, 그 안전망을 우리가 만들어 줘야 한다는 뜻이네요.
 
◆ 장민경>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은 사회였는데, 유족 분들이 놀라웠던 지점 중에 하나가, 그 유족분들이 스스로 그런 안전망이 되어 오셨더라고요. 계속해서 그런 말씀도 하시고, 실제로 안전 교육이라든지 여러 예방 활동을 하시기도 하고요. 우리가 그것들을 유족들의 몫으로 남겨둘 게 아니라, 사회가 다 같이 그런 일들을 계속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다 같이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여러 참사들이 계속 반복되는 걸 보면 세상에 대한 환멸감을 느낄 수도 있잖아요. 무력감도 느끼고. 그 순간을 좀 견딜 수 있게 해준 게, 참사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뭔가 떠나지 않게 붙잡고, 안부를 물어봐주고, 이런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인간의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구나. 희망을 보기도 했고요.

예기치 못한 참사가 계속 일어나고, 우리들 중 누구든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먼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일 수 있고., 당장 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동시에 참사의 당사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삶이 끝나지 않도록, 유족들과 그 주변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도 우리가 같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채선아> '세상 끝에 있는 것 같아도 삶은 끝나지 않았다' 이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장민경 감독과 얘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장민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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