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역차별'이라는 여성의원 30% 할당제를 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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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여성의원들, 국회의장단 진출 촉구…이희경 전 의원 이후 6년 만에 재도전
상임위원장·간사 30% 요구에 일부 남성 의원들 불만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여성 의원, 당선인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제21대 국회의장단 여성 포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대법원에 법관용 여성 화장실이 생긴 건 첫 여성 대법관이 임명된 지 12년 만이었습니다.

8명의 남성 대법관들이 역대 두번째 여성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임명되기 전까지 탈의실 옆에 화장실을 설치해 달라는 첫 여성 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요구를 묵살해왔기 때문입니다.

한 명과 두 명의 차이는 작아보이지만 이처럼 숫자에서 오는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 역시 팀내 유일한 여성이어서 종종 느끼는 바인데 둘이 함께 하면 될 일도 나홀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요구를 하면 성사시키기 어렵습니다.

정치권에서 여성 할당 30%를 지켜야 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입니다. 국회 의장단에 여성 최다선 의원을 포함시키고,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간사직에 좀더 많은 여성 의원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원내 15% 정도 되는 여성 의원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일부 남성 의원들은 여성 할당 30%에 불만을 터뜨립니다.

한 의원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선수(選數)가 남자보다 낮아도 부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을 할 수 있는 건 불공평하다. 역차별이다"라고 했습니다. 또다른 의원은 상임위원장에 도전하는 여성의원에 대해 "자기 정치만 한다"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으로 재·다선 의원이 넘쳐나게 되면서 상임위원장과 간사를 맡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판국에 역대급으로 많이 들어왔다는 여성 의원들에게 자리를 뺏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원님들, 대개 자기 정치의 달인들이십니다.

자기 정치하시느라 선수(選數)라는 자격 요건도 갖췄지만 부의장에서 탈락한 경우는 아예 잊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2014년 국회 부의장이 되는 걸 목전에 뒀던 이미경 전 의원, 같은 당 박영선 전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서 "여자가 원내대표 하면 됐지, 부의장까지 해야 되느냐"는 당내 반발에 부딪쳐 좌절해야 했거든요.

여성 30% 할당제는 역차별이 아닙니다. 할당제는 오랜 시간 쌓여온 구조적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선수(選數)가 낮은 여성 의원들에게 자리 뺏기는 게 아니라, 그동안 뺏어왔던 자리를 돌려주는 겁니다.

민주당 양향자 당선인이 12일 여성의원 국회의장단 진출 기자회견에서 "여성 의원의 의장단 진출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다. 잘못된 정치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변혁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양 당선인은 "계량적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민의의 정당인 대한민국 국회가, 유권자 50%의 뜻을 오롯이 반영할 수 있도록 첫 걸음을 떼고자 한다"고도 했습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 여성 국회 부의장 선출 추진 모임 (사진=연합뉴스)

 

여성 의원이 많아진다고 정말 여성 유권자의 뜻이 더 잘 반영되겠느냐고 의심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미국 존 코머(John Comer) 교수는 "의회에 여성이 많아질수록 여성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율이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의원 지역구의 여성 유권자는 남성 의원 지역구의 여성 유권자보다 투표율도, 정치 토론회 참여율도, 정치 토크쇼 시청율도 더 높았다는 게 연구의 핵심입니다.

여전히 억울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원 구성 시 여성 의원 30% 할당을 제안했는지 그 배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될 일입니다.

이 제안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직원 강제추행 직후 나왔는데, 남 의원은 "민주당에 의한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어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상대 정당을 '성(性)누리당'이라고 조소하던 민주당에서 최근 2년 사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과 정봉주 전 의원의 대학생 성추행 논란이 터졌습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민병두 의원과 영입인재였던 원종건씨에 대한 미투 고발, 김남국·홍성국·양기대 당선인의 성희롱 발언 논란까지 연이어 불거졌습니다.

여성 의원들에게 당내 성교육 강좌뿐만 아니라 주요 보직까지 맡겼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김남국 당선인처럼 여성의 몸에 대해 품평했던 후보를 "네거티브이자 마타도어"의 희생양이라며 감싸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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