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압군인들의 트라우마, 이제는 국가가 보듬어야

[기자칼럼] 가해자 낙인에 가슴앓이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 31주년을 맞은 2011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 기념식에서 한 할머니가 헌화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개인의 삶은 역사의 구조적 상황에 지배를 받는다. 5.18진압작전에 투입됐던 장병들 상당수가 33년 간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한 특전사 장병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33년 만에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장병은 내게 "33년만에 당신에게 처음 입을 연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사람은 누구나 절대 감추고 싶은 비밀은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법이다. 그 장병은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 장병은 '가해자라는 낙인' 때문에 아내, 자식에게도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기에 말도 못꺼내고 가슴앓이만 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게 개인의 잘못인가? 5.18진압부대원들은 정치군인의 부당한 명령에 의해 임무 수행을 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개인이 얼마나 있을 수 있겠는가?

국가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의무가 있다. 국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5.18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광주시민들은 여전히 진행형인 진압군인들 아픔을 이제는 보듬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5.18당시 전남도청 사수임무를 맡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350명 중 100~150명은 트라우마를 앓고 있을 것이라는 게 증언장병의 얘기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지 않은가. 5.18 진압군인들에 대한 치유는 5.18 피해자와 가해자간 진정한 화해의 바다로 향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업은 국군의 사기를 충만케 할 것이다. 군인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자긍심을 먹고 산다. 한 때 정치군인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군인들의 불명예를 씻어주고, 진압군인들의 아픔에 대한 치유를 통해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었을 때 진정 국민을 위한 군인으로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수 조원을 들여 스텔스기 수 십대를 들여오는 물리적인 것보다, 군인 개개인을 진정한 군인 정신으로 충만케 하는 정신적 자산이 튼튼한 안보의 초석이 될 것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소장 강용주)는 지난해 연말 문을 열어 5.18피해자 트라우마 치료에 나섰다. 연간 7억5천만원 예산(정부,지자체 반씩 부담)으로 3년간 시행된다. 진압부대원이 1만1천여명, 그 중 트라우마 추정 인원은 1500명에 이를 것으로 강용주 소장은 진단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강소장은 가해 책임자들에 대한 완전한 청산 작업과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진압군인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가 모순된 측면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치군인들의 희생물인 진압군인들에 대한 치유가 역사 바로세우기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소장은 말한다.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몰수를 위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전격 실시됐다. 국민들이 박수를 보낸다. 역사는 진보와 퇴행을 거듭하며 진행된다. 역사의 흐름 속 상황의 지배를 받는 개인은 그래도 진보에 희망을 걸고 삶을 살아간다. 정치지도자는 그 흐름의 방향을 정하는 데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NLL 정쟁을 일삼기보다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적 감수성을 발휘했으면 한다.

분단과 국권찬탈과 같은 한국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빚어진 이산가족과 5.18진압군인들의 트라우마 같은 힘없는 개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국가가, 정치지도자가 어루만져줘야 한다. 이러한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평화, 민주, 인권의 기틀을 다져나가는 게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 들판에 반딧불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정치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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