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관용차 사적 이용' 군 상관 못견뎌 자살…국가가 배상해야

헌병대, 진술위조·허술한증언 토대로 '엉터리' 조사

군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등 상관의 부조리 때문에 군 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운전병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씨는 지난 2001년 군에 입대해 부대 참모장의 운전병으로 배치받았다. 이 씨의 상관은 출퇴근할 때뿐 아니라 사적인 약속장소에 가거나 주말에 집에 가는 경우에도 이 씨에게 운전을 하도록 했다. 일과 시간 후 야간 운행도 잦았다. 참모장의 빨래나 강아지 돌보기, 세탁물 찾기 등 개인적인 업무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상관의 개인적인 심부름에 시달리던 이 씨는 이유없이 잦은 외출을 한다는 윗선의 질책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참모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고할 수는 없었다. 결국 휴가때 인수인계를 잘못했다며 간부들의 폭언과 심한 질책까지 받게되자 이씨는 2002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헌병대는 "이 씨가 관사에서 게임을 하는 것을 봤다"는 선임병 진술 등을 토대로 이 씨가 인터넷 게임 아이템을 훔쳐 질책을 받을까봐 걱정하다가 자살했다는 어이없는 수사결과를 내놨다. 수사 과정에서의 지인들의 진술도 모두 위조됐다.

유족들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고 7년 만에 이 씨가 상관의 부조리로 스트레스를 받아 숨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여미숙 부장판사)는 이 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77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과중한 업무와 상관의 폭언으로 자살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부대 간부들이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면서 "일부 진술에만 의존해 섣부른 수사결과를 내놓은 헌병대의 과실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인 5년이 지나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헌병대의 위법한 집무집행으로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했으니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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