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공수처장이 영국 출장을 준비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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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4개월간 검사 5명 사의 표명
지휘부, 제도 탓…공수처법은 태생부터 문제
연 이은 수사 실패·지도부 판단력 부족 원인

김진욱 공수처장이 26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새CI를 반영한 현판 제막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김진욱 공수처장. 류영주 기자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지난 21일 출범 후 처음으로 첫 해외 출장을 떠났다. 공수처의 롤모델로 알려진 중대비리수사청(SFO) 청장을 만나 부패범죄 대응력 강화를 위한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왕립검찰청(CPS)과 국가범죄수사국 산하 국제반부패협력센터(IACCC)도 방문하는 3박 5일의 일정이다.

김 처장의 SFO 방문을 위한 영국 출장은 최근 한 두 달 준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깨고 탄생한 공수처의 수장으로서 "영국 제도가 현재 우리나라에게 가장 유의미하다"고 한 김 처장이기에 영국 출장은 '숙원사업'이라고까지 느껴진다. 영국은 1980년대 CPS를 세워 경찰에서 기소권을 분리했고, 같은 시기 경제·부패범죄를 담당하는 SFO를 설립했다. SFO는 공수처 설립 당시 모델로 삼은 기구 중 하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언젠가는 갔어야 했고, 오히려 조금 늦은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기관의 장이 해외 출장 가서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일이야 유별날 게 없는 일이다.

문제는 '지금 공수처의 현실' 때문에 발생한다. 공수처장이 영국 출장을 그토록 오래 준비하는 동안 공수처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아 터져 나가고 있는 지경이어서다. 그 터져 나간 상처는 검사들과 수사관들의 '사표'로 표출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4개월 간 무려 5명의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김 처장이 검사·수사관 완전체 1주년을 기념해 지난 5월 16일 간담회를 연 지 얼마 안 돼 6월 초 첫 사표가 나왔다. 감사원 출신의 문형석 검사다. 7월에는 경찰 출신의 김승현 검사가 사표를 냈다. 8월 초에는 두 명 있는 부장검사 가운데 한 명인 최석규 부장검사가 사표를 냈다. 같은 소속 부서 검사와 병가 문제를 놓고 심한 갈등을 빚은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공수처는 최 부장검사 사표를 만류하고 겸임하고 있던 수사3부장 직위만 해제했다. 8월 중순 공수처장은 새 CI와 슬로건을 발표하며 새 출발을 공언했다.

공수처장이 첫 해외 출장을 간다는 내용의 정례 브리핑이 있던 지난 20일, 이승규 검사와 김일로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수처는 이승규 검사를 만류하고 있고 김일로 검사 사표를 반려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앞서 사의를 표한 최 부장검사의 사표는 결국 처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수사관들은 지난달까지 6명이 사직했고 최근 일부 수사관들이 사의를 표시했다고 알려졌다. 김 처장이 수 차례 새 출발을 다짐하고 출장을 준비하는 동안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계속해서 사표를 준비한 셈이다. 사표를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김진욱 공수처장을 비롯한 공수처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새CI를 반영한 현판 제막식을 갖고 있다. 류영주 기자김진욱 공수처장을 비롯한 공수처 관계자들이 지난 8월 26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새CI를 반영한 현판 제막식을 갖고 있다. 류영주 기자​​​​​​'수사 인력의 엑소더스'에 공수처 지휘부는 '제도의 문제'를 말한다. 공수처법상 3년 연임에 3번 연임 구조에서 과연 양질의 인재군이 들어와 소신 있게 수사할 수 있는 구조냐는 물음이다. 한 마디로 공수처법이 엉망이란 말이다. 실제로 엉망이다. 그러나 공수처법은 최근 들어 바뀌지 않았다. 공수처 탄생부터 법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빛을 봤다는 얘기다. 수사기관에서 가장 핵심은 양질의 인력 확보다. 이를 위해선 제도 정비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공수처는 온 국민이 강한 기대를 품고 집중할 때 진작 손봐야 한다고 국회에 강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검사들이 다 나가는 건 제도 탓이 크다는 지휘부의 말에 여론이 얼마나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인 이유다.

구멍 뚫린 공수처법의 토대 위에 연 이은 수사 실패로 인한 자신감 하락, 지도부의 판단력 부족 등이 검사들이 사표를 결심하게 된 대표적 원인들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공수처가 온 힘을 쏟아 부은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내부 구성원에게 큰 타격을 줬다는 평가다. 실제 고발사주 수사 개시 여부를 두고 논의가 있었던 당시 수사를 해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지만 지휘부가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구속영장, 체포영장, 다시 구속영장까지 기각됐는데도 일부 기소를 하면서 검찰을 개혁하려고 만든 공수처가 과거 검찰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한다는 외부 핀잔마저 나왔다. 공수처의 한 관계자는 "지휘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내부 구성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해 피격 공무원의 유족은 문재인 정권의 고위직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얘기를 들은 공수처 검사들은 큰 상처가 됐다고 한다. 수사기관은 '신뢰'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너도나도 "이 수사를 못 믿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수사기관은 수사기관일 수 없다. 지금 공수처에 필요한 건 제도 정비보다도 신뢰 회복이다. 수사기관으로서 신뢰가 회복 된 후에야 이를 발판 삼아 제도도 정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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