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공포분자' 현대사회 모순 꿰뚫는 냉철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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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외화 '공포분자'(감독 에드워드 양)

(사진=㈜에이썸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이 바라본, 급격히 자본주의 시대로 빠져든 현대 대만의 모습 이면에는 어떠한 불안과 어둠이 감춰져 있는 걸까. 영화 '공포분자' 속 성공에 집착하는 한 남성의 비극적 결말은 사회를 향한 감독의 냉철한 시각이 담겨 있다.

'공포분자'(감독 에드워드 양)는 소녀의 장난 전화 한 통이 불러온 네 남녀의 기묘한 파장과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타이페이 스토리' '공포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타이페이 3부작' 중 하나.

현대 도시인, 독재와 폭력을 견뎌낸 대만의 민낯을 그려낸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번에도 대만 사회와 그 속의 인물들을 세밀하게 관찰해 담아낸다.

텅 빈 새벽을 울리는 총성과 함께 경찰 수사를 피해 도망가다 다리를 다친 소녀는 거리에 쓰러진다. 다친 소녀를 우연히 카메라에 담게 된 소년은 사진 속 소녀에게 점점 이끌린다. 그 무렵 갑작스레 출세의 기회를 잡게 된 의사 이립중과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아내 주울분은 권태로운 부부생활에 지쳐 있다.

어딘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네 남녀, 그러나 각자 공허와 불안을 마음에 품고 있던 이들의 일상은 소녀가 건 장난 전화를 계기로 기묘한 비극으로 번져 나간다. 그리고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접점이 없던 이들에게 각기 다른 파장을 일으킨다.

(사진=㈜에이썸픽쳐스 제공)

 

초반에는 각기 다른 장소, 전혀 다른 네 인물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이들을 과연 어떻게 엮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흩어져 있던 이들을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해 서서히 엮어 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촘촘하고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서로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인 이립중과 주울분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이립중은 성공에 목말라 있고, 주울분은 소설을 쓰던 중 교착 상태에 빠져 다른 출구를 찾아 나선다. 한편에서는 어쩐지 불량스러워 보이는 이들과 어울리는 소녀를 엄마는 집 안에 감금하고, 여자 친구에게 소외감을 들게 한 소년은 사진 속 소녀에 끌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을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소통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 자신의 목적이나 욕망만을 나타내며 그 안에 빠져 버린다. 어쩌면 이들 네 캐릭터가 지닌 모습이 현대화의 이면일 수 있다. 뉴웨이브의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에드워드 양은 이런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들이댄다.

소녀의 장난 전화는 일종의 도화선처럼 작용한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던 주울분에게는 전환점이 됐지만, 욕망을 애써 숨기고 그럴싸하게 포장해 온 이립중의 삶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언젠가 나타날 균열과 파멸이었다. 두 부부의 대화나 이립중이 주울분을 대하는 태도 등을 보면 말이다.

(사진=㈜에이썸픽쳐스 제공)

 

재밌는 것은 네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과정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듯 모호하다는 데 있다.

특히 영화는 마치 주울분이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중간에 소년이 주울분의 소설 내용을 두고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하면서 주울분의 소설과 현실 사이는 더욱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영화 마지막, 이립중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현실이든 소설의 결말이든 이립중이 비참한 마지막에 놓인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상대를 생각하거나 상대와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해 간 이립중에게 긍정적인 미래는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공포분자'는 현대화와 이제 막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격변의 시기, 혼란스러운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삶을 냉철한 시선으로 풍자하고자 했는지 모른다.

이 냉철한 풍자의 과정은 에드워드 양 특유의 미장센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표출된다. 빛의 완급을 조절해가며 드러나는 미장센은 그 자체로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현대화된 도시, 그곳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불안과 방황마저 명암에 담아 정교하게 그려낸다. 감독이 펼쳐내는 명암의 미학은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둑한 감정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109분, 9월 17일 개봉, 15세 관람가.
(사진=㈜에이썸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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