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국정원의 NLL대화록 공개 위법소지"

"공공기록물 아닌 대통령기록물...검찰 오판이 잘못된 근거 제공"

국가정보원이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데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해 대선 개입 사건에 휘말린 국정원이 국회 국정조사를 회피할 목적으로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면서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지난 해 10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등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주장을 했다가 고발된 사건에 대해 올 2월 무혐의 처분한 것이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이 정 의원 주장의 근거가 된 대화록에 대해 상대적으로 열람이 쉬운 공공기록물로 판단한 것에 문제가 있는데, 국정원이 검찰의 판단을 근거로 전문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 전문가들 "정상회담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

검찰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국정원이 보유한 대화록은 공공기록물'이라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상 간의 대화지만 국정원이 자체 생산한 것이기 때문에 국정원을 생산 주체로 봤다"고 밝혔다.

대화록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열람.공개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공공기록물관리법상 비공개 기록물은 해당 기관장이 '공공기관에서 직무수행상 필요에 따라 열람을 청구한 경우'에 한해 열람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 있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제시될 경우에만 열람이 가능해,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전문가들은 대화록의 생산과정에 주목하며 검찰과 정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가 직접 정상회담에 배석해 자체 메모한 것을 근거로 대화록을 만들었다면 검찰의 논리가 성립하지만, 국정원은 청와대에서 녹음한 것을 단순히 풀어냈을 뿐이기 때문에 생산 주체로 보기 어럽다는 것이다.

대화록은 조명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이 휴대용 디지털 녹음기로 녹음한 것을 김만복 국정원장과 조 비서관이 풀어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오후 국정원이 국회에서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지난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문서로 배포했다. 사진은 회의록 발췌문. (황진환 기자)
안병우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전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는 "국정원장이 따로 메모를 해서 만들었다면 공공기록물로 볼수 있지만, 청와대 녹음을 제공받아 받아쓴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영학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관리학과 교수도 "청와대에서 녹취한 것이기 때문에 국정원이 자체 생산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전했다.

NLL발췌본의 성격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국정원이 검찰의 판단을 인용해 전문을 국회의원들에게 공개한 것도 성급했다는 평가가 많다.

국정원은 △여야의 강력한 요구 △국론분열 △언론을 통한 공개로 비밀문서 가치 상실 등을 공개 결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은 "대통령기록물로 봐야할 문서를 국정원이 공공기록물로 판단해 공개하는 것 역시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따지고 보면 국정원이 공개 이유로 내세운 이유는 스스로가 새누리당에 대화록을 열람해주면서 발생한 일"이라며 "이런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 "새누리당, 국정원 기록 열람.공개 위법"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대화록이 대통령기록물이라면 국정원의 열람 허용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열람 자체가 불법행위가 된다.

설령 국정원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대로 공공기록물이라고 하더라도 새누리당 의원들의 열람은 위법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령은 비밀문서에 대해 '직무상 필요한 경우'로 열람을 제한하고 있지만, 정쟁의 도구로 삼기위한 열람이 여기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안병우 교수는 "직무상 필요라는 것은 군사 작전 등 비밀문서가 요긴한 경우다. 정략적인 목적으로 열람했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열람이후 공개가 엄격히 금지되는 비밀문서를 놓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기자들에게 설명한 점도 위법성이 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임규철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열람하고 비밀을 밖에 누설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며 "국민의 알권리 차원이라고 해도 법원에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한 후 공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진한 사무국장은 "공공기록물 관리법상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비공개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 역시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얻는 공공의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여야의 이해할 수 없는 정쟁의 수단 외에 일반국민들에게 어떤 공익을 가져다주고, 어떻게 국익에 도움이 됐는지 알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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