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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제화미 권사 "찬양은 기술이 아니라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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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삶이 아름다운 크리스천을 만나는 시간, 로드인터뷰 사람꽃. 오늘은 성악가인 서귀포중앙교회 제화미 권사를 김영미 PD가 만나봅니다.

<로드인터뷰_사람꽃> 서귀포중앙교회 제화미 권사(성악가)
제주에서 찬양과 지휘로 섬김 이어와
예배 가운데서 다시 노래의 자리를 찾다
성악과 신앙이 자연스럽게 겹쳐진 음악의 여정
몽골 선교 현장에서 경험한 찬양의 의미

제화미 권사. 자료사진제화미 권사. 자료사진
■ 방송 : CBS 라디오 <로드인터뷰_사람꽃>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 방송일시 : 2025년 11월 8일(토) 오후 5시 30분
■ 대담자  : 서귀포중앙교회 제화미 권사(성악가)
 
◇ 김영미> 부산에서 오랫동안 성악 활동을 했는데, 어떻게 제주에 오게 됐습니까.
 
◆ 제화미> 고향은 부산이고 부산시립합창단에서 수석단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오페라도 했고요. 계속 무대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제주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주말부부를 하다가 아이들이 성장하고 막내까지 유학을 떠나면서 저도 제주에 오게 됐습니다.
 
◇ 김영미> 제주에서도 음악활동을 이어갔습니까.
 
◆ 제화미> 처음에는 음악을 한다는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아서 아무도 저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립합창단 이상열 지휘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분의 추천으로 오페라 설문대 할망에서 '할망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주에서 다시 서게 된 첫 무대였습니다. 그 공연 이후로 성악협회 무대와 여러 음악회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벌써 20년 전의 얘기네요. 하나님께서 제게 다시 제주에서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 김영미> 제주에서도 음반과 공연 활동을 이어왔는데, 그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 제화미> 제주에 와서는 사실 활동이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제주에 왔을 때는 '이제 성악을 조금 내려놓아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하면서 유명한 이중섭 오페라에서 '마사코 母'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무대에 서니까 젊었을 때 부산에서 오페라 무대에 섰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지금도 기회가 되면 다시 하고 싶은 무대입니다.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제가 성악을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독창회를 했습니다. 그 무대도 저에게 참 뜻깊었습니다.

이중섭오페라 中,  마사코 母 역할로 열연 중인 제화미 권사. 제화미 권사 제공이중섭오페라 中, 마사코 母 역할로 열연 중인 제화미 권사. 제화미 권사 제공
◇ 김영미> 큰 딸은 이중섭 오페라에서 마사코 역을 하기도 했다면서요.
 
◆ 제화미> 마사코는 이중섭 화가의 아내인데 일본 분이셨죠. 그 역할을 큰딸이 여러 번 맡아서 공연했어요. 그래서 저와 딸이 무대 회차를 나누어 서로 번갈아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회차에서는 같은 작품을 함께 준비하기도 했고요. 연습도 함께 하며 준비를 한 적도 있어서 그 시간이 참 뜻깊고 재미있었습니다.
 
◇ 김영미> 8년 전에는 찬양 음반을 제작하셨어요. 음반에 담긴 메시지나 제작 과정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 제화미> 저는 고등학교 때 어머니를 사고로 갑작스럽게 잃었습니다. 그때 마음에 큰 상실이 생겼고, 대학 시절에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외롭고 방황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회를 조금 다니긴 했지만 신앙이 깊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중 대학 시절, 찬양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 안에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제주에 온 뒤 서귀포중앙교회 당시 계셨던 목사님과 이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목사님께서 "이제는 생각만 하지 말고 해보자"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말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찬양 음반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 김영미>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한 건 언제부터였습니까.
 
◆ 제화미> 저는 우리 집에서 복음 1세대입니다. 가족들은 모두 절에 다니고 제사도 지내는 집안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그때는 믿음보다는 노래가 좋아서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시절 우연히 기독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목사님 자제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는데, 어떻게 제가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전도사님이셨고,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와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마음적으로 힘들었던 저를 전도사님이 딸처럼 돌봐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전도사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니던 그 시간이, 제게 신앙이 시작된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 김영미>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순간은 언제였나요.
 
◆ 제화미> 방학이면 기숙사가 문을 닫았는데, 집이 있는 부산으로는 가기 싫었습니다. 새어머니도 계시고 아버지도 엄하셨거든요. 그래서 교회의 어느 집사님 부부 댁에서 방학을 지냈습니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고, 네 식구가 한 방에 자는 집이었지만 저를 가족처럼 받아주셨어요. 그분들의 삶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분들이 청계천에서 작은 장사를 하셨는데, 매일 버신 돈에서 십일조를 작은 통에 차곡차곡 모으셨어요. 그리고 밤에 아기가 울면 집사님이 아기를 안고 조용히 기도하셨어요. 엄마로서 모르는 것들을 하나님께 묻고 의지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 집사님의 손을 잡고 새벽예배를 다녔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힘듦이나 모든 것들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고, 제가 어떤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했는지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그 순간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시간입니다.

교회 찬양대 지휘 모습. 제화미 권사 제공교회 찬양대 지휘 모습. 제화미 권사 제공
◇ 김영미> 그 경험 이후, 무대와 찬양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있었을까요.
 
◆ 제화미> 부산에서 무대를 많이 섰고 오페라도 많이 했지만, 어느 순간 무대의 긴장과 설렘이 사라지고 습관처럼 서게 되더라고요. 노래가 제 목소리 자랑처럼 느껴져서, 음악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래서  '이제 그만해야겠다'라고 정리하고, 남편 따라 제주로 내려온 겁니다. 하지만 찬양은 달랐습니다.
 
찬양의 가사가 저의 신앙 고백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눈물이 나서 찬양을 못한 적도 많았는데요. 서귀포중앙교회에서 몽골 선교를 갔을 때였습니다. 교회가 몽골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님을 파송한 초창기였습니다.
 
저희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먼지 나는 곳에 줄을 서 있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의료선교도 해서 약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신 것 같았어요. 제가 그날 예배에서 특송을 했는데, 한마디 하고 나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노래를 잇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정구철 장로님이 "지금까지 들은 찬양 중에 오늘 찬양이 제일 은혜로웠습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아, 이건 내가 한 찬양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저는 지금도 말합니다. "찬양은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고백입니다."
 
◇ 김영미> 예술인이자 신앙인으로 살아오셨는데요.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다"라고 한 말씀 남겨주신다면요.
 
◆ 제화미> 저는 한때 '성악은 그만하고 이제는 지휘만 하겠다'라고 마음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를 통해서 아직 찬양도 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마음을 닫았던 시간이 있어서 다시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또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1부 예배 찬양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었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지휘만 하겠다"라고 했던 마음이 조금은 교만함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하는 것" 그게 맞다는 마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이 시키시면 찬양도, 지휘도 순종하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리도 다시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 김영미> 음악과 신앙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제화미> 저희 세대는 참 행복한 세대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저희 두 딸도 성악을 하고 있지만 음악도, 신앙도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낍니다.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저희 때는 조금만 잘해도 무대도 많았고 어떤 면에서는 기회도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평생 음악을 해온 사람들이 그걸로 가정을 지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게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실 자리를 주신다. 본인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어느 때에든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쓰임 받는 순간이 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 김영미> 권사님의 삶을 꽃으로 표현한다면요.
 
◆ 제화미> 저는 가을의 흰 국화라고 생각해요. 꽃말이 감사, 진심, 성실이거든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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