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1박2일 일정(8~9일)은 미국과 러시아 정상과 잇단 회담이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예상대로 시 주석은 북한을 영향권 아래로 끌어들이는 데 온힘을 쏟았다. 북한도 이런 상황에서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일각에서 기대했던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는 순위에서 밀려나 공식적인 언급이 없었다. 북한과 한층 밀착한 전략적 관계를 새로 설정하려는 중국에게 한반도 문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만남은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핵심 파트너로 북한을 부상시켰다.
러시아 의식한 시진핑, 군사협력 카드 제시
이번 방북은 시 주석의 올해 첫 해외 일정이었다. 중국에게 북한이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방증이다.
시 주석은 북한을 '운명 공동체'로 규정하면서 "양측은 외교, 법 집행, 군사 분야에서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며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경제적 협력을 뛰어넘어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맺자는 뜻이다.
올해 65주년이 된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에 포함됐지만 사실상 사문화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는 러시아 쪽으로 기운 북한을 끌어당기기 위한 목적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에 대응해 북한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상호 군사 지원을 약속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숫자는 1만1000~1만4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가 과도하게 가까워지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해왔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어서다.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에 대척점에 있는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이번회담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진 회담에서 북한이 거론된 것과 대조된다.
사라진 북핵…주권 문제로 동의했나
연합뉴스한반도나 북핵이라는 단어가 공식석상에서 빠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핵 문제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관심사항이지만 중국이 북중 관계를 고려해 공식적인 의제로 삼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지난 7일 담화에서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불퇴의 한계선"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누구와도 우리의 핵심 주권과 안전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시 주석 방북 하루 전에 나온 이 메시지는 북중 회담의 전제 조건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시 주석은 "각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역내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유지하자"고 했다. '각국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주장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읽힌다.
이에 김 위원장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 수호 정책과 입장을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북한이 생존 전략으로 내세운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 정책 지지를 서로 주고받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여기에 더해 국경 통상구(교역 관문)의 전면 재개통 등을 통한 인적 교류 확대와 무역·농업·건설·과학기술·보건의료 등에서 실질적인 협력도 '당근'으로 제시했다.
中, 한반도 영향권 강화…美 견제 의도
이번 회담은 미국이 이란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형국에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중이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이어가면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현재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양측의 경제 협력과 교류 확대가 미국 중심의 유엔 제재를 약화시킬 경우 북한은 새로운 경제적 탈출구를 마련하게 된다. 이는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서 '핵심 당사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이란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중재를 요청했던 것처럼, 북미 대화 재개 과정에서도 중국이 중재자 또는 보증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의 밀착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응 강도에 따라 한반도가 미·중 간 전략 경쟁의 장(場)으로 떠오르며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