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원달러 환율이 거침없이 상승세를 이어가며 1500원대에 대한 전망도 나오는 가운데 최근 환율 상승(원화 약세) 원인이 국내 신용 리스크와 무관하기 때문에 치명적 악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의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본격화할 감세 정책 등 구조적인 문제로 1300원대 진입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평가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70원까지 치솟으며 전 거래일보다 2.4원 오른 1465.7원으로 주간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동맹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관세 부과를 발표한 이른바 '해방의 날' 당시 1480원대를 기록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후 환율은 점차 하락해 1300원대를 되찾았으나, 지난달 1일 미국 정부 셧다운을 전후로 1400원대로 복귀했고 다시 상승 추세다.
셧다운으로 인한 유동성 약화와 12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로 인한 달러 강세가 환율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재정확대를 발표하면서 엔화 약세 흐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10월 6일 이후 엔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엔을 돌파했고 이후 153엔 안팎을 오르내린다. 이는 상대적 강달러를 자극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6개 주요 통화국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9월 96.63을 저점에서 최근 100을 돌파했다. 달러인덱스가 100을 넘은 것은 지난 5월 이후 처음이다.
다만 셧다운 종료와 악화하는 고용지표로 인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살아나는 만큼, 환율이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NH투자증권 권아민 연구원은 "환율 1470원대 후반은 연말 연초 국민연금의 전술적 환헤지가 출회된 수준의 높은 레벨로 당시 금융당국은 규제 완화 등 조치로 외화 유동성 확보를 지원한 바 있다"면서 "4월 원화 약세 국면과 비교해 볼 때 대외 재료 불확실성은 좀 더 안정됐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율이 안정을 찾더라도 1300원대 복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연합뉴스시장은 내년부터 관세가 본격적으로 미국 물가에 반영되기 시작해 다시 3%를 넘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물가 상승은 기준금리 인상을 부추기는 요소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감세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정 적자가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정 적자는 국채 공급 확대로 대응하는 탓에 시장금리(국채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경기와 물가에 영향을 줘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한다.
IBK투자증권 정용택 연구원은 "미국 시장금리가 정부 의도나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 하락하지 않고 이로 인해 달러가 강세 압박을 받는다면 우리 환율도 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서 쉽게 내려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미국이 인공지능(AI) 산업을 주도하는 만큼, 전 세계가 미국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자금이 미국에 집중되면 강달러 기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의 코스피 투자 규모를 넘어선 한국인의 미국 투자도 환율의 바닥을 다지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제투자대조표를 보면, 한국인이 해외투자로 보유한 자산은 사상 최대인 2조 6818억달러로 외국인의 국내 투자 자산인 1조 6514억달러를 크게 웃돈다.
신한투자증권 이진경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한국 대비 산업 주도력을 갖춘 미국으로 자금 이탈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의 저성장 구조 속 원달러 환율의 하락 속도는 완만할 전망이다. 연중 1400원을 상회하는 하방 경직적 흐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환율의 다소 높게 유지되고 있지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국가부도 지표'로 불리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5로 2005년 11월 이후 평균 2.48과 차이가 없다.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역대 최고치인 5.25와는 거리가 멀고, 지난해 12·3 내란 직후의 3보다도 낮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환율 급등을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내외 신용위험에 따른 자금유출 리스크"라며 "국내 신용위험도 각종 신용지표 흐름을 보면 특별한 위험 시그널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이어 "환율의 장기 추이를 보면 공교롭게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집권한 이후 추세적 상승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면서 "현재 1400원대 환율 수준을 이전 위험 당시와 동일한 잣대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당선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1137원을 시작으로 2020년~2023년 1232원, 2024년~2025년 10월 1377원 등 기간별 평균 환율이 100원씩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