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휘청거리거나 문 닫거나

[사회적기업의 그늘①] 조명 받던 사회적기업의 현재

사회문제 해결과 수익창출이 동시에 가능한 '착한 기업'. 지난 2007년 등장한 사회적기업의 면면은 화려했다. 정부와 자치단체마다 사회적기업 발굴·육성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6년 만에 16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이 질적으로도 '착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원이 끊기자마자 존폐 기로에 놓이는가하면, 제도를 악용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양적 성장'에만 집착하는 지원제도는 이 같은 상황을 외면한다. 대전CBS는 사회적기업 지원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등을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조명 받던 사회적기업의 현재
2. 1년 만에 문 닫는 예비사회적기업들
3. 청소·도시락 '쏠림현상', 이유 알고 보니
4. 사회적기업, 관점을 바꾸자

대전시 동구 ㄱ 세탁공장. 다림질에 열중하던 백문수(57) 씨가 공장에 걸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진 속 밝게 웃는 65명의 동료들이 백 씨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벌써 6년 전 사진이다.

지금은 5명만 남았다. "정부 지원이 끊기고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봉급 값'을 못 하는 사람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라고 백 씨는 말했다. 그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노숙인 쉼터, 장애인 시설, 또는 거리.

백 씨 역시 다리를 못 쓴다. 10년 가까이 병원 생활을 하고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그런 백 씨를 이곳은 일원으로 맞아줬다.

ㄱ 공장에는 여느 세탁소에서는 보기 어려운 시설이 많다. 숙련되지 않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와이셔츠와 바지 다림 기계를 따로 뒀다. 하지만 이제는 저 기계들이 고장 나도 새로운 기계를 놓을 여력이 안 된다. 백 씨도 다림질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처럼 보란 듯이 일할 수 있도록 받아준 곳은 여기밖에 없었는데..." 백 씨가 고개를 숙였다.

대전시 서구의 ㄴ 방과후교사 파견업체. 지난 2008년 문을 열어 언론에도 숱하게 소개된 '잘나가는' 곳이었던 이곳은 지난 4월 폐업 신고를 냈다.

결혼과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둬야했던 주부들을 고용해 초·중학교에 방과후교사로 파견, 독서 및 생활지도를 해왔다. 사회적기업 모범사례에, 일자리 창출 유공 표창까지 받았지만 역시 지원 중단과 함께 운영에 빨간 불이 켜졌다.

"정부 지원으로 인건비가 나올 때는 거의 무료로 교사들을 쓰다시피 하던 학교들이 막상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될 때가 오자 '학교 운영이 어렵다'며 고개를 돌렸어요. 학교 부담금이 80만 원이었는데 이걸로는 교사들 월급 주기도 부족해요. 새로운 교사 양성이요? 사무실 전기세, 수도세 내기도 어려웠어요."

'소비자'인 학교들이 업체를 외면하면서 폐업은 예정된 수순이 됐다. 수십 명의 어머니들이 이곳을 통해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옛 이야기가 됐다.

6년 전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사회적기업의 현재는 초라했다.

대전지역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업체는 모두 22곳. 이 가운데 정부 지원이 끝난 10여 곳이 근로자 수를 줄이거나 사업 규모를 크게 줄였다. 1곳은 끝내 문을 닫았다.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정부 인증까지 받은 '준비된' 곳들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원용호 대전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은 "시장경쟁 체제에 놓이면서 사회적기업들이 겪는 '딜레마' 때문"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위해 만든 회사인데, 일반기업과 똑같이 경쟁을 하려면 결국 노동력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을 해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원용호 회장은 "한 발로 뛰는 사람의 나머지 한 발을 채워주는 토대가 마련돼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는 일자리 '창출'에만 관심이 있지 '유지'에는 관심이 없다"며 "인건비 지원이 끝나는 순간 취약계층 고용도, 회사도 끝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시는 예비사회적기업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통해 지난해에만 46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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