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통령의 내로남불과 채상병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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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원 기자 윤창원 기자 
채상병 사건 특검법의 국회 통과 여부는 지켜봐야겠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이 특검법 상정에 반대하는 것은 확실하다. 국민의 67%이상이 찬성하는 특검법을 왜 반대하는 것일까. 그 반대는 명분을 갖고 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하는 이유가 여권 관계자 입을 통해 보도됐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채상병 사망 사건은 군검찰에서 초동 조사해 경찰 수사로 넘겨야 하는데 해병대수사단장이 '월권'을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월권'의 실체가 무엇인가. 군인 사망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채상병 사망 사건을 해병대수사단이 수사하는 '월권'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다. 
 
또 이첩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기록을 경찰에서 군검찰이 회수해오는데 대통령실이 개입했고, 이는 '외압'이라는 주장에 대해, "초동 조사를 넘어선 수준의 사실상 '수사결과 보고서'였는데 이종섭 국방장관이 잘못 결재한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장관 결재와 이첩 등 절차상 잘못된 문제를 조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언론 보도내용은 최근에 전해들은 얘기와 꼭 일치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때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사권을 조정한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을 알지 못한 채 국방부 장관에게 "이런 문제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대한민국에서 사단장을 하냐"고 역정을 냈을 개연성이 크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지난달 22일 '국민의힘 당선자 총회'에서 채상병 특검법의 부당성에 대해 15페이지짜리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이 내용도 대통령 논리와 일치한다. 해병대수사단의 기초조사가 수사권에 해당하지 않음으로 장관의 지휘·감독 대상이고, 장관의 어떤 명령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군검찰이 회수한 이첩기록도 "항명사건의 증거물"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대통령 말을 전한 언론 보도의 여권 관계자가 유상범 의원인지는 모르겠다. 유 의원은 특검법에 찬성한다던 안철수 의원도 자신의 설명을 듣고 '철수'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채상병 사건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가 '기초조사'든, '초동조사'든, 그 이름을 뭐라 붙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행위'가 월권에 해당하는가, 그리고 '수사'에 해당하지 않는가가 쟁점일 것이다. 우선 '기초조사나 초동조사'가 수사에 해당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살펴본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군검찰 조사에서 "군사법원법의 개정 취지는 종국적 수사권은 경찰에 있다"고 진술했다. '종국적 수사권'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군인 사망사건은 현실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민간경찰이 영내에 들어와 군 관련자들을 상대로 초동수사를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군사경찰이 범죄와 관련이 돼있는지 일차 조사를 해줘야만 한다. 다만 법은 지체없이 민간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라고 강제한다.
 
채상병 영결식장. 연합뉴스 채상병 영결식장. 연합뉴스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는 변사체의 사망 검시부터 사실상 범죄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범죄에 의한 사망인지 아닌지를 식별해야 한다. 그 검시는 군사경찰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관련 군인들에 대한 기초조사도 마찬가지이다.
 
채상병이 사망하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작년 7월 20일, 윤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고 이종섭 장관은 해병대수사단 수사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모두 수고했다"고 말한 뒤 경과보고서에 사인 결재를 했다. 대통령과 유상범 의원이 해병대수사단의 조사를 '월권'이라고 지금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를 모두 부정하는 처사다. '월권'이라면 그당시 왜 잘못을 교정하지 않았는지 답해야 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영화 제목같다.

군검찰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해병대수사단에게 수사권이 없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문제삼지도 않는다. 유 법무관리관은 "종국적 수사권을 경찰이 갖고 있다"고 말하는데, '종국적 수사권'이란 군사경찰의 기초조사부터 경찰 수사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기초조사이든 검토든 무엇이 됐든 수사는 사체의 검안·검시부터 시작되므로 '종국적'이라는 말을 수사권 앞에 붙인 것이다. 유 법무관리관은 심지어 박정훈 단장과 통화에서 "수사에 (제가) 개입한다고 느끼십니까"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유 법무관리관은 국방부에서 군사법원법 개정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황진환 기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황진환 기자 
군검찰도 해병대수사단에게 '수사권 유무'에 대해 단 한번도 문제삼은 적이 없다. 박 단장의 항명사건에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권이 없다고 전제하면 이첩 보류명령을 불복했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항명 사건 재판에서 수사권 유무는 아무런 쟁점이 아니다. 쟁점은 이첩보류 지시가 "혐의자를 빼라"는 수사 왜곡 지시인지, 그리고 해병대사령관이 이첩 보류 명령을 명시적으로 박 단장에게 전달했는가 일 뿐이다.
 
이첩기록 회수가 "항명사건의 증거물"이라는 유상범 의원 주장 또한 허무맹랑해서 표현할 말이 없다. 재판에서 군검찰은 회수된 이첩기록을 제시한 바가 없고, 공소사실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최근 여당 내에서 채상병 특검법 통과에 찬성한다는 사람들이 입을 꾹 담고 있다. 대통령실의 입장을 듣고 철수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작년 8월 1일 당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박진희 장관군사보좌관 간의 '부정청탁성 문자'를 열심히 읽어보기를 권면하겠다. 해병대수사단이 수사권이 없다면 장관 참모가 왜 청탁을 하는 걸까, 그냥 깔아뭉개는게 나았다.
 
군사보좌관: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책임(사령관과 연대장을 지칭)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 주십시오.

김계환 사령관: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경찰 조사 이후입니다. 나도 부하들 전부 살리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군사보좌관: 사령관님! 장관께서 수사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수사권이 없기에 수사가 아닌 조사라고 하셨고 조사본부로 이첩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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