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미 관세·안보 협상 내용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 공개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가운데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까지 예상보다 더 높게 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올해 전기차 판매량의 4배 가량을 2030년까지 매년 팔아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하지만 정부의 세액 공제 등 구체적인 산업 전환 지원책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다.
팩트시트 하세월…다시 불확실성에 한숨만
대통령실이 한미 관세·안보 협상 타결을 발표한 지 보름 가까이 지났지만 합의 내용이 담긴 팩트시트가 공개되지 않으면서 자동차 업계 위기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미 양국은 대미투자기금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달의 1일부터 15%로 인하된 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합의 확정 절차가 지연되면서 차 업계는 여전히 25%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협상 타결 직후 "팩트시트는 2~3일가량 걸릴 것"이라고 하면서 "드디어 큰 고비는 넘겼다"는 게 업계 반응이었지만,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3분기 관세 비용은 각각 1조8212억원, 1조2340억원이었다. 그 여파로 현대차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29.2% 감소했고 기아는 49.2% 급감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은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11월 1일 자로 소급해서 적용되더라도 이미 재고분이 25% 관세를 납부했다"면서 "4분기 관세 임팩트는 3분기와 큰 차이가 없고 내년에 온전히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안도감이 컸던 만큼 위기감도 다시 증폭되고 있다. 합의 상 11월 1일을 기점으로 한국산 자동차에 15% 관세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지만 MOU(양해각서)가 체결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다시 팽배해졌다. 일각에서는 "7월 극적 합의가 됐었지만 8월 한 달 내내 MOU는 체결되지 않았고 결국 가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5% 관세가 유지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연간 관세 부담액은 8조4천억원, 15%로 인하되면 5조3천억원으로 추산했다.
관세보다 더 큰 파고? NDC에 '줄도산'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미국발 관세 폭탄 후유증이 가라앉기도 전에 국내에서 또 다른 폭탄이 던져졌다는 업계 우려도 크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기로 정한 데 대한 반응이다.
아울러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10일 "신차 기준으로 전기·수소차를 2030년 40%, 2035년까지 70% 전환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하면서 원색적인 비난도 터져나온다.
지난해까지 국내에 등록된 무공해차는 72만2천대(전기차 68만4천대·수소차 3만8천대)다. 2035년 보급 목표치로 알려진 950만대 달성을 위해 단순 산술로는 10년 동안 무공해차를 매년 80만대 가량 팔아야 하는데, 국내외에서 전기차에 대한 수요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올해 1~10월 국내 신차등록 약 140만대 중 전기차 비중은 13.6%로 19만여대에 불과하다. NDC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보다 무공해차를 해마다 4배 더 팔아야 하는 것이다.
수요를 폭발적으로 진작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내연기관이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부품업계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국내 부품사 약 1만곳 중 절반 가량은 엔진·변속기·연료·배기계 등 내연기관 부품을 제조하고 있다. 내연기관 업체가 무공해차 부품 업체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차종에 맞는 부품을 개발해야 하고 부품은 차종마다 스펙이 다르다"며 "완성차를 개발할 때 부품 단위 개발도 같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 안에 내연기관 부품업체를 무공해 업체로 전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생산되는 무공해차에 적용되고 있는 부품을 그대로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부품 개발비용에 이어 설비 투자까지 뒷받침돼야 한다. 기존 내연기관 업체로서는 정부의 전례 없는 지원 없이는 전환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10년 뒤에는 사실상 가솔린차를 팔지 마라는 게 이번에 발표된 NDC 체제"라며 "이 체제에 맞춘 부품을 개발에 적게는 10억대, 많게는 100억대가 소요된다. 5천여개 기업에 지원해주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텐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세심한 지원 대책을 공개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