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간부들을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공개수사에 나섰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가 단순한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형법상 '내란음모'라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해 수사에 나선 것은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조작사건' 이후 33년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3년여 동안 내사를 벌여 이석기 의원 등이 유사시 체제전복을 시도하려 했다는 각종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국정원이 대선개입 사건으로 최대 위기를 맞아 국면전환을 위해 공안사건을 터뜨림으로서 개혁요구를 피해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국정원, 왜 이 시점에 내란음모혐의 터트렸을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내란음모'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말인데?
그 이후로는 처음 등장하는 것이다.
압수수색 영장과 체포영장을 발부한 수원지방법원 관계자는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가보안법상 통신 등 국가기간시설의 타격모의, 이적단체 구성, 북한 찬양 및 형법상 내란음모죄"라고 밝혔다.
긴급체포된 이상호 고문의 가족은 국정원 직원이 압수수색에 앞서 제시한 영장에 "지난 5월 서울 모처에서 당원 130여명이 모인 비밀회합을 했고 경기남부지역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했다"는 혐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고 전했다.
사정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수사의 최종 지향점은 이석기 의원이 맞다"라고 확인했다. 국정원은 조만간 이석기 의원에 대해 소환을 통보하거나 아니면 회기중인 점을 감안해 곧바로 체포동의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기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520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16시간여 만인 29일 오전 0시45분쯤 일시 중단됐다.
국정원과 진보당은 이 의원의 사무실에 각각 5명과 7명을 남겨두고 압수수색을 일시 중단하기로 합의해 오늘 오전 압수수색이 재개될 예정이다.
- 이석기 의원이 변장을 하고 도주를 했다거나 '총기를 확보하라고 했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들리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문'인거냐?
= 여러 경로를 통해 국가정보원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수사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문인지를 확인하려고 노력을 했다.
언론보도를 보면 매우 구체적이다. "이석기 의원 등 수사대상자들이 비밀조직을 결성해 내란을 음모"했고,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는 등의 녹취록을 증거자료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한 종교시설에서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모임에서 유류저장고와 통신시설 위치 파악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는 내용의 발언을 했고, 이 의원이 이 모임을 주도했으며,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100여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과 '적기가' 등을 불렀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수사대상에 오른 경기동부연합 인사중 북한에 몰래 다녀온 유력한 증거도 확보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혐의는 법원에서 발부한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의 내용이 전부다. 나머지는 알려졌다거나 국정원에서 흘리거나 한 내용들이다. 심지어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석기 의원은 29일 아침 진보당 최고회의에 참석했다.)
▶ 국가정보원이나 검찰에서 수사내용을 확인해주지 않느냐?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가정보원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중인 내용에 대해 뭐라고 확인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하경준 대변인도 "수사내용과 관련해 수사팀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사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사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너무 나간 경향이 있다"면서 "압수수색을 이제 했으니까 수사를 해봐야 한다. 내란음모라는게 워낙 어마어마한 혐의여서 잘 검토를 해봐야 한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라면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가?
=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때는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 유신시절이나 군사정권 때처럼 고문이나 강압수사로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다만 수사기법상 압수수색 영장과 사전구속영장, 공소장을 예로 들 경우 압수수색은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혐의를 부풀리거나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사전구속영장은 압수수수색보다는 강도가 조금 낮아지겠지만 신병을 확보해야 수사가 진전이 있을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공소장은 유죄로 입증이 가능한 부분만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니까 압수수색 영장에 비해서는 많이 정제가 되고 혐의도 구체화 된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압수수색영장과 공소장을 비교하면 '용두사미'라고 까지 하기는 어렵더라도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또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하더라도 검찰에 송치된 뒤 보강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이 혐의가 유지되고 인정될 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 앞으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나?
=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수사가 상당히 오랜 기간 내사를 해왔다. 3년전부터 내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의 내사가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면서 "지난해 총선에서 이석기 의원이 당선된 뒤 국정원의 내사(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이석기 의원이나 그 주변에 대해 오랜기간 감청을 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적법 절차를 통해 증거들이 수집됐다. 증거가 있으니까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언론보도에서 녹취록이 확보됐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국가정보원이 오랜기간 내사를 하고 감청 등을 통해 증거를 수집해 왔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국가정보원이 전혀 근거없거나 준비없이 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린 것은 아닐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2~3일만 차분히 지켜보면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이외에 또다른 혐의나 아니면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혐의를 입증할 구체적인 뭔가가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서 "국정원, 왜 이 시점에 내란음모혐의 터뜨렸을까?"
