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전 감사원장이 "감사업무의 최상위 가치는 직무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며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 끌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을 절감한다"는 말을 남기고 26일 퇴임했다.
양 전 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전정권에서 임명돼,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채우려고 노력했지만 새 정권으로부터 감사업무, 인사 등과 관련해 압력을 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하지만 양 전 원장이 정치권에 몸담았던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임명제청한 전력이 있고, 논란이 많은 4대강 감사와 관련해서도 전정권 담당자들로부터 '보신(保身)을 위해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터여서 선뜻 손을 들어주거나 동조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런 논란의 핵심은 뒤로하고라도 양 전 원장 사퇴 파동은 안그래도 '세월아 네월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공기업 인사를 더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들을 강제로 밀어내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후속으로 이뤄지는 인사에서 낙하산.관치 잡음을 막는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장석효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한국도로공사는 지난주까지도 사장추천위원회의 공모절차가 개시되지 않았고, 국토부의 특정인사 밀어주기 논란을 빚었던 코레일 사장 선임절차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력대란 가운데서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3개월째 공석이고,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장기간 공백은 또 다시 여권 실세 개입설, 특정인사 유력설을 부추기면서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 부처의 경우에도 현직을 떠나 공공기관으로 이전할 대상자들이 있음에도 후속 인사가 늦어지면서 본인도 갑갑하고 후배들 보기에도 안좋은 상태가 계속되면서 업무효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
한 정부부처의 고위 공직자는 "고위공무원들이 자리 정리가 돼서 (산하기관 등으로) 진출하고 (떠난 자리에)후배들이 올라오고 해야 활력이 도는 데, 다른 데로 나갈 수 있는 정리가 안되다보니까 엉거주춤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공기업 인사가 늦어지면서 이미 사의를 표명한 수장이 중심이 되거나 기관장이 공석인 상태로 국정감사를 받는 최악의 상태를 맞을 수도 있게 됐다.
지금부터 인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해당 기관장들이 조직을 장악하고 업무를 완전히 파악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 수박 겉핧기 감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기업 인사는 현재 ing(진행중)"라고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