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 뜯는 6년차 알바…살인 노동에 ''쥐꼬리'' 시급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잠이 부족해 늘 힘겹지만 노동대가로 받는 시급은 쥐꼬리다. 정규직 노동자처럼 울타리가 돼 줄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보호해 줄 법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비전없는 직장에서 죽도록 일하지만 자신들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하기 일쑤이니 젊은 나이에 인생의 꿈마저 잃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생계를 목적으로 아르바이트를(파트타임 노동자)해서 먹고 사는 ''알바'' 얘기다.

고교 고학년 때부터 알바전선에 뛰어든 윤수진양(23·서울 강동구 천호동)이 알바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6년째다. 알바를 시작할 때 만해도 고졸이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정도로 취업문이 좁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알바였고 처음엔 돈을 많이 벌어 이것저것 하겠다는 꿈도 많았다.

◈ "일 때문에 늘 옷을 입은 채 잤어요"

수진양은 21살이 되던 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하루 알바 횟수를 두 차례로 늘렸다. 오전엔 홍익대 앞 커피전문점 카페베네에서 커피를 만들고 나르는 일을 했고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서강대 부근 호프집에서 알바를 뛰었다.

카페베네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6시간이었다. "8시를 넘기자 마자 출근시간대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늘 바빴어요"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 시간은 근무시간에서 빼기 때문에 작은 시급이나마 안 깎이려고 전 매일 저녁 옷을 입은 채 잠을 잤어요"

전날 밤 호프집 알바를 마치는 시각이 새벽 2시. 퇴근 카드를 찍고 귀가해 씻고 뭘 좀 챙겨 먹으면 3시다.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붙였다가 이내 일어나야 알바가게 출근을 제때할 수 있다.

"일주일내 이러고 나면 주말에는 내내 잠만 자게 돼요" 윤수진양은 하루 알바를 이른바 2탕 뛰는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둘러 출근하다 보니 아침을 제대로 챙겨먹을 여유가 없다. 어떤 날은 김밥을 챙기지만 보통은 아침을 거르고 일을 마치는 시각인 2시까지 점심도 먹을 짬이 없다고 한다.

정규직 노동자는 점심과 저녁을 챙겨먹을 시간이 허락되고 급여 항목 속에 ''식사비''가 들어 있다. 그러나 알바업주들은 정해진 시간동안 최대한 일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밥을 먹으러 나가도록 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별도로 밥값을 주거나 먹거리를 챙겨주는 주인도 거의 없다.

◈ 알바 시급은 4,000~5,000원.

업소 내에서 발바닥이 닳도록 뺑뺑이를 돌면 돈은 그런대로 벌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노동강도가 아무리 강해도 시급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들의 시간당 급여는 4,860원이다. 홍대나 신촌 등지의 카페나 바 처럼 상대적으로 노동강도가 센 업소들은 시급이 5,500~6,000원으로 조금 더 높다.

그러나 고시상의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고용돼 일하는 알바생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편의점 알바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윤양은 4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편의점 노동은 돈을 받고 거슬러주는 단순노동이어서 시급이 최저임금 수준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며 "주간근무 때는 시간당 4,000~4,200원, 야간은 5,500원 안팎의 시급을 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야간에는 기본 시급 4,860의 1.5배인 7,290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업주는 드물다.

쥐꼬리 만큼 급여를 주면서 일은 엄청나게 시킨다. 알바연대 관계자는 4일 "프랜차이즈 업주들이나 알바 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주들은 알바생을 최대한 적게 고용해 쉼없이 최대한 부리기 때문에 알바들의 노동강도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세한 업주들은 그 만큼 고용여력이 떨어져 알바에게 온갖 일을 다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덧붙였다.

알바가 커피를 만들어 서빙(배달)하고 계산하고 설거지까지 1인 다역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야동보기'' ''귓속말하기'' 성추행 위험 상존

윤수진양은 서강대 부근 호프집 근무 당시 성추행 경험까지 겪었다. "어느날 40대 사장님이 저의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귓속말로 뭔가를 얘기했는데 순간 성추행을 당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사장님 왜 성추행하세요?''라고 대응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40대 사장은 윤양에게 "내가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인데 넌 어떻게 말을 그런 식으로 하니"라면서 오히려 핀잔을 줬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사장을 대하기도 민망해 윤양은 업소를 그만뒀다. 복수의 여성 알바생들에 따르면, 때로는 업주들이 여성 알바생들이 있는 데서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경우도 있고 손님이 없어 사장과 단둘이 있게 될 때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 생계형 알바…절망 체념에 빠져 희망없는 인생

윤양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생각에 21살때 알바를 ''두 탕'' 뛰면서 열심히 살았다. 홍대앞 카페베네와 서강대 부근 호프 알바에서 그녀가 한달에 번 돈은 140만원으로 대학생 알바들에 비해 훨씬 큰 돈이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 4명이 한 집에 살면서 그나마 집세는 줄일 수 있었다. 한 달 월세로 15만원, 공과금 10만원, 식비 10만원, 핸드폰 6만원, 개인용돈 15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교통비 등을 제하고 남는 돈 50만원을 적금에 부었다.

매일 새벽 초주검이 되는 힘겨움을 견뎌내며 꼬박꼬박 돈을 모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몇달만에 호프집을 관두게 돼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오랜 시간 알바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번듯한 집을 얻어 독립하겠다는 목표는 당분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올해초 그녀는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윤양은 "잘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안된다"고 답했다. "상황이 짜증스럽지 않으냐"는 물음에 대해 "이제는 짜증은 안나고 포기 상태이다"고 답했다.

인생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전에는 영화감독이 돼서 멋진 다큐영화를 만드는 꿈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꿈을 유보해두고 있다"면서도 "친구들은 꿈을 이루려면 학교도 가야하고 스펙을 더 쌓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답답해 진다"며 울먹였다.

◈ 부양가족 없는 윤수진양은 ''다행''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는 생계형 알바, 이른바 ''가장 알바''에 비하면 윤수진양은 다행한 경우다. 윤양에 따르면 그녀와 동갑내기 남성 알바는 부양해야할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데다 알바로 번 돈으로 빚까지 갚는 처지라 항상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지만 워낙 저임금이어서 헤어날 길이 없는 처지라고 친구의 불우한 사연을 전했다.

알바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인 ''알바연대'' 권문석 대변인은 "옛날에는 알바생이 대부분 대학생이었지만 요즘에는 나이든 분이 정말 많다, 은퇴자도 주부들도 생존을 위해 알바전선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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