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이 30년 넘는 공직 생활과 국회의원 3선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와 여당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왕(王)실장' 위치에 올라서면서 이같은 여권 권력지형과 당정청 관계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직후, 집권 1년차 후반기는 국정운영의 틀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전반기가 국정운영의 방향을 짜는 시기였다면 후반기는 실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있은 직후 박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4명의 수석을 새로 임명했고, 청와대 스스로 '2기 청와대'로 부를 만큼 새로운 각오로 임기 첫해 후반기를 맞고 있다.
물론 집권 1년차 전반기라고 할 수 있는 지난 5개월 동안에도 당정청의 중심에는 항상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진두지휘했고, 외교무대의 전면에 나섰으며, 대내적으로는 부처간 칸막이 철폐와 협업체제 구축, 경체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당청 관계도 새정부 초기라는 시기적 특성상 여당의 존재감이 미미한 가운데 박 대통령의 뜻과 의지가 주로 관철됐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여당에 가이드라인이 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초 당청 관계에서 당에 대해 얼마나 우위에 서 있는지는 5년전과 10년전을 되돌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5년전 이명박 정부때는 '광우병 촛불시위' 탓에 청와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10년전에는 민주당 내 반노무현 세력들이 노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흔들면서 분당(分黨)의 싹이 텄다.
반면 박근혜정부의 집권 1년차 전반기는 '인사실패'나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 등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청와대 우위의 안정적인 당정청 관계가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후반기에는 청와대-정부, 청와대-여당 관계에서 청와대의 의지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대통령의 이런 뜻을 받들어 관철시킬 김기춘이라는 실세 비서실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적어도 일적인 측면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청와대 내부는 물론 정부,여당사이를 조율하면서 당정청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각에 정홍원 총리가 있지만, 김기춘 실장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김 실장과 정 총리가 경남중학교 선후배 사이인데다 검찰 기수로도 김 실장이 정 총리를 10년 이상 앞선다.
또 신임 홍경식 민정수석의 예에서 보듯이 청와대 수석들이 각 부처의 장관들보다 나이나 고시기수에서 훨씬 앞서 청와대의 부처 장악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설명하면서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만 충실하도록 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각 부처 장관들에게 주겠다고 설명했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청 관계에서도 상청하당(上靑下黨) 관계가 더욱 견고해 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에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가 있지만, 당의 원로인데다 박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김 실장의 카리스마와 맞서기는 쉽지 않다.
김 실장이 3선 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여당은 물론 야당의원들과 소통하는 '정무' 기능의 전면에 나설 경우 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물론 여당 전체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17대 때 열린우리당이나 18대 때 한나라당 의원들처럼 청와대와 각을 세울만큼 전투적이지 못한 것도 당청 관계에서 당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이러다보니 당에서 불만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재선 의원은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예로 들며 "항상 문제되던 일방통행식 당청 관계가 지속되고 있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청와대가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당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현재의 지도부가 그게 안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이런 식의 당청 관계를 가지고 내년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고민이다"고 당과 청와대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역학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당의 힘을 빼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그러면 지금처럼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식으로 야당이 계속 나올 테고, 여당의 위상은 추락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