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진압 중 부상에 30년 고통받던 소방관의 죽음

84년 현장서 신경절단, 투병하다 끝내 스스로 생 마감

화재 진압 현장에서 부상 후 수십년간 신경 및 간질환으로 고통받다가 이달 초 명예퇴직한 전직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7일 광주 광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8시 50분께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9층에 거주하는 전직 소방관 A(55)씨가 자택 작은방 창문에서 추락해 숨졌다.

A씨는 20년 넘게 간 질환을 앓다가 최근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더이상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판단, 퇴직을 결정했다.

유족 측은 경찰조사에서 A씨가 지난 1984년 화재진압 중 부상을 당해 응급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B형 간염 보균자의 피를 수혈받은 뒤 1990년 B형 간염 판정을 받았고 수십년간 간경화로 고통받다가 암까지 진행됐다고 밝혔다.

A씨는 화재 진압 당시 불이 난 건물 2층 창문을 통해 실내에 진입하던 중 전기에 감전돼 쓰러졌고 이 과정에서 유리 파편에 오른쪽 허벅지를 찔려 신경이 절단됐다.

A씨는 오랜 기간 병원 치료와 등산 등 운동을 병행하며 신경 재활과 간 질환 치료를 해왔으나 병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간암 진단을 받은 뒤에는 심한 통증이 이따금 찾아왔고 처음에는 반응을 보이던 진통제도 얼마 전부터는 먹기만 하면 구토를 하고 열이 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때 떠나고 싶다며 지난 6월 3일 퇴직했다.

숨진 당일에는 열이 나서 바람을 쐬야겠다며 창가로 간 뒤 생을 마감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고 시신을 인계하기로 했다.

A씨와 함께 근무했던 한 소방관은 "소방관들은 누구나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 부담을 안고 일한다"며 "A씨는 묵묵히 참고 일을 계속하려 했지만 사고 후 트라우마 치료 등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격무를 수행해 자신은 물론 가족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늘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보상은 부족한 반면 해당 소방관에 대한 책임 추궁 수위는 무겁다"며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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