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하루 빨리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1951년 7월 청원의 한 시골마을에서 당시 10살의 어린 나이에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김태웅(74) 할아버지.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강제로 끌려가면서 생이별까지 겪었고, 소식 한번 전해듣지 못한 세월이 벌써 60년도 넘었다.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어머니까지 3년 전 돌아가시면서 할아버지가 마음 속에 품은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그동안 온 가족이 겪었야 했던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이나 풀고 싶은 마음에서다.
게다가 후손들에게 연좌제의 아픔이라도 남기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그동안 가슴 속에만 담아뒀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생존해 있다면 아버지가 95살, 자신도 이미 74살의 고령이어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마음만 더욱 조급해지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살아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가능성이 희박해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며 "혹시 이복동생이라도 있다면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처럼 가족 간의 만남에 대한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충북에서만 해마다 평균 70명이 넘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어서다.
22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첫 접수 당시 도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모두 3,002명이었다.
하지만 올해 지난달 말 현재 2,270명만 남아 10년 사이 730명이나 줄었다.
해마다 조금씩 신청자가 늘어나는데다 80% 이상이 70대 이상의 고령자인 것을 감안하면 사망자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나마 해마다 한두 차례씩 이어지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3년 가까이 끊어졌던 현실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족과의 만남의 기회조차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에게 남북관계 개선과 상봉 행사 재개는 죽기 전 전쟁이 남긴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