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성장률 하락에 따른 세수부족을 우려하는 류성걸 의원(새누리당)에게 자신만만한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문제는 심각했다. 국세청이 민주당 안민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누적 국세수입은 82조1,262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9조원이 덜 걷혔다. 아직 계산이 덜 끝난 6월분까지 감안하면 상반기까지 세수부족분은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현재 세입을 확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호언장담했던 박 전 장관의 발언이 있은지 불과 6개월 만에 사정이 급변한 것이다.
◈ 6개월만에 “괜찮다”에서 “어렵다”로 급선회
가장 세수 결손이 심각한 부분은 법인세로, 5월까지 걷힌 법인세는 19조9,378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5월까지 법인세가 24조2,819억원이 걷힌 것과 비교하면 4조3,441억원이 덜 걷혔다. 9조원이 넘는 세수‘펑크’의 절반이 법인세에서 발생한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경기가 나빠져 기업의 당기순이익이 떨어지면서, 법인세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인세가 줄어든데는 한 가지 원인이 더 있다. 바로 MB정부의 감세 정책이다.
지난 2011년 세법개정을 통해 법인세 중간세율 구간(과세표준 2억원~200억원)이 신설됐고, 이것이 올해 법인세 납부 분부터 적용됐다. 그 전에는 과세표준 2억원 이상 법인들에는 일률적으로 22%의 법인세율이 적용됐지만, 중간세율 구간의 법인은 2% 깎인 20%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4조원이 넘는 법인세 부족분 가운데 감세분이 얼마만큼인지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 분석 중인데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늠은 가능하다. 국회예산처의 ‘2011년 세법개정안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징수기준으로 올해 법인세 중간세율 구간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세수차이는 1조6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거꾸로 말하면 중간세율 구간 신설로 1조6천억원 정도가 감면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물론 경기침체로 법인세 규모 자체가 줄어 실제 세금감면액은 1조6천억원보다는 적겠지만, 법인세 부족분 4조원 가운데 상당수는 감세 효과로 인해 발생했다고 추정이 가능하다.
◈ 경기침체와 감세정책 맞물려 세수펑크
인하대 강병구 교수(경제학)는 “세수 부족 현상은 경기적 요인과 감세정책이 함께 작용한 결과물”이라며 “MB정부가 추진한 감세정책이 박근혜 정부에서의 세수부족으로 연결됐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MB정부에서는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내세웠지만 세율만 낮아지고 각종 비과세 감면을 유지하면서 세원을 넓히지 못해, 결과적으로 세수부족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전임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말 넘겨준 16조5천억원의 잉여금을 기반으로 감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전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잉여금은 마이너스 1천억원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넘겨받아 살림을 시작한 셈이다.
게다가 세수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5년 동안 모두 135조원이 투입되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노인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던 기초연금의 액수 등이 변경되는 등 재원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마이너스로 시작한 박근혜 정부, 증세카드 검토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살림을 맡은 기획재정부는 “아직은 괜찮다”며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지난 16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반기로 가면서 세수의 감소폭이 줄어들 것”이라며 “불용예산이나 경상비 조정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각계에서는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지난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낮아진 세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법인세율은 노무현 정부 당시 25%에서 현재 20~22%까지 낮아진 상태다. 법인세를 낮추면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회사에 쌓아놓은 유보금만 불어났다. 급기야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 규모는 400조원을 돌파했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경영학)는 “일반 개인소득은 줄어드는데 기업의 소득은 굉장히 많이 늘었다”며 “전체 형평성 차원에서 특히 대기업들이 더 부담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세수부족이 심각한데 기업들이 세율을 올리면 투자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도 “세원 발굴이나 비과세 감면 축소로 세수 부족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라며 “부족한 세수확보와 복지 등의 공약 재원마련을 위해 증세카드를 검토해야할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