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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전범의 길, 친일의 길, 내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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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술에서 당신들을 읽는다

성공한 친일의 길을 수식하는 '떵떵'이 아닌, 실패한 전범의 길에 깔린 '벌벌'의 일생을 내란의 길에도 깔아줘야 한다. 그것이 단죄하지 못한 76년의 역사를 일부나마 치유할 수 있는, 760년의 미래에 꽃길을 깔아주는 과업이기도 할 것이다.

[12·3내란 1년]

노덕술. 자료사진노덕술. 자료사진
'일경(日警)의 호랑이'로 불리던 마쓰우라 히로는 '고문귀' 하판락, '고문왕' 김태석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혹독하게 고문한 친일 경찰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바로 노덕술의 창씨명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죽게 만든 독립운동가만 줄잡아 5명. 그러나 해방후에도 그는 '부통령급'이라 지칭될 정도로 권세를 누렸다. 경찰 내부의 반(反)이승만 세력 숙청, 좌익분자 검거를 주도하면서다.

1945년 대한독립 이후 귀국한 약산 김원봉을, 일제도 잡지 못한 의열단장을 해방 조국 한복판에서 체포한 친일경찰이 그다. 이때 노덕술에게 뺨을 맞는 등 모욕을 당한 김원봉이 대성통곡하며 북으로 발길을 돌리게 됐다는 야사도 있다.

김원봉. 시대의 창 제공김원봉. 시대의 창 제공
노덕술이 잠시나마 단죄 받은 순간도 있었다. 친일행위자 처단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 때다. 1948년 특별검찰부에 특별재판부까지 갖춘 반민특위는 이듬해 1월 노덕술, 최운하 등 경찰은 물론, 김연수, 이광수, 최남선, 채만식 등 각계 친일행위자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그러나 반민족 부역자 처단의 꿈도 잠시. 친일파들은 관제 데모를 통해 친일 청산을 비난하거나, 심지어 반민특위 위원에 대한 암살까지 시도했다. 이승만 정권의 끊임없는 방해 끝에 반민특위는 1949년 10월 폐지 법률 공포와 함께 해체됐다.

1년도 못 이어간 공식활동 기간 다룬 사건은 전체 조사 대상 7천여건의 10%에도 못 미친 682건, 발부된 영장 408건 가운데 221건만 기소돼 38건만 재판까지 마쳤다. 징역 실형을 받은 건 12명뿐, 이마저도 보석이나 형집행정지로 6·25전쟁 전에 모두 풀려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군 병력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철수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군 병력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철수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내란 1주년이다. 76년을 거슬러 성공한 친일의 길, 실패한 반민특위의 길을 곱씹게 된다. 나와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각종 은폐와 궤변, 거짓말과 으름장을 늘어놓는 저 한 줌 내란세력도 그렇다. 그보다 좀 더 많을 내란옹호 내지 비호세력도 그러하다. 성공한 친일의 길, 그들이 이 시각에도 꿈꾸고 있는 롤모델이다. 이 땅에서 그들은 이미 절체절명의 위기를 딛고 성공의 학습효과를 기득(旣得)했다.

해방 공간에서 친일 순사들이 빨갱이 때려잡겠다며 했던, 전쟁통에 먼저 도망간 대통령이 피난민 한강 다리 끊으면서 했던 "가만히 있으라". 그 마법의 주문 같은 성공의 기억들. 4·3때도 5·18때도 12·12때도, 심지어는 4·16 세월호 참사 때도 10.29 이태원 참사 때도 최면처럼 건 "가만히 있으라"의 DNA.

다행히 일년전 그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권력의 몰상식, 최정예 물리력 앞에 스크럼을 짰다. 담벼락에 대고 욕도 했다. 작은 돌팔매가 모여 골리앗 같은 그들의 학습효과, 성공의 DNA에 균열을 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우리는 역사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위태롭다. 검찰총장이 특별검찰부를, 대법원장이 특별재판부를 맡았던 반민특위마저 돌려세운 그들이다. 지금이 그보다 나은 상황이라 장담할 자 있을까.

"반민법은 온 국민을 친일 그물로 옭아매는 망민법(網民法)이다".
"지금은 이런 문제로 민심을 이산시킬 때가 아니다".
"현직에 있는 사람을 처단하는 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특위 행동이 지나친 바 있어 국가 치안에 방해가 된다". 
"경찰 기술자들의 기술을 이용해서 모든 지하공작과 반란음모를 예방해야 한다".

그때 했던 이 얘기들, 지금도 누군가 하고 있진 않은가. "내란몰이 거짓선동과 헤어질 결심을 하라"거나 "이제 우리가 반격을 시작할 때"란 포효에서 노덕술에게 주어진 그 역전의 기대감을 읽는다.

그러니 더더욱 비장한 순간이다. 내란의 길마저, 성공한 친일의 길 위에 올라타도록 내버려둬선 안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곱씹고 있을 것이다. 실패한 길, 끝까지 추적되고 처벌 받는 '나치 전범의 길' 위에 올라태워야 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장인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의장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장인 이재명 대통령이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의장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 이 대통령의 2일 국무회의 경고처럼 "숨겨진 내란 행위를 방치하면 언젠가 반드시 재발한다". 그래서 "곳곳에 숨겨진 내란의 어둠을 온전히 밝혀내 진정으로 정의로운 국민 통합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고문해서 누구를 죽인다든지, 사건을 조작해서 멀쩡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다든지, 또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집어놓는 등 국가권력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대해서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 영원히 살아있는 한 형사 처벌하고 상속 재산의 범위 내에서 상속인들까지 끝까지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재발을 막는다.

100살 독일 노인이 재판에 넘겨진 게 불과 4년 전이다. 1940년대 나치 정권이 운영하던 집단수용소의 경비로 일하면서 재소자 3500여명의 집단살해를 방조한 혐의다. 100살의 그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졌을지도 그렇지만, 100살이 되도록 추적되었을 그의 일생이 궁금하다. 

성공한 친일의 길을 수식하는 '떵떵'이 아닌, 실패한 전범의 길에 깔린 '벌벌'의 일생을 내란의 길에도 깔아줘야 한다. 그것이 단죄하지 못한 76년의 역사를 일부나마 치유할 수 있는, 760년의 미래에 꽃길을 깔아주는 과업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몇 대를 건넌 후손들에까지 물려줄 역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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