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갈등만 증폭…무늬만 '금연 아파트'

흡연해도 제재 수단 전무…"절반 권리 무시" 반발도

“그냥 다들 나와서 피워요. 누가 일일이 걸고 넘어지겠어요?”

서울 중구의 한 금연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장을 청소하던 아파트 관리인에게 '정말 담배를 못 피우냐'고 묻자 손사래와 함께 돌아온 대답이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쓰레기장 한 구석에는 버려진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아침 7~8시 출근 시간이면 놀이터며 벤치 밑에 꽁초가 수북하니 말만 금연아파트”라는 게 아파트 관리인들의 일관된 반응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청정 지역’임을 광고하듯, 입구마다 금연 아파트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버젓이 붙어 있었다. 놀이터나 소공원에 흔히 비치된 재떨이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사이 주민 한 명이 방금 산 듯한 담배 포장을 뜯어 한 개피를 입에 물고는 쏜살같이 단지 안으로 사라졌다.

◈ 흡연주민들, 실효성도 없는 제도에 '눈칫밥'만

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윤모(55) 씨는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뒤 눈치가 보이고 불편해졌다”고 털어놨다.

윤 씨는 "처음에는 건물내 흡연을 금지하는 아파트 규정이 생겼지만 잘 안 지켜졌다"며 "어느 날 갑자기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다'며 금연 아파트가 됐다더라"고 설명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눈치를 보게 된다면 그나마 나은 곳이다. 아예 ‘무늬만’ 금연 아파트인 곳도 많아서다.


서울 송파구 한 금연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 신모(38) 씨는 “여기가 금연아파트였느냐”고 반문했다. “담배를 못 피우게 제재하는 경우를 한번도 못 봤다”는 것.

또 다른 주민 장모(58) 씨도 “앞집에 사는 남자는 여전히 계단에서 담배를 피운다”며 "솔직히 금연 아파트라 해도 집 앞에서 피우는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취지는 좋았지만…애초부터 제재 수단 없던 ‘캠페인’

금연 아파트 지정 제도가 처음 시행된 건 6년 전인 지난 2007년. 지난해말 기준 서울 시내 금연 아파트는 약 430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청정함을 강조하는 '스펙'이나 '훈장' 역할 외에 실효성은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금연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제 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는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 구역이 아니므로, 사실상 주민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지정 과정에서 이웃간 갈등만 증폭되기도 한다. 아파트 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는 청원서 한 번 본 적 없는데 금연 아파트가 됐다”는 하소연이 쉽게 발견된다.

금연아파트에 사는 신모 씨는 “입주민 50%의 동의로 단지 전체가 금연화되는 것은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머지 절반의 권리를 무시했다는 것.

상황이 이런데도 제도를 처음 도입한 서울시 측은 “금연 아파트 사업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며 "식당이나 PC방 금연 등 다른 현안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부터 자치구에 관련 업무를 이양했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시 관계자는 “금연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강제성이나 유인 수단이 없어 ‘캠페인’으로 그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적 공간인 아파트는 법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법이 명확히 경계를 마련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주민간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라며 "동전의 양면 같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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