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원 "이슈는 감사위원 임명제청 건뿐"
양 전 원장은 26일 오전에 열린 이임식에서 "재임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는 애매한 말을 남겼다.
그러자 김영호 사무총장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나서 "최근 감사원에 있었던 일을 돌아보면 이슈는 감사위원 임명제청 건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임명 제청에 있어서 좀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양 원장께서 아마 인사 쪽에서 상당히 좀 독립성을 갖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이는 청와대가 지난 대선기간 박근혜캠프에서 활동한 장훈 중앙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제청할 것을 요구하자 양 전 원장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들어 이를 거부한 일을 말한다.
김 총장은 '이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밝히지 않았지만 CBS 취재결과 청와대와 양 전 원장간 서로 다른 감사위원 후보를 놓고 충돌한 것으로 드러났다.
◈ 청와대 vs 양건, 각기 다른 감사위원 추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양 전 원장은 김인철 전 감사위원의 후임으로 모두 3명의 후보를 1~3 순위로 추천했다.
그 가운데 1, 2순위 후보가 청와대 인사검증 과정에서, 그리고 본인의 고사 등의 후보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마지막 남은 교수출신의 3순위 후보는 청와대가 감사위원으로서의 경력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청와대 역시 3명의 후보군을 선정해 양 전 원장에게 제청을 요구했으며 그 가운데 1순위 후보가 장 교수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양 전 원장이 사퇴하기 불과 이틀 전까지 이처럼 감사위원 제청을 놓고 청와대와 양 전 원장이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갈등으로 양 전 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낙마하는 불명예를 안았고 청와대는 '인사압력'이라는 멍에를 쓰게 됐다.
◈ 인사외압은 곁다리…실체는 감사원내 권력다툼?
양 전 원장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이같은 감사위원 제청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감사원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다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는 양 전 원장의 자진사퇴를 원했지만 양 전 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채워야 한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결국 여론에 밀려 양 전 원장의 유임을 결정했지만 그를 100% 신뢰할 수 없었던 청와대는 감사원 고위직에 A씨를 임명한다.
경남 출신인 A씨는 경남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이 지역 친박계 인사들과 오랜 유대관계를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A씨가 총대를 메고 감사원 내부에서 'MB정부 5년 지우기' 작업을 진두지휘했고 이 과정에서 MB정부에서 임명된 양 전 원장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감사원 내부에서 벌이는 '파워게임'에서 밀린 양 전 원장은 사퇴 명분을 찾다가 감사위원 제청 문제를 이유로 들어 사표를 제출했다는 설명이다.
◈ 피해자는 양건? 청와대? 진짜 피해자는 '감사원'
양 전 원장은 이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 썼던", 그러나 힘이 부족해 스러져간 감사원장으로 남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대강 사업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감사원 내부는 물론, 심지어 야당까지도 양 전 원장이 감사원의 독립성을 언급하는 것에 코웃음을 치고 있다.
양 전 원장 사퇴와 관련해 "우리와 무관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청와대 역시 문제가 크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양 전 원장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독립성을 최고 가치로 삼아야 하는 감사원 인사에 개입한 것은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를 통해 양 전 원장과 청와대 모두 상처를 입었지만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바로 감사원이다.
'독립기관'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은 결국 헌법상의 미사여구일 뿐, 감사원이 결국은 정권에따라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