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요?"…코로나 담론 밖 이야기들

코로나 1년, 담론에서 배제됐던 이야기를 담다

'집'에서 시위도 못하고 쫓겨나는 철거민
언덕배기 10평 주택 사는 두 청년
'코로나의 외주화' 콜센터 노동자
'비대면' 시대 속 '대면'이 불가피한 장애인활동지원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한반도 상륙이 공식 확인된 지 19일로 1년째가 됐다. 낯선 바이러스에 전 세계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우리나라도 1200여 명이 사망하고 7만여 명이 확진됐다.
유례없는 감염병의 위력에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고, 전문가들은 서둘러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기 위한 담론을 형성했다. IT혁신, 비대면, 언택트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담론이 제시하는 코로나 이후 삶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수혜자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시류에 맞춰 돈을 벌거나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에게는 비현실적이고 생경한 데다, 참아내기 힘든 격변이 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취약 계층'이 직면한 문제를 더 노골적이고 함부로 드러냈다. 이들이 경험한 코로나19는 신기술 적응이나 비대면 소통과 같은 생활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 자체의 위협이었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보급을 통해 올해는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자리 잡혀 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 코로나 담론 밖 이야기들 역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제가 유식하진 않지만…저는 국민 아닙니까?"
이해옥(60) 씨가 지난 11일 방 안에서 우는 딸 조상지(44) 씨를 위로하고 있다.

 

지난 11일 20년 만에 찾아온 한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대기업 증권사 간판이 내걸린 9층짜리 빌딩의 뒤안길은 사람 찾아보기 힘든 귀살스러운 골목이다.
가가호호 깨어진 유리창과 부서진 콘크리트, 누군가 담벼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겨 쓴 낙서들. 칼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천에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란 구호가 적혀 있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인창 C구역.
거의 모든 주민들이 떠났다. 집주인들은 재개발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있지만, 세입자들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비웠다고 한다.
아직 몇 가구가 남아 있다. 여인숙 '성일장'을 13년째 운영하는 세입자 이해옥(60) 씨와 딸 조상지(44) 씨도 버티는 이들 중 하나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성일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해옥 씨는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자인 딸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여인숙 운영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딸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남편과 이혼하고, 공사장과 식당에서 허드렛일로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해옥 씨는 "딸이 몸이 불편하니까 나가서 일할 형편도 안 된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했고, 그동안 누구한테 싫은 소리 안 듣고 열심히 살았다"며 "그런데 갑자기 대책도 없이 나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인창 C구역 재개발조합 측에서 제시한 보상금은 6천만 원. 가게는커녕 셋방조차 얻기 힘든 돈이라고 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자신의 이런 처지를 하소연하기도, 원하는 바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코로나 확진자들이 수도권에서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거의 최상으로 격상된 방역 지침 때문이다. 코로나는 철거민의 마지막 저항 수단인 '집회·시위·결사'의 권리 행사마저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해옥 씨는 "집회는 9명으로 신고했는데, 방역 지침상 5명 이상 모이는 게 어려워 각자 떨어져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말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어 방역 정책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저는 유식하지 않다.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고, 나가지 말라면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부터 밖에 나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정작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맞자니, 나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닌 것 같다. 우리 보금자리를 벼랑 끝에서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소리(방역 지침)가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딸 상지 씨도 나섰다. 직접 말을 할 수 없지만, 발가락으로 키보드를 눌러 쓴 글을 소리로 변환해주는 앱을 이용해 "주변에서는 어머니에게 저를 포기하고 시설에 버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며 "우리 모녀는 일확천금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어머니와 저는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인터뷰 다음날인 12일 이들 모녀에게 계고장(행정상의 의무 이행을 재촉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이 날아왔다고 한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배달도 오지 않는 '언덕배기 집'의 이야기
김기태(33) 씨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김봉근 기자

 

