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만배를 알았던 기자의 하루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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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 연합뉴스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 연합뉴스
김만배 씨와 일부 언론인 간 돈거래 논란이 제기된 날 회사 화장실에서 고참 피디가 갑자기 질문했다. 돌발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확할 듯 하다. 실제 그렇게 체감 됐다.
 
"우리 회사에는 김만배한테 돈 받은 사람 없죠?"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 쿵하는 느낌이 감지됐다. 이 회사에서 김만배 씨와 서초동 지역에서 언론 동료로 일한 경험을 가진 기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을 곧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날 오후 쯤 미디어 전문지 기자 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일면식이 없던 기자 분이었으나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선배님, 지금 김만배 씨와 법조 출신 언론인의 돈 문제가 터졌는데 김만배 씨가 대체 어떻게 언론인들과 지낸 겁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순간, '기자님! 저도 그게 궁금 해요'라는 말이 번뜩 떠올랐다. 그러나 순서가 있다. 하필이면 왜 필자에게 그 질문를 하게 된 경위에 이르렀는지가 궁금했다. 그랬더니 법조 출입기자들 가운데 김만배 씨와 함께 기자생활을 했던 언론인들을 수소문해봤는데 필자가 그 중 한명이라는 답변이 왔다. 하루에 두 차례씩이나 김만배 씨 관련으로 질문을 받다니 속으로 허탈한 웃음이 스쳐 지났다. "김만배 씨의 대장동 사건의 끝은 대체 어디까지인가요? 혹시 다른 언론인들과 통화는 해보셨나요? 그 분들은 뭐라 말씀들을 하시던가요"라고 되물었다.
 
김만배 씨와는 박근혜정부 시절 약 2년 간 한 공간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이미 2007~2008년 경 대선자금수사때 만난 적이 있어 두 번째 만남 때는 격의 없이 지낸 선배였다. 알려진 대로 그 분은 기사를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열심히 취재 활동을 했다. 한편으론 그 점 때문에 그 분을 만날 때마다 '조심해야지'라는 생각도 가졌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그렇다손 쳐도 김만배 씨가 소위 '구악 기자'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윤회 문건, 김학의 성접대, 간첩증거조작 등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삼삼오오 기자들이 모여 사건을 보는 각자의 시각을 토론할 일이 종종 있었다.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인지라 세미나 형식은 아니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 같은 것이었다. 어떤 관점에서 그 사건을 바라봐야 할지 정리되지 않는 때가 있곤 한다. 김만배 씨도 그의 철학과 가치가 있었다. 도움 되는 견해를 듣기도 했다. 지금은 대장동 사건으로 '사업꾼 기자'가 되었지만 당시 그런 기자라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함께 했던 상당수 기자들도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경악했다'고 한결같이 얘기한다. 배 모 전 기자가 남욱 일당과 김만배 씨를 연결해줬다는 진술을 듣고는 진짜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두 사람의 밀착 배경이 궁금했는데 컴컴한 장막이 걷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듭되지만 상상을 못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한 길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진실이다. 또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경구가 있다. '이 세상의 들판에서는 선과 악이 불가분의 관계로 함께 자란다'는 <실낙원>의 존 밀턴의 말이다.

고참 피디와 미디어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고 '잠재적 범죄자로 오해를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검사나 기자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법조기자 생활 때 어느 검사장이 농담처럼 얘기 했던 말이다.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법조기자란 무엇일까. 검찰은 국가 공권력의 본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막강하다. 지금은 거의 천하무적 수준이 되었다. 한편으로 견제가 안되는 정치 세력이 되었다. 법조 기자의 1 목적은 신체 형벌권을 좌지우지 하는 검찰 수사 권력을 관찰하고 견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리에 의해 진행된 부패 척결의 사실관계를 공공에게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한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법조기자를 일반화 하기란 불가능하다. 과거와 현재가 상당히 다르다고 본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시각이 존재한다. 또 언론사의 관점도 상존하다. 그러나 언론사에서 법조 기자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가장 고민하는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언론의 본성에서 일탈 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직역이기도 하다. 교도소 담장까지는 아닐지라도 자칫하면 사회의 공기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보와 권력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기준을 지키는 일은 끊임없는 싸움이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이목을 집중시키는 수사에는 수사하는 사람이 있고, 당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전달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 정보를 캐내려는 사람이 있다. 기자는 검사가 아는 내용의 1/10도, 1/100도 모르지만 정보를 빼내려 하는 사람으로부터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또 수사하는 사람으로부터 이용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은 빈번히 일어나고, 그 기자가 보도한 내용은 유죄로 확정되기도 하지만 무죄로 판정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취감도 필요하지만 반성과 겸양이 꼭 필요한 일이다. 유혹은 널려 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교훈을 되새기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몫일 뿐이다. 다만 김만배 씨가 대한민국 수사 역사에 새겨질 큰 사건의 핵심적 인물이고 그 여파가 한때 함께 했던 법조기자들의 평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으론 "우리 회사에는 없죠"라는 질문의 위력(?)이 너무 크고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계기로 당시 경쟁했던 기자들과 통화했다. 각자가 아는 진실은 무엇인지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또 답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대답은 공통됐다.
 
"저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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