= 의문이 드는 건 국가정보원이 3년여 동안 내사를 진행했는데 하필 국정원의 개혁이 본격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 대형 공안사건을 터뜨렸을까 하는 점이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끝나고 여.야가 국정원 개혁안을 준비중인 상황에서 사건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또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즈음에 이번 사건이 터짐으로서 촛불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에서도 "정무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좋은 시점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되면 대박이겠지만 잘못되면 쪽박일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정원 수사 내용을 들었을 때 시기적으로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남재준 원장은 방향이 잡히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정치건 뭐건 간에 수사는 수사다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이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임명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공안검사 출신과 군 출신 인사들이 국가 주요포스트에 포진하면서 이런 일이 예견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이 터뜨린 메가톤급 핵폭탄의 위력이 대단하다. 국내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만큼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국정원 개혁' 등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궈 온 현안들이 이 사건으로 모두 묻히게 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노숙투쟁도 국가정보원의 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도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재벌회장 면담 소식이나 정부의 전.월세 대책도 주요뉴스에서 밀렸다.
일단 국면전환에는 성공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국정원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면서 국정원 개혁논의를 잠재우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 등 야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최악의 시기이지만 청와대나 여당, 국정원의 입장에서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터뜨렸다는 것이다.
▶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무리한 승부수를 던진 것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그렇지만 국가정보원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한판 승부에 나섰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국가정보원이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국정원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국가정보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 공개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유신이나 군사정권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정권차원의 위기가 닥치거나 여당이 궁지에 몰릴 경우 대형 공안사건을 터뜨려 국면을 전환시키고 돌파하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진행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국내 활동 관련 조직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민주당에서는 "대공, 방첩, 대테러 활동과 직결된 부서외에는 전부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국정원은 "국내 각 기관에서 암약하는 간첩조직을 적발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보부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국정원이 이번 수사를 통해 이석기 의원을 비록한 정치권의 내란음모를 밝혀낸다면 국정원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다. 정치개입 선거개입 논란이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도박'이니 '한 판 승부'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국정원의 수사내용이 팩트와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난다면 "코너에 몰린 국정원이 코너에 몰려서 대공수사권 지키기 위해서 공안정국을 만드는 것이 될것"이라며 "검찰도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신메카시즘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부분 국정원이 위기에 몰려 있는 걸 물타기 하고, 촛불집회 등 국정원 정치개입에 대해 여론 나쁜 상황에서 장외투쟁하는 야당에 대한 역공의 측면도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그렇지만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뭐냐?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내란이란 혐의가 워낙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에 입증이 쉬운 것 아니다. 조직의 규모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준비나 이런 행동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많은 조직사건이 있었지만 내란혐의 적용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혐의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견 법조인은 "일단 내란음모는 의심을 두고 있는 혐의라는 걸 주목해야 한다"며 "일단 압수수색 영장이나 관련자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니까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내란음모 혐의가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인은 "내란음모죄는 내란을 실행했을 때 함께 처벌하는 것으로, 내란예비음모만으로 혐의를 둔다는 것은 법정에서 가서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 학원가 주체사장의 대부로 불리던 '강철서신'의 저자인 김영환씨는 언론인터뷰에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의혹에 대해 "운동권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1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총기를 준비하라고 했다거나 국가기관을 타격한다는 등의 얘기가 터무니 없다는 얘기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국가정보원의 수사와 관련해 '2013년판 유신독재' '공안탄압'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와 국정원이 유신시대에 써먹던 용공조작극을 21세기에 벌이고 있다"면서 "촛불을 잠재우기 위한 공안 탄압"이라고 말했다.
오병윤 원내대표도 "1975년 5월13일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이후 무려 38년이 지난 이후 똑같은 유신정권이 들어서 다시금 국민에게 유신을 선포하고 모든 국민을 내란죄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하나둘 드러나는 대선 부정선거 의혹 앞에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책임지라는 국민 목소리를 듣는 대신 색깔론, 공안탄압이라는 녹슨 칼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