서울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김기태(33) 씨의 집은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나온다. 경사가 가팔라, '운전의 달인' 택시기사들도 제법 진땀을 빼는 언덕배기에 그의 집이 있다.
12일 자신의 집에서 취재진을 만난 기태 씨는 연인인 안지원(31) 씨와 함께 살고 있다. 지원 씨가 살던 집에 기태 씨가 들어오게 되면서 딱 10평(33㎡)짜리 집에 두 사람의 살림살이가 채워졌다.
함께 살게 된 큰 이유는 주거비 부담 때문이다. 사정이 생긴 지원 씨가 보증금을 뺀 대신 기태 씨가 보증금을 넣었고, 월세는 나눠 낸다.
두 사람은 수시로 크고 무거운 가구들의 위치를 바꿔야 했다. 10평 공간이 부엌 겸 거실, 작은방, 큰방으로 3분할 돼 있어, 큰 가구들은 어디에 놓아도 어색했다. 3개월마다 가구들이 옮겨 다닌 이유였다.
코로나19는 이들의 집에 더 큰 변화를 초래했다. 재택근무 시작으로 업무공간까지 만들어야 했던 두 사람은 결국 5년째 애용하던 소파를 버리고 단단한 나무 테이블을 구입했고, 그곳에서 일과 식사 등이 해결됐다.
한국도시연구소(사단법인)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기태 씨도 이렇게 오랜 동안 집에 머물기는 처음이다. 그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집이 갑자기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노트북을 두 대 놓고, 이렇게 앉아서 일하는 공간까지 생기니까 집이 작아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지원 씨는 "두 사람이 앉으면 부엌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 그러면 몸을 최대한 책상 쪽으로 당겨 비켜줘야 하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다"고 말을 보탰다.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는 고통 역시 재택근무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간혹 감지되던 수준의 냄새였다. 하수구 냄새를 계속 끼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향(香)을 연신 피워대며 악취를 잡았다.
기태 씨는 '재택근무'라는 방역방침에 대해 "보건‧의료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되지만, 주거 문제의 관점에서 보면 아쉬운 것들이 많다"며 "주거 환경은 그대로인데 이제는 집에서 일까지 해야 한다면, 주거 문제로 인한 어려움은 증폭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드러낸 청년 주거의 문제점은 명확했다. 많은 청년들이 비좁은 고시원이나 원룸에 거주하기에 끼니 해결과 사교, 학업, 취업준비 등 삶의 많은 부분을 밖에서 해결해왔으나,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끊어져 버린 것.
기태 씨는 "주거 정책들이 대부분 아파트 공급 쪽에 집중돼 있는데, 아파트 분양이나 임대는 취약계층 청년들에게는 언감생심"이라며 "저렴한 주거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고민할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다양한 주거 형태를 원하고 있다. 원룸을 다닥다닥 붙여 값싸게 공급하는 일 외에 주거 환경에 대한 다양한 수요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지역의 계급화를 막고, 소득에 크게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도시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두 사람은 저녁 식사로 카레를 해먹겠다고 했다. 이곳은 배달 불가 지역이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올 배달기사가 없어서다.
◇해고의 또 다른 핑계, 코로나
염희정(47) 씨가 14일 서울 서대문구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취재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근 기자

 

