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고비마다 '거짓말 돌려막기'…옵티머스 사기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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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포트폴리오 95% 공공기관 채권 투자…모든 내용이 거짓"
NH증권→예결원→금감원 무사 통과 배경은 여전히 수사 中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10.16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 등 첫 공판
검찰 "다음으로 이 사건 펀드 구조가 어떻게 되는 건지 설명하겠습니다. (투자제안서 보여주며) 이것이 투자자가 설명하는 개요입니다. 옵티머스 펀드 운용의 기본 개요는 포트폴리오 95% 이상을 정부산하 공공기관이 발주하고 운용하는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고 목표 수익률은 3.3%로 운용할 계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든 내용은 거짓이었습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최근 뉴스만 보면 늘 최상단을 차지하는 이슈가 있죠. 바로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사태'. 펀드에 투자했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만 1천명 이상, 피해금액은 최소 5천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펀드 환매중단 사태인데요. 이같은 펀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태가 벌어졌는지가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와 공범들의 첫 재판에서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검찰이 위와 같이 밝힌 대로 김 대표와 공범들은 애초부터 '거짓말'로 대담한 사기극을 기획합니다. 김 대표는 우선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의 확정매출채권(이하 채권)에 투자한다는 명목의 펀드를 만듭니다.

그런데 사실 이 채권은 특별한 조건을 갖추지 않는 이상 원칙적으로 '양수도', 쉽게 말해 권리를 넘겨주거나 받는 거래가 불가능한 채권입니다. 김 대표도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론 양수가 불가능하긴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러자 이 채권을 마치 양수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만들기로 마음먹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를 중심으로 옵티머스의 2대 주주이자 STX건설 영업이사였던 이동열씨, 변호사이기도 한 윤석호 이사 그리고 옵티머스 자산관리팀장 송모씨 등 공범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합니다.

역할별로 보면 이씨는 자신이 STX 건설 이사인 점을 이용해 이 건설사의 채권을 적법하게 양수한 것처럼 꾸민 '허위' 채권 양수도 계약서를 셀프로 만들고 지급받습니다. 변호사인 윤 이사는 이 전반의 과정에 "어떠한 법리적 문제도 없다"는 허위 법률 검토 문건을 만드는 등 법적 문제를 담당하고 송 팀장은 전반적인 펀드 운용 실무를 맡기로 합니다.

각자 역할분담을 마치고 펀드를 구상한 이들은 이제 판매사를 통해 실제 투자금 유치에 나섭니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2019년 6월 NH투자증권의 상품승인소위원회에서 자신이 구상한 펀드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그러고선 "정부 산하기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한 확정매출채권에 포트폴리오의 95%를 투자하고 2~3%의 낮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 놓습니다.

20.10.16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 등 공소사실 中
검찰 "김 대표 등은 이에 대한 법률적 의견 또한, 받았으며 금융감독원에 대한 질의 및 답변을 통해 매우 안전한 구조임을 확인하였다. (중략) 조달청이나 나라장터 사이트를 통해 실제 공사가 이루어진 매출채권인지 확인하고 있으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거짓말을 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사기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이사 윤씨(왼쪽)와 송모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투자 제안서 자체도 거짓이었지만 김 대표는 판매사가 최종 승인을 위해 거치는 과정마다 위와 같은 사기 행각을 이어갑니다.

이후 여러 검증과정에서 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판매사 측에서 해당 펀드구성 구조가 문제가 없는지 등을 요청하자 허위 '법률검토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는가 하면(윤 이사) 실제 공공기관의 채권에 투자된 것처럼 예탁결제원을 통해 채권명을 '한국토지주택공사 매출채', '부산항만공사 매출채' 등으로 허위 등록(송모 팀장)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거짓말로 옵티머스 펀드 상품을 안전 상품처럼 보이게 기망한 것이죠.

이렇게 하여 문제투성이인 '옵티머스 펀드'가 아무 문제 없는 듯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합니다. 투자금이 모이자 김 대표 등은 비슷한 방식으로 새로운 펀드들을 만들고 그 투자금으로는 이전 펀드를 구매한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돈을 납입하는 '돌려막기'를 이어갑니다.

