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명분도 실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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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주 기자류영주 기자
윤석열 정부가 지역화폐 국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지난해 1조 522억 원이던 지역화폐 예산을 올해 6050억 원으로 줄인 것으론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내년에는 1원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거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의 여파와 최근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 그리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까지 겹치며 민생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지역경제에 활력을 보태던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책임한 행정이다.

정부는 예산 삭감의 이유로 '건전재정' 기조를 들고 있다. 지역화폐의 실효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역화폐의 효과는 이미 수차례 검증됐다. 또, 건전재정이라는 명분으로 지역화폐 예산을 줄였다면 다른 사업들도 동일한 기준으로 삭감해야 할 텐데 이 점도 석연치 않다.

안양시 지역화폐인 안양사랑페이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모든 연령대에서 이용액이 크게 늘었다. 식당, 슈퍼마켓 등 지역경제의 기반이 되는 업종에서의 사용량이 연간 총매출의 76%를 차지했다. 실제로 다양한 소상공인 점포에서 안양사랑페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된 셈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지역사랑상품권 유통실태 조사'와 경기연구원의 '소상공인 대상 설문조사', 충남연구원의 '충남 지역화폐 파급 효과 및 빅데이터 분석' 등도 모두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지역화폐 정책은 지역경제의 매출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돌도록 도왔고 건전한 지역경제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 한 전통시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 한 전통시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현장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 명절에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며 상인 여러분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모든 상인이 지역화폐 예산 삭감에 분개하며 필자에게 호소했다.

예산 삭감의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 지역화폐 예산은 전액 삭감한 반면, 세금 지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온누리상품권 사업은 더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29일 카드형 온누리상품권을 신규 출시했고 한도와 할인율도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5%에서 10%로 대폭 확대했다. '긴축재정'을 위해 지역화폐를 전액 삭감했다는 주장과 맞지 않는다.

또한, 지역화폐 예산 삭감은 경기도의 대표 보편복지 사업들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청년·농민·농촌 기본소득과 청년·청소년 교통비 지원, 청년 면접 수당 등 경기도의 보편복지 사업들 대다수가 지역화폐를 통해 지급·유통되는 상황이다.

보편복지 정책을 지역화폐와 연동함으로써 기본 복지에 더해 이차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경기도 전체의 정책 기조가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 안양시 제공최대호 안양시장. 안양시 제공
결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이재명 지우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역화폐 정책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며 추진한 핵심 정책이다. 경기도의 지역화폐 발행액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도 이 대표의 공이 크다.

이 대표가 "결국 유통 대기업들의 매출을 늘려주려는 것 아닌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혹시라도 정치적인 이유나 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정부를 작심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진정 민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비용, 합동참모본부 이전 비용, 대통령 경호처 예산 증액 등 꼭 하지 않아도 됐을 일에는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면서 정작 필요한 서민 예산은 전액 삭감했으니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역화폐의 효과는 해당 정책의 당사자인 소상공인과 소비자는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훌륭한 정책이다. 정부는 데이터와 팩트 그리고 민생 안정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주길 간곡히 바란다.

※본 기고/칼럼은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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