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 통화를 갖고 조속히 관세 합의를 이루기로 하면서 양국 간 협상이 급물살을 탄 모양새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조치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이르면 다음주 열릴 한미 3차 실무협상에서는 양국의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최근 영국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율을 경감한 사례에 주목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협상 태도를 주문하고 있다.
이재명-트럼프 '조속한 관세 합의' 통화…3차서 본격 '협상'
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첫 전화 통화를 통해 조속한 관세 협상을 갖기로 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한미 간 관세 협의와 관련,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의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실무협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양국은 지난 4월24일 미국에서 '2+2' 고위급 통상협의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달 20~22일 워싱턴DC에서 '2차 기술협의'를 진행했다. 산업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 실무 대표단은 2차 협의에서 양국의 주요 관심사를 파악하고 상호 입장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다음달 8일까지 비관세 장벽 해소 및 대미 무역흑자 축소 방안 등 사항을 담은 '7월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 양국은 이르면 다음주 3차 기술협의를 여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기존의 양국 논의가 '협의' 단계였다면, 3차 기술협의부터는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당국자는 지난달 26일 백브리핑에서 "2차 기술 협의에서는 미 측이 관심 있는 분야별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미측도 한국의 입장을 알게 됐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미 측이 제기한 요구 사항에 대해 관계 부처가 검토해 3차 기술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의를 진행하면서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 혼란스런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 관세 협상은 본격적인 속도를 낼 전망이다. 새 정부의 구체적인 지침에 따라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4일 이 대통령 주관 비상경제점검TF 회의에 참석해 한미 관세 협상 상황을 보고했다.
구체적으로 3차 협의에서는 미국 정부가 비관세 장벽 등으로 지목한 이슈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미국 정부는 미 무역대표부(USTR)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를 근거로 한국의 소고기 수입 제한과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과점 규제 추진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은 주요 산업인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해 미국이 품목별로 부과한 관세를 철폐하거나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英 사례 참고해 품목별 관세 경감 주문…철강 업계 '시름'
전문가들은 영국이 최근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낮추는 데 성공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영국은 지난달 8일 미국과 '경제번영협정(EPD)'을 체결하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은 미국산 에탄올과 소고기 등 일부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철강·알루미늄 수출 시 고율의 관세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영국산 자동차 10만대 물량에 한정해 25%가 아닌 10%의 관세만 부과하기로 '쿼터제'를 두는 데 성공했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통화에서 "국가별 상호관세를 큰 폭으로 낮추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는 국내 업계 상황을 고려해 품목별 관세를 낮추는 데 정부 역량이 집중돼야 할 것"이라며 "영국의 협상 사례처럼 관세율을 최대한 낮추거나 수출 쿼터를 정해 최대한 대미 수출을 방어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조선업과 미국산 LNG 수입 등 협상카드를 적극 활용해 주요 품목의 관세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트럼프 2기 상호관세 조치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는 미국산 LNG를 대량 수입할 경우 상호 관세율을 최대 1.4%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종료 예정인 카타르산 LNG 수입 계약 물량 702만톤을 미국산으로 대체할 경우, 작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 비율이 47.1%로 하락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갑자기 50%의 관세를 맞은 철강·알루미늄 업계의 호소가 짙다.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돌연 인상하면서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50% 관세면 가격경쟁력을 고려할 때 사실상 대미 수출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로 업계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실적 악화가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