물론 끌어모은 투자금은 처음 이들이 범행을 계획했던 대로 공공기관 확정매출채권이 아닌 부실채권인수나 상장회사 인수 등 개인 투자 목적으로 유용됐구요.

20.10.16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 등 첫 공판
검찰 "돌려막기식으로 기존 펀드 상황자금을 납입하다가 더 이상 마련할 길이 없자 피해자 회사(스킨앤스킨)의 돈을 빼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유현권은 이사회에서 "이피플러스가 마스크 생산업체로부터 마스크를 독점 공급받기 위해 145억원은 선지급했으니 이피플러스와 계약금 명목으로 15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임원으로부터 추가 확인 요구를 하자 유씨는 이체확인증을 위조하기로 맘 먹었고 김재현은 이피플러스가 마스크 생산업체에 145억을 이체했다는 내용으로 이체확인증을 위조했습니다. (중략) 서모 대표이사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하자 이사회에 (안건을 올려) 대표이사를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문제 없이 펀드가 잘 운용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라임 사태 등을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판매사와 금융감독기관으로부터도 실사 등 '점검'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마구잡이로 신규 펀드를 만드는 게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자 김 대표는 펀드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한 또다른 '사기'를 고안하는데요. 바로 멀쩡한 회사의 현금을 빼내 펀드 투자자에게 돌려줄 돈을 마련하고자 마음 먹은 겁니다. 여기부터는 자신이 사실상 대주주로 있던 회사 스킨앤스킨 유현권 고문이 등장합니다.

유 고문은 화장품 회사인 스킨앤스킨이 마스크 사업을 추진 중인 것을 알고 "마스크 유통업체 이피플러스가 모 마스크 생산업체로부터 독점공급 계약을 체결해 145억원을 선입한 상태니 이피플러스에게 마스크를 사자. 계약금으로는 150억원이 필요하다"며 이사들을 설득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이피플러스는 스킨앤스킨과 마찬가지로 김 대표가 사실상 최대지분을 가진 회사였고 '이피플러스가 145억원을 지급했다'는 이체확인서 또한, 윤 이사가 직원에게 지시해 허위로 만든 것이었죠.

이들의 제안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당시 스킨앤스킨 대표이사였던 서모씨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거절했습니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에 처하자 김 대표는 자신이 영향력을 끼치던 이 회사의 부회장과 사내이사를 시켜 '대표이사 변경 안건'을 올린 뒤 대표이사를 서씨에서 해당 사내이사로 갈아치워 버립니다. 아무 걸림돌이 없어지자 150억원을 그대로 횡령해 펀드 상황자금으로 사용하구요.

끝내 이러한 방법으로도 결국 한계가 오자 환매는 중단됐습니다. 피해자가 속출하며 사태는 일파만파 커집니다. 거짓말로 거짓말을 돌려 막던 김 대표 등 가담자들은 검찰 수사로 차례로 구속되며 1천명의 피해자를 기망한 옵티머스 펀드사기 사태는 우선 일단락됩니다.

20.10.16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 등 첫 공판
검찰 "처음 수사할 때 피고인들이 제시한 투자제안서 구조를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허술한데 1조 5천억원을 판매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깊게 안보면 현혹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특히 확정매출채권이라 국가가 망하지 않는 이상 돈 받을 수 있다는 기망 여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금리도 낮아서 '설마 이게 사기겠어?' 이 것이 다수 피해자를 양산한 범행(의 배경)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검찰의 설명대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 투자자의 입장에서야 옵티머스 펀드는 매혹적일 수 밖에 없어 보이긴 합니다.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한다니 상품이 안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수익률도 아니라 뭔가 사기는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법하구요. 심지어 NH투자증권 등 국내 내로라하는 증권사들이 버젓이 판매하고 홍보하고 있던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실상 위조, 기만으로 점철된 부실펀드가 어떻게 기획 단계부터 판매사의 승인을 받고 금융감독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제재 없이 1조원 넘게 버젓이 판매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정말 허술해진 금융규제망을 비집고 탄생한 단순 사기극인지, 아니면 과정마다 김 대표 등을 돕는 '검은 손'이 있었는지는 '부실 수사' 비판에 직면한 검찰이 반드시 규명해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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