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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촌스러운 건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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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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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방송 인터뷰에 흑역사(?)가 고스란히 노출된 맘다니. 이를 두고 본인은 "부끄러운 순간"이라면서도 즐거워했다. CNN 캡처미국 생방송 인터뷰에 흑역사(?)가 고스란히 노출된 맘다니. 이를 두고 본인은 "부끄러운 순간"이라면서도 즐거워했다. CNN 캡처
힙하기로 따지면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도시 뉴욕에서 이보다 더 힙할 수가 있나 싶은 자가 나타나 파란을 일으켰다.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듣보잡 조란 맘다니가 정계 거물 앤드류 쿠오모를 무려 7%p 차이로 이긴 이야기다. 거대 양당에 대한 경고장, 민주당 기득권 세력에 대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주류지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의 힙함이다.  

그의 승리 포인트는 성분표(사회주의자, 무슬림, 인도계 우간다 출신)에 근거한 익숙한 프레임, 소수자 출신이 내놓는 옳지 옳아 하는 메시지, 그리고 여기에 응답한 공동체의 선의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급진적 정책의 대표주자였던 버니 샌더스의 경우 나름의 돌풍을 일으켰지만 끝내 승리라고 부를 만한 것을 쟁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맘다니는 민주당 경선에서 정치 명문가 출신, 본인 자체가 거물인 쿠오모를 여유 있게 이겼다. 그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18세 이상 30대 초반 시민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갔다.

승리포인트는 힙함이다. 맘다니는 스스로를 종종 '실패한 전직 B급 래퍼'라고 부르는데, 이미 여기서부터 힙합… 아니 힙하다. 20대에 찍었다는 엉망이되 웃긴 뮤직비디오 영상부터 섹스인더시티 화보처럼 보이는 뉴요커 스타일의 웨딩화보까지,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소셜미디어 홍보를 해냈다. 그의 틱톡을 보면 '헤이 브로'하면서 거리에서 뉴요커들과(!) 상당히 구체적인 체험을 나누는 즉석 인터뷰를 하고(영상 속 그가 걷지 않는 몇 안되는 시간), 아내가 여러 명이니 히잡을 선물로 준다느니 하는 편견 기반 가짜뉴스에 꽤나 코믹하게 대응한다. 해당 영상에서 그가 '히잡'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중동음악이 코믹하게 흘러나오는 게 압권이다.

여기까지 보면 그의 힙함을 좇아 표를 내주는 젊은 세대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발화하는 정치적 메시지나 급진적 정책들까지 듣고 보면 생각이 바뀐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100% 공산주의자 미치광이(트럼프)"라는 저주에 가까운 공격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좌파 강령을 추구한다. 집, 교통, 유가, 식료품 등 모든 이가 체감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 무상공약을 내걸고 재정은 부유층 증세로 감당하겠다고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의 기초생활보장에 초점을 맞춘 '조라노믹스'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다. 이 정도 매운맛 캠페인이 표로 연결된 건, 그 것도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공간인 뉴욕에서 성과를 만들어 낸 건 의미심장하다.

맘다니는 공격받기 쉬운 그 모든 소수자성을 위트있게 포장하고, 모든 이가 즉자적으로 체감 가능한 체험적 일상을 정치로 만들었으며, 그걸 거대담론 혹은 세계관으로 밀고 가는데 논리적 정합성을 잃지 않았다. 심지어 이 과정 내내 그는 시종일관 힙했다! 그의 경선 승리에 미국 정가가 패닉에 빠질 정도 이게 어려운 일이었다면, 체면과 전례가 소중한 유교의 나라 한국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당장 진보진영의 정치인이나 활동가 이미지를 떠올려 보시라. 합성인가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 '0'인 힙한 옷을 입고 급조한 랩을 하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정치인 영상을 복기해보라.

과거 '시비스 로마누스 섬(Civis Romanus sum. 나는 로마 시민이다)'이라며 자신을 고귀하게 정의하고 선망의 대상이 됐던 로마 사람들처럼, 뉴요커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뉴욕 시민들에게 맘다니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문화상품인 동시에 세련된 뉴요커로서 추구할 만한 이상의 담지자로 인식됐다. 그는 심지어 홍보물의 폰트까지 뉴욕매거진이라든지 유명 핫도그 간판 글씨체를 이용하는 등 뉴요커들이 알아보고 동일시하는 요소를 곳곳에 넣었다고 한다. 이런 '뉴욕의 영혼' 같은 자가 있다니! 이런 상황에서 늙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백만장자가 공산주의자라며 그를 욕할 수록 33살의 맘다니 메시지는 더 세련돼 보였다. 맘다니는 뉴욕 부자 3명 중 1명의 지지를 받았고 주민 다수가 백인인 지역에서도 5%p 앞섰다.

이게 마 뉴요커다! 를 외치고 있는 듯한 그의 홍보물과 웨딩사진. 일러스트레이터이나 애니메이터인 그의 아내와 역시 뉴욕 상징 중 하나인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었다. SNS 캡처이게 마 뉴요커다! 를 외치고 있는 듯한 그의 홍보물과 웨딩사진. 일러스트레이터이나 애니메이터인 그의 아내와 역시 뉴욕 상징 중 하나인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었다. SNS 캡처
권위와 위엄에 기대는 동시에 먹고 마시는 우리 삶과는 동떨어지는 듯한, 지나치게 모호한 이상을 추구하는 기존 정치의 모든 문법에서 맘다니는 한참 떨어져 있다. 숨 막힐 정도로 지겨운 기존의 이슈파이팅이나 브랜딩에서 탈주한 그의 정치 캠페인을, 그래서 나는 힙함이라고 설명하는 게 맞다고 본다. 사람들은 정치적 메시지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설명해 내는 방식과 구체성의 정도에 질려있었던 것이다. 이쯤되면 촌스러움은 죄다. 시민의 삶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변화의 동력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여, 부디 힙해져서 변화의 동력을 일으켜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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