14일 서울 서대문구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직원 염희정(47) 씨는 지난해 11월 걸려버린 후두염이 좀처럼 낫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10년 동안 콜센터 일을 하면서 감기와 후두염 등을 달고 살았지만, 이번에는 좀처럼 회복 속도가 늦다. 그녀는 마스크가 원인이라고 추측한다.
콜센터 노동자 140명이 한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창문은 없다. 환기는 오롯이 몇 대의 공기청정기에 의존하고 있다. 1~3월은 신학기 등록금 및 장학금 문의가 쏟아지기에 쉴 틈도 없다.
희정 씨는 "책 두 권을 가로로 놓은 길이가 딱 노동자들의 간격이고, 제 등과 뒷사람의 등도 항시 거의 닿을 정도로 붙어 있다"며 "방역 지침은 노동 일선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권고사항은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니까"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장학재단 대구 지역 콜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관련 소식을 들은 서울 지역 동료들은 걱정이 커졌다. 서울 사업장의 규모는 대구보다 3배 이상 크다.
희정 씨는 지난해 3월 서울 구로 지역에서 콜센터 집단 확진자 발생 이후 내심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콜센터의 감염병 위협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데 바뀐 게 전혀 없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5월 즈음 우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서 지급되던 마스크마저 끊겼고, 노조에서 싸워서 10월부터 다시 받기 시작했다"며 "서울시 방역 지침도 주1회 센터를 방역하라고 돼 있지만,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방역은 세 번 밖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를 얘기하던 희정 씨는 노조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사연도 소개했다.
희정 씨는 "한 가전제품 제조 회사에서 코로나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콜센터 문을 닫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지역에 콜센터를 설립했다"며 "기존 콜센터의 노조 활동을 문제 삼은 것 같다"고 전했다.
코로나 시국에서 희정 씨가 가장 체감한 문제는 차별이었다. 본사 정규직에게는 적용되고, 외주업체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방역 지침. 감염병도 '위험의 외주화' 범주 안에 있었다.
희정 씨는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코로나 담론에서 IT혁신이나 비대면 등의 얘기만 즐비한 상황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비대면 사회, IT개발 등도 역시나 노동자의 머리와 손을 거쳐 탄생되고 정착되는 것"이라며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역시 조명되고 미래를 준비하는 담론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 발로 '격리 시설' 들어가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오대희 씨가 평소 활동지원서비스를 하는 모습. 오대희 제공

 

오대희 장애인활동지원사에게 '비대면', '재택 근무'란 말은 먼 나라 얘기다.
그가 활동을 지원하는 장애인은 중증지체장애인. 굴신조차 못하는 장애 특성상 식사는 물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부터 씻기는 일까지 모두 대희 씨의 몫이다.
대희 씨는 14일 서울사회서비스원 성동종합재가센터에서 취재진을 만나 "비대면을 요구하는 시대지만, 우리들은 대면 서비스가 원칙이고, 활동 지원을 그만둘 수 없다"면서도 "장애인 활동지원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직업적 사명감으로 날마다 장애인 가구를 방문해 여러가지 활동을 지원하지만, 코로나가 창궐한 시대에서 자연스럽게 스미는 걱정은 감출 수 없다. 내가 병에 옮진 않을까 그리고 내가 병을 옮기진 않을까.
대희 씨는 "코로나 때문에 심정적으로 부담이 엄청 크다"며 "특히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하기 힘든 장애인분들은 코로나 걱정이 더욱 크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더 조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희 씨는 코로나19 의심 대상자와 함께 자가격리시설에 입소한 적도 두 차례나 있었다. 긴급돌봄, 돌봄이 필수인 장애인들에게 갑작스럽게 돌봄 공백이 발생했을 때 급하게 활동지원사가 투입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지원 대상자의 신체적 나이는 20대였지만, 지적 수준은 어린 아이 수준이었고, 상당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며 "마음이 더 움직여서 그랬는지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걱정보다는 잘 돌봐줘야 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긴급돌봄이란 긴급한 상황과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란 특수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모두 비인권적 상황에 놓이게 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희 씨는 "원래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이 연결될 때는 동성이 원칙이다. 그러나 급할 때는 생명권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다"며 "구체적으로 얘기하긴 어렵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모두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고질적인 인력난에 코로나 재난까지 덮치면서, 많지 않은 남성 활동지원사의 역할은 더 커졌다. 상대적으로 돌보기 힘든 중증장애인들을 담당하는 일이 많아 졌다는 대희 씨는 아직 포기보다는 변화를 얘기하고 있다.
그는 "법적으로 휴게시간이 보장되지만, 현장에서 그런 휴게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없다. 중증장애인에게 '휴게시간이니까 1시간 동안 찾지 말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라며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비대면'만 얘기할 게 아니라 '대면'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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