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정치개입의 역사' 국정원 개혁 방향은?

국내 파트 폐지·축소가 핵심

온라인 여론조작을 통한 정치개입 행태가 드러난 국가정보원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개혁논의가 활발하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스스로 개혁'을 주문하고 나선 가운데 국정원은 10일 성명을 통해 "정치개입 등의 문제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유구한 전통', 국정원의 정치개입

"과거 정부로부터 정치개입과 도청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고 성명에서 자인한 대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시절부터 충실히 계승됐다. 중정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창설돼, 전두환 정권 때인 81년 안기부로 개명됐다. 현재의 이름을 달게 된 것은 김대중 정권기인 99년이다.

박정희 독재시절의 중정은 체제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해 테러·납치·고문을 통해 폭력적이고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일본 도쿄에서 납치한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외교문제를 일으켰다.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처럼 용공 조작도 대표적인 수법이었다.

안기부 시절에도 다양한 정치공작을 이어갔다. 1987년 폭력배를 동원해 김영삼·김대중이 주축이던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한 '용팔이 사건'을 획책했다. 또 동거남에게 살해당한 여성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수지 킴 사건'도 있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막으려고 "김대중 후보가 김정일한테 돈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북풍 사건'을 일으켰다. 유권자의 안보 불안감을 자극할 목적으로 북한군에 총격을 유도한 '총풍 사건'도 공작했다.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도 2000~2002년 정치인 등 1800여명에 대한 불법 도청을 벌였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다 이명박 정권 들어 마침내 '댓글 조작'이란 창의적 정치개입 수법을 선보였다.

◈ 국내파트 폐지에서 국정원 해체까지 개혁안 봇물

여야 모두 국정원의 정치개입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국내정보 파트의 개혁이 핵심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정원을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의 강경한 개혁안을 제시한 상태다. 진성준 의원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정원의 명칭을 '통일해외정보원'으로 바꾸고, 정치 개입에 연루된 국내정보 파트를 폐지하도록 했다. 국정원에서 수사권도 박탈하고, 국정원의 예산을 국회가 통제하도록 하는가 하면, 국회가 국정원장을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의 입장으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개별 의원들이 다양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회 정보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의 안이 상대적으로 구체성을 띠고 있다. 조 의원은 국정원장 임기제와 국회의 임명동의제 도입, 국내정보파트의 해체 및 '정치개입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제안한다.

학계나 법조계에서도 국내파트의 혁파를 우선시하고 있다. 지난 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전 중앙대 법대 교수는 최근 CBS '김현정의 뉴스쇼'(FM98.1)에서 "국정원에서 제일 큰 문제가, 정보를 수집한다는 미명 하에 국내의 정치·사회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걸 100% 금지시켜야 된다"며 "그렇다고 해외 위협세력의 국내 활동까지 손을 떼라는 것은 아니므로, (국정원이)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사무차장은 "국정원의 국내파트와 해외파트를 완전히 분리해 각각의 기구를 세우거나, 국내파트 업무를 경찰 등에 이관하면 된다"면서 "또 대통령 산하에 민간이 참여하는 정보기관 감독위원회를 두고, 예산도 투명하게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국내정보와 해외정보, 대북정보를 모두 다루고 수사권까지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이는 미국이 FBI(국내)와 CIA(해외), 영국이 MI5(국내)와 MI6(해외)로 별개의 정보기관을 둔 것과 대비된다. 이는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국정원도 자신들의 정치개입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의 여망과 달리 국내파트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생각이 없다는 점도 성명에서 분명히 밝혔다.

국정원은 "국정원 내에 자체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제2의 개혁 작업에 착수, 대내·외 전문가들의 자문과 공청회 등을 열어 개혁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며 "남북대치 상황 하에서 방첩활동과 대테러 활동, 산업스파이 색출 등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는 강화하고, 정치개입 등의 문제소지는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파트 폐지 여부와 함께 국정원 개혁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도 쟁점이다. 여당과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특수한 업무 구조와 문제점은 정보기관이 가장 정확히 안다'며 자체개혁에 찬성한다. 반면 '개혁대상이 개혁주체가 돼서는 안된다'거나 '국정원이 과연 스스로 개혁할 수 있겠느냐'는 야당 등의 반론이 거세다. 이른바 '셀프개혁'은 주홍글씨 대신 훈장을 주는 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변 박주민 사무차장은 "자체 개혁안이라도 국내파트 분리 등 핵심적 사안이 포함만 된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자신들의 권한을 쪼개는 일까지 국정원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2차장을 지낸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은 "외형적 조직 개편보다 구성원들의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며 "정권안보와 국가안보가 헷갈려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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