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유지하는게 힘들어야 진짜 중산층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세법개정안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중산층 기준에 대해 살펴보자.

중산층을 나누는 기준으로 연 소득액 3,450만 원은 과연 적절한 걸까? 월 소득이 3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이들까지 중산층으로 봐야 한다는 것인데 세금 뺀 실수령액, 집장만에 들어간 대출금, 보험, 의료비, 공과금, 그리고 3식구나 4식구의 생활비, 애들 학비와 학원비, 부모님 용돈 빼면 이 중산층에게는 얼마나 남을까?


삼성경제연구소 설문조사로는 4인 가족 기준 연평균 7천만 원 이상이라는 대답이 대세였고, 현대경제연구소 설문조사로는 월 500만 원 이상이 중산층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미국 ABC뉴스가 ‘공식적인 중산층 정의는 없지만 이 정도는... ’하며 보도한 미국 중산층 기준은 4인 가족 기준 연 수입이 3만3천 달러 이상 ~ 6만4천 달러 이하였다. (당시 환율로 보면 4천6백만 원에서 9천만 원). 몇 가지 조사만 살펴도 정부의 기준은 중산층을 넓혀 세원을 확보하려는 무리수였음이 엿보인다.

■ 중산층으로 남는 게 힘들어야 중산층

정해진 기준은 아니지만 경제침체의 21세기에 중산층을 규정짓는 특징들이 있다.

첫째, 지금 이대로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싶어야 중산층이다. ‘먹고 사는 게 힘들다’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와야 중산층인 것이다.

둘째, 내 아이들을 중산층으로 만들어주기가 쉽지 않으면 진짜 중산층이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중산층이 줄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2년 75%까지 증가하다 줄기 시작해 외환위기 때 65%로 떨어졌다. 2010년 기준으로 67.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걸 8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인데 이런 세법개정안을 내놓다니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의 세 번 째 특징은 안정적 직업을 갖는 것이 집 보유 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중산층의 목표가 내 집을 갖거나 내 집을 키우는 것이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당장 먹고 살 벌이가 절실하다’로 바뀐 것이다.

결국 중산층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래서 중산층이라 해도 정부가 세금을 더 걷거나 복지를 늘려 줄 중산층이 각각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2006년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중산층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1. 더 벌고 더 성공하려는 예비 부유층.
2. 적당히 일하고 건강도 유지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걸 목표로 하는 전 형적 중산층.
3. 돈벌이나 성공에 관심 없는 은거 스타일의 무관심형 중산층.
4. 돈 벌어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한 생계형 중산층.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있다. 여러분의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부유해질 것이라고 보는가? 이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야 오리지널 중산층이다. 내 아이들도 중산층으로 살아가거나 더 나아질 수 있겠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상위 중산층 또는 예비 부유층이라고 불러야 한다.

결국 중산층은 지속가능한 계층이기 보다는 추락을 걱정해야 하는 위태로운 계층이다. 우리사회의 최근 화두는 중산층이 아니라 푸어였다.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베이비푸어, 웨딩푸어 등 겉보기에는 중산층 같아 보이나 ‘푸어’를 붙여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반증한다. 정부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OECD 기준으로는 중산층이 맞다고 나선 것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 돈은 위로 흐르고 빚은 아래로 흐른다

물론 기획재정부가 헤맨 이유는 짐작이 간다. 박근혜 정부의 태동에서 내건 공약을 세제와 관련해 정리하자면, 첫째, 세목신설이나 세율인상 등 증세로 여겨질 정책은 곤란하다. 둘째, 경제 살리기를 계속해 나가야 하니 기업의 법인세를 높일 수는 없다. 셋째 그렇다고 복지정책을 줄이면 안 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증세 빼고 복지 놔두고 법인세 손 안 대면 남는 건 비과세 감면 축소뿐이다. 그래서 세제개편안을 만들어 놨더니 대통령은 비난을 피하려고 원점으로 가져가 재검토하라 한다. 말복 더위에 쓰러질 일인 건 이해하겠다. 결국 고소득층의 세원을 더 철저히 밝혀내고 더 강력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해법이고 경제민주화이다. 그러나 이것도 증세라고 안 된다고 하니 기획재정부로서는 길이 안 보일 것이다.

중산층은 경제·사회적으로 한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그래서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그 방법도 모두 알고 있다.

1.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극복이 최우선이다. 경제민주화부터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출발이다. 대기업에 쏠린 각종 연구개발 지원이나 세제지원을 중소기업으로 돌려 균형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엄청나게 버는 사람, 흔히 슈퍼리치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소득에 중과세를 하고 편법세습은 막아야 한다.

2. 국토의 균형 발전도 이뤄져야 한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 몰려 뭐든 비싸고 살기 어렵고 지역은 남은 게 없어 가난하다. 더구나 아이들을 서울로 학교 보내랴 서울로 취직시키랴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를 개선해 국가 예산을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옮겨 재정부터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3. 그리고 정치권도 관료도 제대로 정직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짜내야 한다. 넒은 안목과 소신, 경제적 지식을 가진 관료들은 없고 정치인은 비즈니스와 포퓰리즘에 묶여 있으니 일이 안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돈을 벌어도 개인보다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커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산층은 늘어나지 않는다. 지금 중산층을 보호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경기 회복의 열쇠는 중산층을 살려 소비 심리를 회복하는 것인데 이번 정책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저소득층의 복지를 위해 중산층 지갑을 열겠다면 중산층에게 저소득층으로 내려 오라는 소리로 들리지 않겠는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돈은 위로만 흐르고 빚은 아래로 흐른다. 그렇다면 그 흐름을 개선해 고르게 하누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원점에서 제대로 다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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