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핵심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0년 넘게 사실상 사문화된 법안을 갑자기 꺼내든 것이다.
SNS에서는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계엄법을 발의한 김재의원 의원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확산되니까 이를 막기 위해 계엄법을 만지작 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렇지만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재원 의원은 대학생시절 헌법을 공부하면서 가졌던 오래된 생각이라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지금의 시대에 맞게 계엄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친박 김재원' 왜 뜬금없이 계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갑자기 왜 계엄법인가?
= 정말 뜬금없다. 김재원 의원 본인도 "뜬금없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시점에서 계엄법 개정안을 꺼내는 건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 의원은 지금과 같은 평시에 계엄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한다.
김 의원은 "갑자기 찾아오는 비를 맞지 않으려면 맑은 날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계엄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지금이 현행 계엄법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장래의 문제와 위험을 정비할 수 있는 적기"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국회에 제출한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서에서 "계엄은 국가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통령에게 유보된 긴급권이나, 현행법에 따를 경우 계엄의 자의적 선포, 계엄사령관의 권한 남용 및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이에 계엄선포 요건을 강화하고, 비상계엄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이 행사하는 특별조치권 중 헌법에 규정하지 아니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삭제하며,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강화하는 등, 국가의 긴급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시대 흐름에 걸맞게 현행 계엄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 한마디로 계엄법의 개정 필요성이 있다는 얘긴데 계엄법은 사실상 사문화 된 법 아닌가?
= 그렇다. 계엄법은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다.
가장 최근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1980년 5월 17일이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은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했다. 그 후 33년간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은 선포되지 않았다. 계엄법은 민주화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다.
비상계엄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시 최초로 선포된 이래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1964년 6.3 항쟁, 10월 유신, 부마항쟁, 10.26사태 등 총 11회 선포됐다.
김재원 의원도 사문화 된 법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문화 된 법이라도 언제라도 사용될 수 있으므로 미리미리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과거 검사시절초등학교 앞 문방구들의 동물학대를 단속하기 위해 사문화된 동물보호법을 꺼내들었던 적이 있다"며 "사문화됐더라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금 시대정신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 김재원 의원 본인도 '뜬금없다'고 하면서 왜 계엄법 개정을 발의한 것이냐?
= 김재원 의원은 계엄법을 발의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법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헌법을 공부하던 시기가 5공화국 때였는데 당시에 헌정체계가 왜 이렇게 됐는가 공부를 많이 했다"며 "계엄도 민주적 통제아래 두지 않으면 계엄 제도는 운영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특히 "5공 때 헌법을 보면서 계엄을 없앨 수 없을까? 비상계엄만 없으면 민주화 될 것"이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언론의 보도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평소에도 계엄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러던 차에 지난 4월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이 <해묵은 계엄법의 그늘을 걷어내자>는 칼럼을 썼는데 그걸 보고 무릎을 쳤다"고 말했다.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이므로 계엄법을 빨리 손을 봐야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연초부터 북한의 도발책동이 계속 강화되고 있었고 그러면서 국지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면서 "그렇게 됐을 경우 경기북부와 강원도 일원에 계엄을 선포해야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런데 계엄법은 3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아 빨리 손질할 필요성이 있었다"면서 "70년대 80년대의 제도를 지금 운영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헌법질서에 맞고 정치 발전 수준에 맞는 그런 민주적 통제를 가하자는 의미에서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 김 의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김 의원은 "현실에 맞지 않는 군형법이나 군사재판에 관한 법률도 기회가 되면 손을 봐야 한다"면서 "국회의원들이 제도 정비와 정책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의 제안을 선의로 보자면 매우 훌륭한 제안인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의 행위에는 정치적 함의가 들어있는 게 상식이다. 또 기자란 어떤 일이라도 의심을 해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재원 의원의 계엄법 발의는 정말 뜬금없는 일이고 그런 뜬금없는 일에는 무언가 속셈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이 일었다.
특히 김재원 의원은 친박계 핵심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고 얼마 전 김무성 의원에게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고 저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공개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도 김 의원의 계엄법 개정안 발의에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 김재원 의원의 계엄법 개정안 발의에 어떤 의도가 있다는 얘기냐?
= 의도가 있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주의 깊게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77조를 보면 "①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계엄법 2조 2항에는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과 계엄법 조항을 보면 북한의 구체적인 위협이나 도발로 인해 교전이 벌어지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다면 비상계엄을 선포 할 수 있다.
그런데 김재원 의원은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북한의 위협이 상존" 한다거나 "북한의 도발책동이 계속 강화되면서 국지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거나 "그렇게 됐을 경우(국지전이 벌어졌을) 경기북부 강원도 일원에 계엄을 선포해야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도발한다면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아주 원론적인 얘기지만 지금의 남북 상황은 대화가 한 치의 진전도 없고 금강산에 이어 개성공단도 폐쇄의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니 언제든지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0월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1972년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7월 4일 남북이 분단 후 처음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을 제정해 발표해 남북 간 대화분위기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확산되던 시점이었다. 그렇지만 남이나 북이나 영구집권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했다.
그래서 계엄법을 손질한다는 걸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계엄령을 선포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김재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계엄법 개정안 자체는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큰 의미가
없다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김 의원이 강조하는 부분은 "계엄의 기간은 6개월 이내로 정하여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공화정 시절에도 독재관의 임기를 6개월로 했는데 시한이 없는 계엄령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만, 그 기간의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엄선포 규정을 준용하여 이를 연장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여전히 계엄을 지속할 근거는 남겨뒀다.
