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검찰 강압수사 있었다"…'대우조선 2라운드' 소송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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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중인 고재호 전 사장 행정법원 출석
1600만원 과징금 취소소송…본질은 "검찰 강압수사"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주]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전 사장.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2020.5.19.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법정 발언
"남상태 사장 재판에서 진실의 일부가 나왔습니다. 당시 경리 담당 상무였던 사람이 양심선언을 한건데요.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모씨가 검찰과 금감원 진술에서 '2008년도 분식회계는 없었다'고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금감원 담당 조사관의 윗선에서 '검찰 진술과 상반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된다. 당신 다시 조사받아야 한다'고 해서 이씨가 사실상 허위로 진술했다는 겁니다."

'고재호'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지요. 불과 몇 년 만에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조선업계에 종사하거나 2015년부터 불거진 대우해양조선 사태를 유심히 살펴본 분들에겐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2017년 9월 징역 9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인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간만에 법정에 나와 얼굴을 붉히며 말을 토해냈습니다. 지난 19일 고 전 사장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장을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 재판의 한 장면입니다.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던 고 전 사장에게 증선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1600만원입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미 9년 형을 선고받은 고 전 사장의 입장에서 이런 소송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들 겁니다. 특히나 이번 소송을 위해 고 전 사장의 옆에는 법무법인 해마루와 대륙아주 변호사 5명이 출석했습니다.

어딘지 익숙한 로펌 이름일 텐데요. 해마루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민생당 의원,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만든 곳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책 '검찰을 생각한다'를 집필한 김인회 인하대 교수도 해마루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정부 들어서는 해마루 출신 변호사들이 줄줄이 청와대 실무진으로 입성해 눈길을 끌기도 했죠.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인혁당 재심·국가배상소송,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의 승소도 해마루의 작품입니다.

그런 해마루가 이번에는 2015년 국내 조선업계는 물론이고 제조업 경기 전반을 흔들었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의 진상을 재검토하는 소송에 뛰어든 겁니다. 한국판 '엔론 스캔들'(미국 엔론사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을 일으켰다고 강한 지탄을 받았던 피고인 측에 서서 이들이 다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변호사들은 이날 상당한 분량의 프레젠테이션(PPT)을 준비해와 약 1시간 이상 구두 변론을 했습니다.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수사의 진실'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할 듯 한 내용이었습니다.

김대희 대륙아주 변호사 PPT 변론 (준비서면 작성 해마루)
"이 사건은 유례없이 검찰에서 분식회계 규모와 내용까지 확정한 상태에서 금융감독원에 내용을 통보했습니다. 금감원은 검찰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매우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통상적인 유사 사건들은 금감원에서 먼저 조사해 고발하면 검찰에서 형사사건화 되는 데 정반대인겁니다."

고 전 사장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증선위 자체 조사보다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수사가 일부 강압적으로 이뤄져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김대희 변호사 PPT 계속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가 동일하게 체인지오더(추가공사대금)를 회계에 반영하는 관행과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승인 가능성이 있는 (관행상 계약금액 증액으로 인식할 수 있는) 체인지오더 수익을 회계에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분식회계라고 산정했습니다. 그게 이번 사건 분식회계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다." …(중략)…
"방대한 재판기록을 봐도 (실무를 아는) 사업관리팀을 조사한 적이 없어요. 검찰이 경영관리팀 직원들을 윽박질러 진술하게 했습니다. 일부 증인은 실제로 검찰의 압박에 따라 진술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고 전 사장과 변호인단은 허위 진술·법정증언한 실무진을 위증죄로 형사 고소한 상태입니다.

또 고 전 사장보다 먼저 사장직에 있었던 남상태 전 사장이 나중에 대법원에서 같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점은 법조계에서도 계속 문제로 삼아온 부분입니다.

남 전 사장 재임 시절인 2008년부터 이뤄져 온 분식회계를 2012년부터 재임한 고 전 사장 역시 눈감았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2008년 남 전 사장의 분식회계에 대해 법원은 '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고 전 사장의 분식회계만 유죄로 본 상황입니다.

고 전 사장의 혐의는 분식회계(자본시장법 위반)를 바탕으로 한 거액의 회사 대출(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과 직원 상여금 지급(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등입니다. 여러 범죄행위의 전제가 '분식회계'이기 때문에 남 전 사장 판결문의 취지가 고 전 사장에게도 적용된다면 혐의 전체가 무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반면 남 전 사장은 분식회계와 별도로 자신의 연임 로비를 위해 회삿돈을 건넨 배임 혐의 등 때문에 징역 5년형이 확정됐습니다.)

변호인단은 고 전 사장과 남 전 사장 판결에서 나타난 엇갈린 사실판단과 위증 관련 증거들을 토대로 고 전 사장의 재심이 가능할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산업계는 물론 주주들도 막대한 피해를 본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고 전 사장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순 없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상 공기업이었던 대우조선해양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책임을 특정인에게 '몰아주기'하고 익명의 관리자들은 몸을 피했다면, 그리고 그 수사과정에 과잉이나 오류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됩니다.

참고로 당시 대우조선해양 수사의 책임자는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자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를 이끌기도 한 한동훈 검사장입니다.

재판부는 고 전 사장 측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에 대한 사실조회를 진행키로 하고 오는 7월 17일 다시 재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래픽뉴스=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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