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사퇴, 진실게임 양상…'감사원 독립성'은 어디에?

헌법상 임기 보장된 감사원장도 파리목숨... 독립기관 맞나

돌연 사퇴의사를 밝힌 양건 감사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 감사원에서 열린 감사원장 이임식에 참석해 이임사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양건 전 감사원장이 26일 이임식을 끝으로 2년 6개월간 재직한 감사원을 떠났다.

사퇴 배경을 놓고 4대강 사업 감사 외압설과 청와대 인사압력설 등 다양한 '설'이 나오는 가운데 그는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언급하며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 朴정부에서 유임, 4대강 감사로 사퇴압박

지난 23일 저녁 양 전 원장의 사퇴 소식이 알려졌을때만 해도 정치권 안팎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MB정부에서 임명된 양 전 원장은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 사퇴설이 떠돌았지만 결국 헌법상 보장된 4년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양 전 원장의 의지가 워낙 강하고 여론 또한 이에 동조하면서 결국 유임됐다.

양 전 원장은 이임사에서 "정부교체와 상관없이 헌법이 보장한 임기동안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믿어왔다"며 "헌법학자 출신이기에 더욱 그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10일에 발표한 3차 4대강 사업 감사결과가 양 전 원장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은 대운하용'이라는 감사결과를 발표했고 전 정권의 주류인 친이계는 이에 반발하며 양 전 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친이계는 당시 "지난 정권에서 감사했을 때는 아무 문제없다고 하다가 대통령이 바뀌니까 달라지는 그런 감사를 누가 믿느냐"며 양 전 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 때문에 양 전 원장의 사퇴 소식 직후 "양 원장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4대강 사업 감사에 대한 친이계의 비판 등 논란이 예상되자 이를 피해 자진사퇴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 4대강 감사 비판 회피용 → 청와대 인사압력설

송은석 기자
그러나 다음날 청와대가 지난 대선기간에 박 대통령을 도운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 하자 이에 반발해 양 전 원장이 사표를 던진 것이라는 '인사압력설'이 터져 나왔다.

청와대는 대선 당시 박근혜캠프에서 정치쇄신위 위원으로 활동하다 인수위에서 정무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장훈 중앙대 교수를 김인철 전 감사위원 후임으로 임명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 전 원장은 장 교수 임명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장 교수에 대한 감사위원 제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헌법 제98조 3항에는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상 보장된 감사원장의 제청권을 무시하고 청와대가 인사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으로 당장 민주당은 "그동안 청와대의 도를 넘은 논공행상식 인사개입을 양 원장이 거부하자 교체로 이어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공세를 폈다.

◈ 4대강 사업 감사 외압설도 불거져


인사압력설과 함께 양 전 원장의 사퇴 이유로 4대강 사업 감사 외압설도 회자되고 있다. 지난 3차 감사결과 발표를 놓고 양 전 원장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었다는 것.

당시 양 전 원장은 국회 감사요구 내용대로 4대강 사업 담합 내용에만 국한해 감사결과를 발표할 것을 주장했지만 청와대 등이 4대강 사업이 결국 대운하용이었다는 내용까지 발표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결국 양 전 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뜻에 따라 감사결과가 발표됐고 그에따라 양 전 원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현정부 모두로부터 '해바라기 감사'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 직접적인 사임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양 전 원장이 감사원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현정부 쪽 고위직 인사와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양 전 원장은 소위 '바지사장'이었을 뿐 실제로는 현정부의 의도에 따라 감사결과가 발표되고 이에 양 전 원장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는 내용이다.

◈ 양 원장, 외압 시사 발언 남기고 침묵 모드로

현재까지는 두가지 사퇴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양 전 원장이 사퇴한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은 이임사에서 "재임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는 애매한 발언을 남긴채 감사원을 떠났다.

양 전 원장은 '안팎의 역류와 외풍'이 무엇인지에 대한 쏟아지는 질문에도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양 전 원장이 시사한 외압이 실제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확인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의 사퇴와 관련해 이런 저런 추측성 보도와 얘기들이 나오는 데 대해 "청와대는 무관하다는 말씀을 분명히 드린다"고 밝혔다.

◈ 양 원장 향한 여론은 부정적, 감사원 독립성은 숙제로

송은석 기자
어떤 이유로 양 전 원장이 사퇴했건, 그의 사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현재로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양 전 원장이 MB정부 2년동안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4대강 사업 감사를 비롯해 감사원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4대강 사업 감사부분에 있어서는 지난 2년 동안 아무문제 없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정반대의 감사결과를 내놓은 부분은 양 전 원장의 입장이 무엇이든지 간에 감사원의 수장으로서 분명히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양 전 원장 개인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의 사퇴가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다시한번 부각시키고 환기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동안 헌법상 보장된 감사원장의 임기부터 시작해 감사위원 선임, 그리고 감사원의 업무와 관련해 역대 정권마다 독립성 논란이 계속돼 왔다.

양 전 원장을 비롯해 정권이 바뀔때마다 감사원장직은 파리목숨에 가깝고, 감사위원 역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권과 가까운 인물들이 선임됐다.

그러다 보니 감사원은 MB정부의 4대강 사업 감사나 노무현정부의 쌀직불금 감사 등에서 드러났듯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들쭉날쭉한 감사결과를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따라서, 양 전 원장의 퇴임과정이 단순히 진실게임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감사원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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