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수치 가문의 의혹, 전두환 비자금을 찾아서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전 전 대통령 집에서 나온 건 그림 한 점 정도. 대신 아들 형제인 재국·재용씨 등이 운영하는 사업체 등지에서 100여점의 그림과 도자기, 보석류 등을 압수했다. 압수가 곧 추징은 아니다. 고가품을 사들인 자금의 흐름을 추적해 밝혀내야 하나 쉽지 않다. 이제는 치밀한 수사와 추적을 통해 숨겨진 재산과 증거자료를 찾아내야 한다.

검찰도 이런 점을 감안해 지휘체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국가 송무 담당인 공판2부장이 재산추징팀을 지휘했으나 이번엔 외사부장 - 추징팀으로 체제가 바뀌었다. 해외에 숨겨둔 재산이나 역외탈세 여부 등을 파헤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 가문의 의혹 - 수상한 재산들 목록

장남 재국 씨 소유재산을 먼저 살펴보자.

서울 서초동에 있는 시공사는 출판사로 자산이 296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시공사는 북플러스, 도서출판 음악세계, 뫼비우스, 한국미술연구소, 허브빌리지, 파머스테이블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전두환 씨의 비자금이 흘러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사업을 문어발로 확장할 수 있었을까 의심받는 재산형성 과정이다.

특히 지난 2006년 경기도 연천군에 조성된 ‘허브빌리지’라는 생태마을. 시가로 250억 원 상당이다. 이 땅의 소유주는 전재국 씨의 부인과 큰 딸. 부인과 딸이 땅을 산 자금은 전재국 씨의 외할아버지가 외손주들에게 물려준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고인이 된 그 외할아버지는 사망 당시 13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최근 ‘뉴스타파’의 보도로 알려진 페이퍼컴퍼니도 문제다. 2004년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이라는 유령법인을 설립했는데 비자금이 해외계좌를 통해 빠져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대목이다.

차남 재용 씨.
국민주택채권 167억 원. 이것도 비자금에서 증여된 증거를 찾아볼 자산이다.
부동산 개발 회사 비엘에셋. 자산은 약 425억 원. 이 회사 설립 종자돈 역시 외할아버지가 재용 씨 결혼축의금으로 들어온 돈을 불리고 불려서 마련했다고 하나 차명계좌를 통해 무기명 채권에 투자함으로써 돈세탁된 자금이다.
전재용씨는 2004년 아버지 전두환 씨에게서 물려받은 국민주택채권 119억 원어치에 대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벌금도 60억 원을 선고받았다.

3남 재만 씨.
국민주택채권 160억 원 어치. 1995년 운산그룹 회장 딸과 결혼하며 장인이 결혼축의금으로 160억 원 어치 채권을 줬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지하 4층, 지상 8층짜리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시가로 100억 원쯤 간다.
재만 씨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장인과 공동소유로 포도주 양조장도 운영하고 있다. 재산가치로 1천 억 원 대.

딸 효선 씨.
2006년에 외삼촌 이창석 씨로부터 증여받은 경기도 안양시 임야. 2만7천 제곱미터, 8천 평 규모의 땅.

처남 이창석 씨.
경기도 오산의 부동산과 호화별장.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도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에서 검찰이 미납 추징금 집행을 위해 재산 압류 절차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전직과 현직 대통령, 이제는 남일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 추징한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은 20억 원이다. 벤츠 승용차를 경매에 붙여 1억 원, 아들 전재국 씨 명의의 콘도회원권 1억1,104만 원, 연희동 별채와 숨겨둔 서초동 땅에서 각각 16억 원과 1억 원 등이다. 이명박 정부 때 추징금은 4만7천 원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권은 얼마나 추징해 낼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은 방문했지만 전 전 대통령에게는 찾아가지 않은 점으로 보아 거리두기 만큼은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 거리두기가 냉엄한 조사와 수사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

박 대통령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는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도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한다며 여당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전두환추징법에 여권의 다짐이 이 정도라면 일단 기대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국민 여론이 강하게 압박해가지 않으면 중도에서 흐지부지 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필리핀의 경우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바른정부위원회(PCGG)’를 두고 있다. 위원회는 마르코스 생전에 사들인 미술작품들과 부동산들을 주로 추적해 왔다.

마르코스는 지난 1986년 정권 붕괴 당시 최소한 300점의 명화를 측근들에게 나눠줬는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만 회수되고 나머지는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미술품은 피카소, 고흐 등 거장들의 작품이다. 최근 뉴욕에서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 여사 측근이었던 인물이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비롯한 작품 4점을 팔려다 적발됐는데 이것들도 사라진 작품들 중 일부.

위원회는 지난 26년 동안 마르코스가 재임기간에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00억 달러의 부정축재 재산 가운데 40억 달러를 환수하는 실적을 올렸으나 최근 활동이 중단됐다.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여사와 자녀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해 영향력을 되찾으면서 위원회 예산지원이 끊긴 때문이다.

은닉재산의 소유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관련서류가 부족한 데다 마르코스 일가의 변호인들이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권력을 회복하는 지연전술에 당한 셈이다.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의 은닉 재산은 칠레 대법원과 국가위원회가 나서서 조사하고 있다. 칠레 대법원은 그의 재산이 최소 2천 100만 달러(약 240억원)이며 이 가운데 1천 786만 달러는 출처와 행방이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다.

칠레 국가 수호 위원회(CDE)는 국가이익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피노체트 재산 추적추징을 통해 독재 시절의 인권 유린 피해자들을 보상할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칠레 사법당국은 이미 미국 등 해외은행 비밀계좌 사건으로 기소된 피노체트의 모든 은행계좌를 압류한 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검찰의 추적도 칠레처럼 지구촌을 누비며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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