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또한 원전 안전에 대한 국제 규범을 역행하는 구상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박 대통령은 9일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원전 업계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체계도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주무부처인 산업부에 원전 공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이 거의 없다"며 "원전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보완할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부를 중심으로 안전 규제를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경영 효율을 담당하는 기재부, 비리를 찾아내는 감사원 등이 긴밀한 협업체계를 구축해서 더 이상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하겠다"며 부처간 협업을 주문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산업부가 총괄, 기획으로 점검하고 관련 유관부처들의 협력체제를 구축하게 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산업부가 갖도록 확실하게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주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실상 원전 안전보다 원전 산업의 진흥을 우선시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원전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라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규정을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업부는 원전 운영을 담당하는 주무부처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전력기술 등 원자력과 관련된 공기업들을 관리하는 원전 진흥 부서다.
원자력기구 규정의 취지는 원전 '진흥'에 치우치면 '규제'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자는 것이다.
원자력 안전에 관한 국제규범인 원자력안전협약은 '규제기관의 기능을 원자력 이용 또는 증진과 관련된 기관의 기능과 효과적으로 분리'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오래전부터 원자력 안전 규제와 원전산업 진흥 기관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도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뒤늦게나마 안전규제와 진흥 업무를 이원화했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이명박 정부는 규제기관인 원안위를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로 신설해 원전의 안전규제와 진흥 및 운영을 분리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개편 당시 원안위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위원회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가 논란 끝에 여야 합의에 따라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최종 변경했다.
상황이 이랬는데도 박 대통령은 '진흥 기관'인 산업부를 중심으로, 심지어 총리실 산하 독립기구인 원안위를 포함하는 또 다른 위원회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원안위를 구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산업부는 원전 업체들의 비리에 대해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인수위 시절 구상했던 ‘진흥부처 아래 규제기관을 배치’하려는 원전마피아식 기획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며 "기본도 안 된 엉뚱한 구상을 할 게 아니라 최소한 원안위를 대통령 직속위원회로 원위치하고 독립적인 인력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인 김영희 변호사도 "한 마디로 원자력 산업계의 이해에 굴복한 것"이라며 "원자력 산업의 진흥을 속성으로 하는 산업부가 컨트롤 타워가 되면 안전이 도외시될 수 밖에 없다"면서 "그동안 원전의 안전을 강조하던 발언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으로 박 대통령의 공약 위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원전업계 관계자 역시 "원전 비리에서도 산업부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업체들에 대한 감독 관리 권한이 없다며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산업부가 뭘 할 수 있겠냐"며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