또 제3조에 계엄의 '시행기간'을 사전에 공고해야 한다고 추가했는데 '시행일시'가 있는 상황에서 시행기간을 추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제8조제2항에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 감독한다는 조항을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의 장을 통하여 각 기관을 지휘감독 한다"로 교체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이 계엄발효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다는 건 상당히 진전된 것이고 나름 의미 있는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필요 할 경우' 언제든지 연장이 가능하므로 시급하게 개정할 필요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 그래도 국회의원 10명이 공동발의 했으니까 개정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닌가?
= 앞서 김재원 의원이 공식적으로 밝힌 계엄법 개정안 제안이유를 설명했지만 제안 이유처럼 시급한 개정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계엄을 선포할 경우 6개월 이내로 제한한다는 건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필요하면 연장이 가능하므로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도아니다.
그래서 김재원 의원과 함께 계엄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10명의 국회의원들을 접촉해
봤는데 특이점이 있었다. 계엄법은 국방위원회 소관인데 10명의 의원 중 국방위 소속은
한 명도 없었다.
공동발의자는 대표 발의한 김재원 의원과 문정림, 이한성, 김우남, 최봉홍, 이운룡, 윤명희, 경대수, 주호영, 권성동 의원 등 10명이다. 김재원 의원을 비롯해 김우남, 경대수 의원과 윤명희 의원, 이운룡 의원 등 5명은 농해수위 소속이다. 이한성, 경대수, 권성동 의원은 김재원 의원과 같은 검사출신이다.
10명 중 유일하게 야당의원으로서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민주당 김우남 의원은 "서명한 적이 없다"면서 "의원실에 확인해 봐야겠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 통화가 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김재원과 같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 소속이다.
공동 발의한 새누리당 의원들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검사출신인 경대수 의원은 "계엄법을 엄격히 하자는 취지의 설명을 듣고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윤명희 의원실 관계자도 "계엄법이 현행법 체계와 맞지 않아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공동발의자로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검사재직시절 김재원 의원이 부장으로 모셨던 이한성 의원은 지역구가 인접하고 개정안의 법률안이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서 공동발의자로 참가했다고 말했다.
▶ SNS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 그렇다. SNS에서는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계엄법을 발의한 김재원 의원과 새누리당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확산되니까 이를 막기 위해 계엄법을 만지작 거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된다.
트위플 @mettayoon은 트위터에 "김재원, 계엄선포기간 6개월로 제한 '계엄법 개정안' 발의. 쓸 일이 없는 계엄법을 새삼 이 시기에 테이블 위로 올리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유사시에 계엄이라도 선포하겠다는 것인가요, 십상시들이"라는 글을 올렸다.
@melancholccack은 "김재원,…'계엄법개정안'발의 "계엄이 필요없을것 같은 지금이 현행 계엄법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장래의 문제와 위험을 정비할 수 있는 적기"…헐!! 계엄이 필요할것 같은 상황을 만들려고? 형님하고 논의됐나??"라고 했고 @bulkoturi는
"김무성 형님 섬기는 김재원 아우가 33년간 잠자고 있던 계엄법을 조자룡 헌칼 쓰듯 뜬금없이 건드린 것은 무슨 뜻일까. 그들은 정말 너무 급한 것일까. 촛불의 촉수를 더 높여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kmlee36는 "김재원이 계엄법을 들먹인다. 국민 협박하는거냐. 좋다. 해 봐라. 명 재촉하려면 무슨 짓은 못하겠느냐. '무대'한테 허락은 받았느냐."는 글을 올렸고 @jjyyww는
"우리나라 촛불집회는 한번도 안 보여주고 이집트 공포의 탱크 시위진압 장면만 자세히.. 국민 협박해?"라고 했다.
@shanti_u는 "국정원선거부정에 박근혜 새누리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 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예가 김재원의 계엄법 개정 운운이다. 야 정치권 국민을 믿어라 저들의 초조함을 보라. 정파의 이해관계로 전열만 흐트러트리지 말라."고 했고 @Pine_on_Rock 은 "[김재원 계엄법 개정 발의] 이 녀석은 갑자기 자다가 먼 봉창 두드리나... 인간도 아니더란 말이 있더니 정말 그런가? 아님 [무성이 형님]이 시킨건가? 이런 놈을 두고" 생긴대로 논다"고 하던가... "인간아, 인간아 왜 사냐?" "라고 했다.
김재원 의원에게 '혹시 김무성 의원이 시킨 것이라는 의혹이 있는데?' 라고 물으니 "시킬 사람도 없고"라며 이를 부인했고,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릴 듣고 유신이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하니 "웃으면서 사람들이 상상력이 풍부하다"라고 비켜갔다.
앞서 설명한 대로 김재원 의원이 발의한 계엄법 개정안은 내용상 별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왜 이시기에 계엄법을 만지작 거리냐는 질문에는 "비를 맞지 않으려면 날이 맑을 때 우산을 고쳐야 한다"는 준비성을 얘기하지만 어딘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시급한 민생법안이 널려 있는데 뜬금없이 계엄법을 건드리는 건 어딘지 의도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지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